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 - 북핵 문제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게임이론이 보여주는 미래 설계도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합종책으로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소진의 유세술은 7단계로 정리된다.

“첫째 단계는 열지이예(悅之以譽)이다. 먼저 상대방을 칭찬하여 기분을 띄워준다. 소진이 유세한 내용을 보면 ‘나라의 강성함과 대왕의 현명함’이라는 말이 자주 반복된다. 어느 나라 어느 왕을 대하든 그 나라를 칭찬하고 그 군주를 높여주는 것으로 말문을 여는 것이다.

둘째 시지이성(示之以誠). 상대방에게 정성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여는 책략이다. 소진은 말 하나하나를 섣불리 하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대왕을 위해 슬퍼하나이다’ ‘대왕을 위해 부끄러워 하나이다’ ‘대왕을 좀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생각해준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는다.

셋째 명지이세(明之以勢). 지세와 군사력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저긍로 파악하도록 한다. 이 책략은 상대가 자신을 과소평가하여 위축되어 있을 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고 상대방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는 정신을 차리게 하는 효과가 잇다.

‘천하에 진나라에 대하여 초나라만큼 위협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초가 강해지면 진은 약해지고 진이 강해지면 초가 약해집니다. 이 두 세력은 절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정세분석을 말했을 때 초 위왕은 합종책에 동의하는 결단을 내렸다.

넷째 유지이리(誘之以利). 이익으로 유혹하는 책략이다. 합종에 동의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은근히 이 이권에 탐을 내도록 유도하여 동의하게 만들었다. 조나라 군주 숙후가 목욕을 즐기며 휴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소진은 숙후에게 합종에 동의하면 한, 위, 중산 나라들이 휴양지 시설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리고 초나라 위왕이 음악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소진은 각 나라의 멋있는 음악과 미인들이 후궁에 가득찰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다섯째 협(脅之以害). 이익으로 유혹한 다음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해가 미칠 것이라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밝혀 은근히 협박을 했다.

‘대왕이 진을 섬기면 진은 반드시 의양과 성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그것을 떼어주먄 내년에 또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떼어줄 땅이 더 없는데도 진은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다 줄 것이 없게되면 진은 쳐들어올 것입니다. 진나라를 섬겨 땅을 떼어주어도 기다리는 것은 파멸 밖에 없습니다.’

여섯째 격지이언(激之以言). 자존심을 건드려 격동시키는 책략이다. ‘이제 대왕이 서면하여 진나라를 섬기니 바로 쇠꼬리가 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로 한나라 선혜왕을 분격시키자 왕은 칼을 뽑기까지 하며 진을 더 이상 섬길 수 없다고 고함을 쳤다.

일곱째 역배이의(力排異議). 상대방이 결단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책략이다. 일이 잘 마무리되려는 이 지점에서 방심하거나 긴장을 풀어버리면 상대방의 결단을 확고하게 해주지 못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다른 생각이 스며들어 결단을 망설이는 눈치가 보이면 그 스며든 생각의 정체를 파악하여 힘써 물리쳤다.” (조성기)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는가 보시오’
;혀요? 혀야 잘 붙어 있지요.’
‘그러면 충분하오’

종횡가로 불리게 된 소진과 장의는 합종과 연횡으로 세치 혀 위에 천하를 올려놓았다. 그들의 유세술은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방의 생각과 바라는 바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중시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비(飛: 상대의 명성을 띄워주는 것)의 방법으로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내고 겸(箝: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상대를 통제하는 것)의 방법으로 상대를 제어한다.”

소진과 장의의 스승인 귀곡자가 한 말이다(‘귀곡자’ 비겸편) 비겸술은 상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상대는 호의로 받아들여 원하는 대로 끌려오게 된다. 비겸술의 핵심은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가지고 싶어하는 것, 부족한 것을 정확히 파악해 비위를 맞추어 상대를 제어하는 것이다. 소진의 유세술은 비겸술의 구체적인 절차이다.

비겸술은 인간을 어둡게 본다. 인간은 오직 이익만으로 움직인다고 본다. 마치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계산하는 기계이다.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손익계산에 따라 이익은 늘리고 손해는 줄여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따르는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계산 기계이다. 그 이익이 무엇인지는 기계마다 다르다. 그러나 손익을 계산한다는 점에선 모든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계산에 사용하는 함수(function)를 알 수 있다면 행동은 예측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예측이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같다고 본다. “게임이론은 아주 단순한 생각, 즉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말한다.”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단순한 거래만 할 뿐이다. 가격이 맞으면 사거나 팔고 아니면 사지 않거나 팔지 않는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이에는 우정도 사랑도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며 거래할 뿐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에서 인간은 거래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상대의 행동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지며 나의 행동에 따라 상대의 행동은 다시 바뀐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마찬가지로 게임이론의 인간 역시 계산하는 기계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머리 속에 어떤 함수(게임이론에선 전략이라 부른다)를 갖고 있는가를 알면 그들의 행동을 계산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으면 예측할 수 있다.

“게임이론의 핵심에는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자기 이익을 중심에 놓는 인간관이 있다. 선한 사람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다.” 게임이론에서 인간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 게임이론의 세계에서는 그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게임에서 약속은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은 전략의 일부다. 약속은 게임 참가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만 지켜진다. 약속과 이익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배신하고 말을 번복하고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물론 그들은 엄포와 속임수의 대가가 비싸다는 것은 안다. 따라서 그들은 그로 인한 이익뿐 아니라 비용도 고려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방법이긴 하지만 비용이 커지게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정직을 권장하는 한가지 길이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합리적이라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함수가 있다는 말이다. “합리성의 기준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아주 어린 아이나 정신분열증 환자뿐이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사람과 이치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말이나 행동이나 희망사항에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려는 열의가 없다. 게임이론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것을 싫어한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말이다.”

