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브레인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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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네가 기어가는 것을 보던 사람이 지네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 많은 다리를 움직여 기어갈 수 있니? 놀라운데?” 그말을 들은 지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그 많은 다리를 움직여 기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네가 자신의 다리를 의식하면서 기어가기 시작하자 다리가 엉키면서 지네는 다시 기어갈 수 없게 되었다.

지네만이 아니다. 지네보다 훨씬 적은 수인 두 다리만 갖고 있는 사람도 자신이 평소에 어떻게 다리를 움직여 걷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두 다리가 꼬여 걸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행동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화된 행동이다. 심리학에선 그렇게 의식이 개입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behavior라 부르고 의도를 가지고 의식하면서 하는 행동을 action이라 구분한다.

이책의 저자는 과연 그렇게 우리의 행동을 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행동은 비행기를 조정하는 것과 같다. 비행기가 일상적인, 정상적인 상황에서 운항할 때는 기계가 조정하는 자동항법시스템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기계가 대처할 수 없는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조종사가 관여해 사태를 수습한다.

우리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 자신의 조종사와 마찬가지이다. 평소의 습관대로 ‘무심코’하는 행동으로 우리의 일상의 대부분은 별 문제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평소의 일상과 다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동화된 시스템에 따라 대처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 우리 자신의 통제권을 쥐고 상황에 대처한다.

저자는 그러한 무의식적인 자동화 시스템이 관여하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책을 썼다. 우선 저자는 이책의 시작에서 치매환자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대인관계 역시 그러한 자동화 시스템에 따라 조직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동화 시스템은 단지 걷는 것 같은 단순한 행동뿐 아니라 사람을 보고 반갑게 맞는 것, 애정을 표시하는 것, 상대의 의중을 읽는 것 등과 같은 고급의 행동까지 우리 행동 대부분을 관장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자동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주인은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일상의 미시적 수준에만 자동화 시스템이 관여하고 우리 자신의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군중심리, 성차별, 인종차별, 테러와 같은 정치적인 거시적 현상을 구조화하는 것도 우리의 자동화 시스템이라 말한다.

저자가 그런 정치심리학의 예를 다양하게 들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저자는 거시심리학을 시작한다.

취학연령 이전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아이들은 백인과 흑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 사진에 긍정적/부정적 형용사를 연결하도록 했다. 대상 아동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백인을 긍정적, 흑인을 부정적 형용사에 연결시켰다. 결과는 유치원생과 저학년 초등학생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인종차별의 뿌리는 아동기에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연구자는 미디어의 영향을 들었다. 미디어에서 주인공은 백인이며 흑인은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힘있고 부자이며 잘나가는 사람들은 백인인 것을 보며 자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인식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인종차별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런 인종차별이 사법시스템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정치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보여준다. 평범한 미국인 누구도 자신을 성차별주의자라거나 인종차별주의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의식 아래에 그들의 무의식적인 자동화 시스템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바로 자동화 시스템이 그러한 차별의 뿌리라 저자는 말한다.

그외에도 저자는 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되는가? 왜 태평양을 떠도는 한마리 강아지를 구하는데는 돈을 내면서 수백만이 죽어간 르완다나 수단의 학살에는 무관심할 수 있는가? 등의 다양한 주제에서 우리의 자동화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의 자신의 주인이 되는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이책의 주제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심리학에선 보편적인 주제이며 앞에서 든 이솝우화의 예처럼 수천년전부터 사람들이 알고 잇던 주제이다. 그리고 ‘무심코’라는 말에서도 알고 잇듯이 심리학자나 철학자가 아니라도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가치는 그러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책의 가치는 그런 현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물론 그런 주제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런 주제로 수많은 책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책의 가치는 재미있다는 데, 재미있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설득력에 있다. 이책의 띠지에 인용된 것처럼 이책은 ‘그리샴의 소설만큼 재미있고’ “말콤 글래드웰의 책만큼 재치가 번뜩인다.’ 450페이지나 되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흡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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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든 브레인, 당신은 편견에서 자유로운가?
    from The nGelmaum Notes 2010-07-29 10:07 
    참으로 오랫만에 도서 서평을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한권 읽는데 약 3~4일정도 소요되는데,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읽은 후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은 어땠을까? 란 생각을 하며 투영(投影)을 해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이 책을 접하신다면, 필자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는 책은 「샹커 베단텀(Shan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