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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와 애플Inc. - 세상을 뒤집은 기업 애플의 30년 성장스토리
마이클 모리츠 지음, 김정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작년말부터 시작된 아이폰 쇼크와 함께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한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책의 제목만 보면 요즘 쏟아지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 관련의 또 다른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아마 아이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스티브 잡스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가 같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책은 애플의 창업자들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애플의 전성기가 끝나고 애플의 내리막이 시작되기, 매킨토시 출시 전야인 1983년까지를 다룬다. 아이팟과 아이폰과 같이 요즘 경영서의 화두인 제품에 관해서 에필로그에 다루어지고 있고 스티브 잡스가 사망 직전인 애플을 어떻게 기사회생시켰는가에 대해서도 다루어지지만 이책의 주제는 애플이 왜 그리고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아메리칸 아이콘’이란 별명에 걸맞는 회사가 될 수 있었는가이다.
물론 아이팟 이전 컴퓨터 회사로서의 애플에 관한 서적도 많고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은 더 많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많고 많은 책들과는 주제를 다루는 깊이에서, 다루는 방식에서 그리고 주제를 이해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다르다.
이책의 저자는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의 부모 세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워즈니악의 아버지가 직장인 록히드를 따라 스탠포드대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팰로 앨토와 쿠퍼티노 등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게 된 지역에 하나씩 방위산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HP와 인텔,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의 회사들이 자리잡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워즈니악과 잡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회사를 세우게 된 실리콘 밸리는 어디서나 엔지니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런 환경에서 기술과 친숙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살았던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잡스와 워즈니악의 어린 시절은 다른 책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잇는 내용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에선 저자와 같이 하나의 환경으로서 실리콘 밸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컴퓨터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런 전자기기를 직접 만지고 만드는 것이 숨쉬는 것과 다를 것이 없게 생각되는 환경을 그리면서 애플은 물론 그후 70년대 많은 IT 기업들의 모태가 되었던 홈브류 모임의 성격을 그려나간다.
홈브류 회원들의 특징은 바로 그런 기술을 숨쉬고 살던 지역의 젊은이들이 모인 것이었고 그 모임을 기반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성장한다. 애플도 그 모임의 회원들에게 자작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기판을 팔려고 시작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모임 회원들이 주로 보유했던 알테어 컴퓨터를 위한 베이직 언어를 파는 것으로 시작되엇다.
워즈니악은 당시 HP에서 잡스는 아타리에서 일하고 잇었다. 그들은 자작용 보드를 파는 것을 부업으로 생각했지 전업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그 부업이 어떻게 본격적인 사업으로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회사를 차리게 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고 인력란에 시달리고 시장을 찾아내야 하는 압박감 등 창업기에 어느 기업이나 겪게 마련인 악전고투를 실감나게 그리고 실제 그 과정을 겪거나 적어도 관찰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디테일을 잘 묘사한다. 저자가 애플의 창업과정에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벤처 캐피탈을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이 잘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창업초기의 악전고투를 극복하기 위해선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얻어야 했다. 저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창업초기에 어떻게 투자를 받고 투자자의 인맥을 동원해 인텔이나 내셔널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애플이 어떻게 안정을 찾아가는가를 자세하게 실감나게 그린다.
그리고 애플의 성공 이후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이책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50명도 안되는 작은 가족적 공동체에서 수백명 수천명으로 늘어나면서 모든 회사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듯이 체계화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체계가 잡히면서 어떻게 조직이 경직된 관료화가 진행되는지를 다루고 있으며 그런 관료화와 함께 창업초기의 역동성과 기동성이 사라지고 창조성도 메말라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려나간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이책은 요즘 유행하는 아이폰 쇼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다. 그보다는 창업의 악전고투와 성공 이후 관료화되어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문제들에 관한, 기업경영에 관한 더 일반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과도 별 관련이 없다. 물론 이책에서 스티브 잡스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이책에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 초창기의 여러 창업자들 중 한명일 뿐이며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질 뿐이다. 이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애플이다.
아이폰이나 스티브 잡스 때문에 이책을 읽으려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애플이란 회사나 실리콘 밸리의 초창기를 알고 싶거나 기업의 탄생과 성장통을 알고 싶다면 이책의 가치는 거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