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 타임패트롤 시리즈 3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6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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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타임 패트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이책에서 저자는 승자들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패자들에 대해 다룬다.

번역서의 제목이기도 한 첫편에서 저자는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이웃이었던 페니키아인들은 실제 어떤 사람들이엇는가를 파고든다.

우리가 페니키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적다. 그리스인들처럼 상업민족이었으며 무역로를 따라 해외식민지를 건설했으며 그 중 하나인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말살당했다. 그들의 주 상품은 달팽이를 짜서 얻는 자주색 염료와 유리였으며 알파벳을 창시하였고 자음만 기록하는 그들의 알파벳 시스템이 헤브라이어의 알파벳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거기에 모음 시스템을 더해 오늘날의 알파벳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 정도가 우리가 페니키아인들에 대해 아는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구약을 읽은 사람들이면 페니키아인들에 대해 몇가지를 더 알 수 있다.

구약에 나오는 바알신은 페니키아인들의 주신이었다. 그러나 굴어들어온 돌인 유대인은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페니키아인 즉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해야 했다. 그러나 선주인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고 마치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듯이 가나안을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과 전쟁을 벌여야 햇고 그들의 신은 악신이 되어야 했고 악인이 되어야 했다. 바벨탑에 대한 구약의 악의적인 왜곡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아도니스, 헤라클레스가 원래 페니키아인들의 신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바알 역시 풍요의 자연신일 뿐이었다.

악의적인 왜곡은 신전의 娼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전에서 여자가 몸을 팔게 하는 것을 보고 음탕한 종족이라 유대인들은 비난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적 교리에 따른 것으로 교리에 따라 처녀는 결혼 전에 처녀성을 신전에 헌납하는 것을 요구받았고 그때 한번 뿐이었다. 그후에는 정숙하게 살았다. 유대인들과 같은 정조관념을 갖고 잇지 않다고 즉 자신들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오늘날 레바논에 사는 필리스틴인들과 유대인들은 우호관계를 맺게 된다. 이편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솔로몬 왕 시절 페니키아의 중심지였던 티레이다. 기원전 10세기 철기시대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티레는 소아시아 지역의 무역중심지였다.

이편의 제목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은 성서에 나오는 것으로 솔로몬의 부를 나타낸다. 그러나 솔로몬의 부라는 것은 모두 티레를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 티레는 유대가 세계와 연결되는 창이었다. 솔로몬의 업적이라는 예루살렘의 성전도 티레의 왕궁을 축소해 그대로 모방한 것일 뿐이었으며 성전을 짖는데 동원된 거의 모든 자원과 기술자는 모두 페니키아에서 온 것이었다.

3나라로 분열되어 있던 이스라엘인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어놓을 수 있던 솔로몬의 힘도 티레의 원조와 동맹에 기대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페니키아인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책의 저자는 페니키아인들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런 모든 것들보다 제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개인의 차치와 권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페니키아인들이 그런 이론을 갖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철학면에서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험가와 상인을 겸한 무역상은 페니키아인들의 이상형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자율적인 인물상 말입니다. 지금 그들의 고향을 통치하는 히람 왕은 이집트나 동방의 신권왕이 아닙니다. 히람이 왕권을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을 보면 수페트suffet, 즉 판관을 의미하는 士師들을 주재하는 정치 지도자에 더 가깝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사사들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티레는 전성기의 베니스 공화국과 많이 비슷합니다. 저는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 특히 티레의 강한 영향을 받고 민주제를 발달시켰다고 확신합니다.”


저자는 이책의 2편, ‘몸값의 해’에선 남미를 정복한 미치광이 스페인들은 실제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다룬다.

콜럼버스의 소위 ‘신대륙 발견’은 인디언들에겐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재앙의 주역은 야만스런 광신자들인, 기사란 직함을 쓰는 스페인 깡패들이었다는 것이 보통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역사서들의 공통된 평이다. 저자는 거기에 대해서 별 이의가 없다.

이슬람세력으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하는 수백년동안의 싸움은 그들의 기질을 만들었다. 실제 그 사업은 신앙의 이름을 걸고 이슬람 도시의 부를 약탈하고 착실한 농부였던 이슬람교도들을 농노로 착취하는 말 그대로 수지맞는 정복사업일 뿐이었다. 수백년을 그런 사업을 하면서 스페인 귀족들에게 밴 것은 무엇을 생산하는 것보다 남이 생산한 것을 뺐는 것이 휠씬 손쉽다는 것이었고 그런 습성은 남미를 정복할 때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복한 남미가 독립한 후에도 귀족적인 과시욕과 낭비벽, 약탈벽 이외에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이 없었던 작자들에게 배운 사람들에겐 그럴듯한 문명을 이룰 무엇이 없었다.

이정도가 보통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역사서들이 스페인인들에 대해 언급하는 상식적인 평가이다. 저자는 특별하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나 여러분은 영어권의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은 몇 세기 동안이나 영국의 라이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포로파간다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았습니다. 실제로는 종교 재판 따위로 악명이 높은 스페인인들은 다른 동시대인들에 비해 특별히 악랄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나라보다 차라리 나은 점도 있었죠. 이를테면 코르테스 본인이나 토르케마다(스페인 최초의 종교재판소 소장)조차도 어느 정도는 정의롭게 현지인들을 대하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정복당한 현지인들이 조상의 땅에서 멸종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특히 영국인들과 그 후계자인 양키와 캐나다들이 현지인들의 씨를 거의 말리다시피 했다는 사실에 비추면 말입니다.”

물론 저자는 16세기의 기준으로도 스페인인들은 ‘괴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인들의 신대륙 정복은 완전히 사악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선하지도 않았다. 코르테스는 적어도 아즈텍족의 소름끼치는 집단적 인신고양을 중지시켰고 피사로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개념이 자리잡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두 침략자 모두 현지인들의 동쟁자들이 있었다. 그럴만한 동기를 가진 동맹자들이.” “잉카가 지배하는 나라는 평화롭고 순진한 사람들이 살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잉카 제국은 사방팔방을 향해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체주의 국가였죠. 삶의 온갖 소소한 부분까지 국가에서 통제를 했으니까요. 순순히 지시에 따른다면 냉대를 받지 않았지만 지시를 어기는 사람들은 가차없는 응징을 받았습니다. 귀족들조차 자유라고 할 만한 것을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신권을 가진 왕인 잉카만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었죠.”

물론 그런 잉카제국을 무너트린 코르테스가 선인을 아니다. 지금의 우리로선 그렇게 잔인하고 탐욕스럽고 야만스러우면서 그 모든 악행을 신의 이름으로 태연히 행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는 괴물이 아녜요. 우리 기준으로 보면 잔인하지만, 그건 태어난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는 쪽이 더 정확해요. 야심적이고 탐욕스럽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고결한 기사로 여기고 있어요.

저자는 물론 스페인 정복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의 눈으로 보면 정신착란으로 보이는 그들의 신념과 행동이 그 시대에선 정상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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