사람의 심리를 모델링할 논리가 세워졌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제학은 적어도 시장에선 인간의 행동은 뻔하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도대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이겠는가? 그렇기에 경제학에선 동기를 인센티브란 말로 재정의한다. 이제 인간의 심리는 뻔해지고 계산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 적어도 시장에선. 게임이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이익이 다른 모든 동기를 압도하는 시장이나 정치에 관한 한 인간은 뻔해진다. 이제 책사의 논리가 세워질 차례이다.

책사는 예측자이다. 그런데 무엇을 예측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홀로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한다. 그러나 행위자의 동기를 계산할 수 있으면 그들의 상호작용도 계산할 수 있다. 계산할 수 있으면 수리 모델링이 가능하고 컴퓨터로 계산이 가능하다. 저자는 상호작용의 모델링을 다음과 같은 가정 위에 세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믿을 만한 예측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1.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권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모두 알아내라. 마지막 결정권자에게만 관심을 쏟지 마라.
2. 1번의 경기자들이 서로 사적으로 대화할 때 각각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지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평가하라.
3. 경기자들 각자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이슈인지 즉 그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군침 도는 이슈인지를 어림잡아 보라. 이 문제가 제기되면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올 정도로 관심이 많은가? 아니면 다른 긴급한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한 논의는 미루고 싶어 하는가?
4. 경기자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로서 각 경기자는 이 이슈에 관해 다른 경기자들의 입장을 바꿀 만한 설득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이것들만 알면 된다. ‘이것이 전부라고?’ 역사는 어쩌라고? 문화에 대해서는? 성격은 몰라도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는?”

저자는 그런 것은 몰라도 방정식을 만들 수 잇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랜 동안 자신의 전공인 남아시아 정치를 떠나 컨설팅을 해왔다. 이책에 소개되는 저자의 컨설팅 사례들만 보면 이란의 정치지형, 이사회 선거, 북핵 해법, PL 소송, 중동평화 프로그램. 기업지배구조 등등

분야가 어떻건 상관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경기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와 그들 간의 역학관계를 알면 모델링은 가능하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 두가지라는 가정하에서 작업한다. 한 가지는 그들이 옹호하는 선택에 최대한 가까운 결정이다. 두번째는 명예, 즉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는 데서 오는 자아의 만족감이다.”

이제 게임이론과 비겸술이 만났다. 최소한 저자가 컨설팅해온 정치와 경영의 분야에선 경기자가 어떤 이익과 명예를 원하는가를 알면 게임 끝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인센티브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경영진에게 잘못된 인센티브를 주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할 섯이다. 올바른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그들은 (시민적 덕성의 화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들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옳은 일은 한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게임이론에서 본 인간은 인센티브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벨기에 왕이었던) 레오폴드를 기억하는가? 그는 벨기에에서는 선한 인센티브를 가졌고 선정을 베풀었다. 콩고에서는 흉악한 인센티브가 있었고 악정을 행했다.”

문제는 선의가 아니라 인센티브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분쟁은 끝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센티브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평화 대신 땅, 땅 대신 평화란 중동에서든 어디서든 실패하게 되어 있는 공식이다.” 그런 것으로는 폭력을 끝낼 수 없다. 상대가 지킬 약속을 하고 있다는, 그것이 믿을만한 약속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평화 대신 땅이든 땅 대신 평화든 게임이론에서 시간불일치라 불리는 문제에 시달린다. 내일은 상대편이 같은 방식으로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한쪽이 상대에게 철회불가능한 이익을 준다. 그러나 거의 어김없이 철회불가능한 이익을 얻은 상대는 약속을 지키기 전에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이쪽을 이용한다. 평화를 준다는 약속을 믿고 땅을 포기하면 상대는 평화가 허용되기 전에 더 많은 땅을 달라는 요구를 반드시 할 것이다. 땅을 나중에 준다고 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평화를 약속한 쪽에서 성실성을 보이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으면 땅을 준다던 쪽은 마음 놓고 배신할 수 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대가 이제는 쥐고 있을 수 없는 땅을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그럴 리스크가 있다면 상대를 믿을 수 없다. 상대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유혹에 저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북핵문제도 교착상태에 놓여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편이 무장을 해제하면 이쪽에서 약속을 뒤엎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에게 핵 시설을 해체하라는 요청은” 소용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핵 프로그램의 기능을 억지하라는 협상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도록 할 위협수단을 가질 수 잇기 때문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선행은 좋은 반응을 불러올 것이라는 믿음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있다. 그런 낙관주의는 현실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탐욕과 공격성을 불러올 때도 많다. 게임이론은 인간 본성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예상대로 샤론의 낙관주의는 실패햇다.” 신뢰를 쌓고 싶으면 신뢰가 필요없는 신뢰관계를 만들어야 햇다고 저자는 본다.

그러므로 게임이론의 입장에서 인간은 모두 같다. 인간은 인센티브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컴퓨터로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존재이다.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예상하기 위해 수학처럼 추상적인 것에 의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화학자가 산소와 수소가 미국에서 혼합되는 방식이 중국에서 혼합되는 방식과 다르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터무니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들은 사하라의 팀북투나 오스트레일리아(또는 아일랜드)의 티퍼래리에서는 얼마든지 상이한 원리에 입각해 결정을 내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입자와 좀 다르기는 하겠지만 공통점이 없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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