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대 1:운명편
야마자끼 도요꼬 지음 / 청조사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일본에 점령당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렇게 원리원칙에 충실한 관료들은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리콴유가 보았던 그런 일본인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다.

패전이 현실화되던 1945년부터 이 소설의 타임라인은 시작된다. 도쿄 대본영 작전과 참모인 주인공은 만주의 관동군에게 소련에 항복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만주로 떠난다. 그가 비행장으로 가기 직전 대본영은 기밀서류를 소각하는 연기에 묻히고 있었다.

군인이 되기 위해 중등학교부터 군사학교를 다녔고 육사를 나와 군인의 길만 걸었던 주인공은 육군의 촉망받는 엘리트였고 30대 중반이란 나이에 중좌(중령에 해당)에 올라 대본영의 참모까지 올랐다.

어릴 때부터 군인으로 살았던 주인공에게 일본제국의 파멸은 군인으로서 자신의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파멸의 종지부를 찍는 관동군의 항복명령서를 전달하러 가는 길은 군인으로서 자신의 삶이 끝을 보는 길이기도 햇다.

주인공은 그 명령서를 전달하고 자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지의 상황은 그에게 자살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점령군으로 진주한 소련군은 무법자였다.

많은 일본군이 부패했었던 당시였지만 군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주인공은 소련군의 무원칙한 폭력에 분노한다. 소련군은 국제관례에 따라 포로로서 관동군을 대우하지도 않았고 민간인을 약탈하는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에게 소련군은 군인의 긍지도 없는 무법자일 뿐이었다. 그런 무법자에 맞서 포로가 된 관동군의 처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주인공의 일이 된다.

이후 소련의 몰상식함은 끝도 없이 주인공을 괴롭힌다. 이후 70만 관동군을 소련은 전쟁포로가 아니라 죄수로 대우하고 강제노역을 시킨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인의 1/5을 온갖 이유의 죄목을 씌워 강제노동소로 보냈다. 죄수보다 싼 노동력은 없으니까. 일본군 포로 역시 그런 노동력일 뿐이었다. 독일군 역시 그렇게 취급되엇고 동구권에서 끌려온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취급되었다.

70만이 넘는 관동군은 그렇게 3년 동안 노역에 동원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3년 후 일본으로 송환되지만 고위장교였던 주인공은 자본주의 방조죄란 죄목에다 간첩죄를 더해 전범으로 분류되어 11년을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에 혹사당한다.

이책의 시작은 11년이 지나 일본으로 돌아온 주인공의 회상에서 시작된다.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주인공으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다. 11년이란 공백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의 정체성이었던 일본제국은 사라져 그가 알던 조국은 더 이상은 없다. 그가 알던 세계가 사라진 곳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할지 주인공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돌아온 후 3년동안 그는 방위청에서 오라는 것도 뿌리치고 시베리아에서 같이 귀환한 부하들의 취직자리를 마련하는데만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를 원하는 곳이 나타난다. 그가 살고 있는 오사카의 종합상사에서 그를 채용하기를 원했다. 대본영 참모는 당시 돈으로 수천만엔을 들여 국가가 키운 인재였다. 그렇게 국가가 키운 인재의 잠재력을 원한 것이다.

그를 부른 상사는 재벌 소속의 상사가 아니었고 재벌 소속의 상사와 경쟁이 힘에 부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사의 사장은 재벌과 경쟁하려면 재벌의 조직력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고 일본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인재에게서 그것을 바란 것이다.

시베리아 회상 이후 1권의 1/3은 주인공이 상사에 들어가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할애된다. 군대 밖에 몰랐고 11년을 시베리아에서 보낸 주인공에게 상사의 분위기와 업무는 낯설 수 밖에 없고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군대에서의 작전 경험과 상업활동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1권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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