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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제가 얻은 것은 도이며
기술보다는 우월한 경지입니다.
처음 소를 해체할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이제 소 전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저는 소를 정신으로 대했을 뿐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
기술자는 힘줄을 다치지 않고
더구나 뼈는 닿지 않습니다.
우수한 백정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힘줄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다치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소를 수천 마리 잡았으나
칼날은 숫돌에서 새로 나온 것과 같습니다.”
장자, 양생주 편에 나오는 백정에 도에 관한 우화이다. 그러면 누구나 우화의 백정처럼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그러면 그 백정은 가르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길을 가리켜줄 수는 없지만 그가 칼을 대신 잡아주지 않는 한 배우는 사람 스스로 알아서 깨우쳐야 하는 ‘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감’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 부르며 전문가의 ‘직관’이라 한다.
어느 일이건 그 일을 하는 사람만 알고 있는, 말로 할 수 없지만 몸으로 알고 있는 요령들이 있다. 그것은 오랜 경험에서 몸으로 익힌 ‘감’이다.
펜타곤의 의뢰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연구한 개리 클레인은 ‘의사결정의 가이드맵’에서 우리는 판단을 할때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한다고 말한다.
개리 클래인은 소방관들이 실제 어떻게 진화작업을 하는가 참여관찰을 했다. 1초를 다투는 화재현장에서 논리적으로 진화방법을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래도 진화작업의 성공률은 높은 편이다. 그 이유를 추적한 저자는 소방관들이 오랜 경험에서 나온 ‘감’에 따라 순간적으로 결정을 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랜 교육을 받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부딪히는 환자들은 모두가 개별적인 사건들이다. 의대에서 배운 교과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의사가 배출되는 과정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제각각인 임상사례들에 맞춰가면서 스스로의 암묵지를 만들고 ‘감’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지금의 의료환경이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졌다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매년 한 분야에 쏟아지는 의학지의 논문만 수만편이다. 깔려죽기 좋은 양이다.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총량이 폭증하면서 의학도 전문화의 길을 걸어야만 했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영웅 의사의 시대는 예전에 가버렸다. 의료환경 자체가 하나의 복잡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의료환경이 복잡계가 되면서 일어난 문제는 의료상의 실수, 그리고 사고이다. 저자는 인간이 통제하기에 의료환경의 복잡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마찬가지로 복잡계가 되어버린 건설업에서 해답을 찾는다. 예전의 건설업은 건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건축청부업자가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건축업이 기술적으로 복잡해지면서 건설의 모든 분야를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게 되면서 건설작업 자체가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 시스템의 중심에서 전체 공정을 조율하는 것은 체크리스트이다.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때 모든 관계자가 협의를 하고 그 리스트에 따라 전체 프로세스가 체크된다. 그리고 공기 중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관계자들이 모여 체크리스트를 수정해나간다.
간단한 방법이다. 그러나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하나의 팀으로 모여 규율을 가지고 하나의 작업에 매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작업을 하는 수술실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저자는 WHO의 프라젝트를 맡아 안전한 수술을 위한 프로토콜로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책은 어떻게 의료현장에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WHO의 프라젝트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건설현장과 수술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건설을 적어도 몇 달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수술실은 분초를 다툰다. 수술실에 필요한 것 역시 팀 워크을 위한 규율을 세우기 위한 체크리스트이지만 건설업과는 다른 형태의 체크리스트가 필요했다.
저자는 항공업에서 모델을 얻는다. 항공업에서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진 것은 1935년 보잉사가 제작한 모델 299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기종은 항속거리, 속도, 폭탄탑재량 등에서 그때까지의 모든 기종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조종하기가 너무 복잡했다. 시험비행에서 조종사는 방향타와 승강타를 해제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륙하다 추락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공군은 복잡한 비행조종을 안전하게 표준화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이후 항공업계의 표준 시스템이 된다.
저자는 항공업계를 모델로 수술실에 적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2009년 발표된 체크리스트는 보급 중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러한 체크리스트가 마찬가지로 복잡계와 씨름하고 있는 금융분야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예를 보여준다. 3명의 노회한 헤지펀드 매니저와 만난 저자는 그들이 투자결정에 체크리스트를 이용해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을 소개한다. 가치투자방법론을 사용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코카인 브레인에 걸리지 않도록 체크리스트를 사용한다.
대박의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우리 뇌는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상태에선 투자후보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쉽다. 그런 상태를 제어하기 위해 그들은 투자대상을 검토하는 둘째날에 제무제표의 각주를 읽는다. 셋째날에 10년간의 재무제표를 읽는다와 같은 식의 강제적인 절차를 지정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예를 든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을 풀어본 것이다. 저자가 체크리스트를 제안하는 것은 인간의 기억력과 판단력은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이 갈수록 복잡계가 되어갈 때 그런 인간의 취약성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의료 실수와 사고가 나는 것은 결코 몰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취약한 것이 당연히 의료계뿐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생각해볼 가치가 충분한 문제를 던지고 잇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