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카페여행 바이블 - 반짝 반짝 보석처럼 숨어 있는 도쿄 카페로 떠나는 시크릿 여행
조성림.박용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호퍼의 그림은 도회지의 고독과 불안을 그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평하는 사람은 고독은 나쁜 것이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고독은 쾌적할 수 잇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호퍼 자신 함부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호퍼의 그림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가끔 공허하다는 말을 듣지만 공허한 실은 모든 것을 채우는 예감으로 가득하다.”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하퍼에 대한 평이다. ‘Nighthwaks’는 하퍼를 말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텅 빈 뉴욕의 거리를 배경으로 홀로 빛나는 바를 그린다. 등장인물은 4명. 바텐더와 연인 그리고 중절모를 눌러 쓰고 등을 보이는 남자. 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 그들 사이의 공간을 메우는 것은 가게의 조명뿐. 그 빛은 가게를 메우는데도 벅차다. 그 빛은 네 사람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데도 힘에 겨워 어두운 거리를 비추기엔 역부족이다. 빛이 갇힌 그 공간은 텅 비었고 건조하다.

자신만의 공간에 갇힌 사람들. 빛이 모자란 하퍼의 세계. 바는 하퍼의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도시에서 사람의 영혼은 돈도 물건도 아닌 마지막엔 같은 사람에 의해서 밖엔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퍼의 도시에선 기댈 사람이 없다. 하퍼의 도시는 혼자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는 특별한 공간이다. “미국의 바에는 오래 전부터 이런 얘기가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가 마지막에 이야기 상대로 고르는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목사 또 하나는 바텐더” 바텐더는 손님의 이야기를 받아주며 무거운 마음을 받아낸다. “바의 카운터 판은 아주 두껍고 무겁다. 손님의 고독 미움 슬픔 괴로움 절망하는 영혼 그런 너무나 무거운 마음을 단단히 지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바텐더는 아무리 괴로워도 그 얼굴을 손님에게 보여선 안된다 바란 손님이 비를 피하는 장소 우산을 내밀어야 할 바텐더가 우는 소릴 하면 어쩌냐. 바는 녹슬고 지친 손님의 마음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 세상 모두가 손님의 적이라 해도 바텐더만은 마지막 한편이 되어야 한다.” (조 아라키)

빛이 모자란 도시에서 바는 사람을 빌릴 수 있는 섬이다. 사람을 빌리는 바에서 주인공은 손님을 상대할 줄 아는 바텐더이며 바텐더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주변으로 물러나야 하며 어둡게 남아야 한다. 바에 비를 피해 온 손님을 받아주는 것은 바라는 공간이 아니라 바텐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페의 주인공은 공간이다. 카페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차도 음식도 아닌 공간 자체이다. 바가 사람을 빌려주는 접대업이라면 카페는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빌려주는 카페는 그 공간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좋은 카페와 그저그런 카페가 나뉜다. 그러면 우리가 카페에서 빌리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지유가오카의 한적한 분위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그린 스트리트다. 지유가오카 역 남쪽 출구를 빠져나와 2분 남짓 걷다 보면 푸르른 녹음이 한껏 자태를 뽐내는 가로수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그린 스트리트다. 아름다운 가로수들이 만드는 그늘 밑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벤치 아래로 커피 한 잔을 들고 오면 이곳이 바로 노천카페, 또 유명 스위츠 숍에서 달콤한 디저트 하나 테이크아웃하면 바로 노천디저트카페가 되니 지유가오카는 동네 자체가 커다란 카페.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지유가오카 카페 문화 발전을 저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성들이 열광하는 지역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다. 사실 봄이면 길가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가로수의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이면 거리마다 단품이 넘실거리는 무료 노천카페가 있는데 굳이 답답한 실내에 앉아 잇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지유가오카에 주로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디저트 샵들이 많이 모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거리 자체가 카페이기에 카페가 희귀한 곳. 저자가 생각하는 카페라는 공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거리가 지유가오카 같을 수는 없다. 인사동에서도 쉬려면 카페를 찾고 찻집을 찾아 돈을 주고 쉬어야 하는 게 도시이고 공간이 사유화된 도시의 논리이다. 그런 도시에서 이상적인 카페는 어떤 곳인가, 저자는 이런 곳이라 말한다.

“내 또래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진을 찍어대던 첫 방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고소앙과의 만남은 정취처럼 차분했다. 고즈넉한 다이쇼 시대 저택 그대로의 와관과 아담한 정원을 지나 들어서자 느껴지던 평온한 실내는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인 탓인지 관광객보다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엇다. 모두들 누가 들을세라 조근조근 담소를 나눈다.

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 이마 위로 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무색하리만치 시원한 바람이. 평소 같았으면 사정없이 내리쬐는 도쿄의 오후 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신선한 바람 탓인지 고소앙의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마냥 기분 좋게만 느껴졌다.”

그 공간은 혼자 또는 나와 같이 온 누군가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배경이어야만 한다. 그곳은 도시에서 물러나 쉬는 곳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해도 좋은 장소이다.

“나는 모카 포트로 끊여 낸 커피와 바나나 2개가 총총 박힌 바나나케이크를 먹으며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계속 흘러나오던 생소한 탱고 선율도 어느 새 익숙해져 모든 것이 편안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 쓰는 이 없고 누구 하나 나에게 눈치 주는 이도 없었다. 모두 각자 자기 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특별하다. 카페마다 자신만의 색이 있기 때문이다. “10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은 정말 이름 그대로 방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 카페는 운영하는 사람의 또 다른 방이라 생각한다는 이곳의 주인 사이토상의 말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공간이다. 마치 옆집 언니네 놀러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아늑하고 작은 방이다.”

그러나 카페가 모두 같은 카페는 아니다. 저자가 찾는 카페는 그리 흔하지 않다. “가만 생각해보면 혼자 잇을 때, 애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찾아가는 카페는 모두 다른 장소일 확률이 높다. 나는 주말을 제외하곤 거의 카페에 혼자 가곤 하는데 우리나라 카페에 가장 큰 불만은 바로 혼자 갈 만한 카페가 별로 없다는 것. 홍대 쪽의 몇몇 카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러 명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 여자 혼자 가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도시를 누비며 카페를 찾아 헤멘다. 이책은 저자가 꿈꾸는 그런 공간을 찾아 도쿄를 누빈 기록이다. 저자가 꿈꾸는 카페는 이런 곳이다.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가끔은 여자로서 ‘나’를 느끼는 순간이 절실해질 때가 있다. 내 취향대로 꾸며진 공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순간, 밑바닥을 쳤던 감성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흠뻑 차올라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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