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의 인간관계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9
나카네 지에 지음 / 소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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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받아들여진다. 역사적인 악연도 있지만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만은 아니다.

일본 안에선 그렇게 예의바르고 싹싹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왜구가 되고 난징학살 같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야만인이 된다. 놀라운 변신능력이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선 일본인이 그럴 수 있는 이유를 2월 3일 節分의 행사에서 찾는다.

절분의 행사에는「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의 구령을 외치는 전통 행사가 있다. 이 행사는 콩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귀신(오니)역할을 집에서 가장 어른이 하고 나머지 식구들이 "콩"을 던져 귀신이 밖으로 나가는 행사를 매년함으로서 그 해의 액땜을 하고 복을 구하는 행사라고 한다.

이어령은 여기서 일본인에게 '우리'의 경계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일본인에게 '우리'는 '이에(家)' 즉 물리적인 집이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게임기로 유명한 닌텐도는 한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기업이다. 일본의 오래된 기업들이 그렇듯이 닌텐도 역시 가족회사이다. 그러나 그 '가족'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라 가족의 姓을 내건 깃발의 이름으로 이러진 가족이다.

닌텐도의 창업자에겐 아들이 없었다. 후계자는 사위로 이어졌고 그 사위도 아들이 없었다. 그 후계자는 또 사위가 되었다.

우리가 아는 데릴사위제도이다. 혈연의식이 강한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제도이다. 그러나 일본인에겐 아주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이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책의 저자는 사람이 모여  '우리'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집단을 만드는데는 두가지 원리가 있다고 말한다: 자격(attribute)와 場(frame).

자격은 혈연, 지연, 학연, 직업, 계급, 계층 등과 같은 개인이 가진 속성을 말하며 場은 공간적 테두리를 집단을  만드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두가지 모두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기준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두 기준이 어느 정도로 섞이는가에 따라 사회를 구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격과 장의 두 기준으로 사회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보면 자인도와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다른 사회들은 그 중간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자격을 기준으로 한 집단구성의 전형적인 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도의 농촌에서는 친정집에 가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시로 형제가 방문을 하고 원조를 받기도 하며, 고부간의 싸움을 옆집에 들릴 정도로 크게 하여 그것을 듣고 같은 카스트에 있는 옆집의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응원을 오기도 한다. 다른 마을에서 시집 온 며느리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일본의 여성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돈독한 것이어서 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며느리라는 같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기능이 발휘되어 '이에'라는 테두리와 교착하면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나선다'는 식으로 완전히 반대의 경향이 존재한다."

일본에선 며느리나 카스트같은 자격은 시집을 오면 사라진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경제적 공동체가 되면 일본에선 '우리'의 한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릴사위제도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며느리는 고달프다. "일본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는 '이에' 안에서만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학대받는 며느리는 자시의 친형제, 친척 내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원조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집을 갔으면 이전에 속했던 '이에'에선 탈퇴하고 다른 '이에'에 속하게 된 것이므로 다른 '이에'일 뿐인 친정사람들은 도와줄 이유도 없고 도와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의 공유에 의한 '우리'는 집단을 자연스럽게 묶어주는 자격, 즉 질적인 공통성이 없다. 그러므로 집단과 밖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기준이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데릴사위에게 가업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은 그런 모호성 때문이다.

모호한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방법은 정서적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친밀도는 서로 함께 한 시간의 길이와 강렬함에 좌우된다. 일본인들이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나누고 프라이버시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은 그런 친밀도를 높여 '우리'란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런 친밀도는 같은 장을 공유하지 않는 관계가 된다면 급속도로 약해진다. 그러므로 일본에선 혈연, 지연, 학연, 직업과 같은 자격에 근거한 중국식의 콴시와 같은 인맥이 형성되기 어렵다.

정서적으로 결합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붇는 관계로 이루어진 집단은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이 되며 '우리'라 부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냉담함을 갖게 되며 난징 학살과 같은 야만성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장에 의해 만들어진 배타적인 집단은 어떻게 큰 사회로 통합될 수 있을까? 기업이 커져 대기업이 되면 더 이상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게 된다.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에 의해 집단을 만들려면 종적 관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이란 제약을 받는 집단들은 횡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집단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방법은 위로 묶여 수직적 관계를 만드는 방법 뿐이다. 봉건제는 그런 방식의 조직화이다. 그러나 일본의 봉건제는 유럽의 봉건제와는 다르다.

봉건제는 주종관계의 네트웤이다. 유럽에서 그 주종관계는 계약에 근거한 관계이다. 그러므로 유럽에선 둘 또는 세 사람의 주군을 모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봉건제에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일본에선 집단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간의 정서적 친밀감에  근거하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공간적 특수성이란 맥락을 벗어나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한 보편성이 없다면 상대방을 모르더라도 서로간의 이익에 따른 합의가 가능하다는 계약과 같은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인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일본에선 추상적 보편적, 절대적 원리에 대한 사고가 발전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또 다른 사회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만한 위대한 종교가나 철학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일본적인 사회구조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자신과는 전혀 친분이 없었던 러스크나 공화당의 (일본류로 말하면 적의 진영에 속한다고도 생각될 수 있는) 맥너머러 등을 그 실력을 인정하고 발탁하여 조각할 수 있었던 것은 '계약'정신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적 친분을 떠나 공통의 목표나 이익이 맞으면 얼마든지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계약관계가  일본에선 결여되어 있기에 일본의 종적 관계는 오야붕-꼬붕의 관계이다.

오야붕-꼬붕은 계약정신에 기초한 비개성적인 그러므로 보편적인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일본의 조직도 시스템을 갖는다. 그러나 그 시스템에서 상하관계는 그 조직의 라인에 배치된 객관적인 계약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상사와 부하의 정서적 관계가 더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정서적 관계는 역시 '이에'의 길고 강렬한 관계에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종적 관계는 능력이라든가 자격에 의한 상하관계가 아니라 나이, 근무연수와 같은 조직내에 얼마나 있었는가가 서열관계가 지배한다.

물론 엄연히 존재하는 능력차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능력차는 같은 서열일 때 작용하며 능력차가 서열차를 누르지는 못한다. 이런 서열의식은 일본인의 과도한 평등의식을 낳았고 나도 하면 된다는 의식을 낳았으며 학벌주의를 낳았다.

서열에 의해 상하관계가, 종적관계가 결정되는 일본의 조직에서 조직은 오야붕과 꼬붕의 사적관계에 의존하며 조직의 단결력은 오야붕과 여러 꼬붕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리더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리더의 능력은 밑에 꼬붕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에 달린 것이며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꼬붕들을 어떻게 거느릴 수 있는가란 인간관계의 능력이며 꼬붕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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