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나의 선택 실험실 -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박사과정생이었던 저자는 실험결과 때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저자는 학교 근처 팔로 알토 지역의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선택에 관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더 큰 연구의 한 부분으로 그 연구의 결론을 지지해줄 증거로서 쓰일 것이었다. 그러나 뻔한 결론을 내주어야 할 그 실험의 결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저자는 유치원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장난감을 쌓아놓은 방에 아이를 들여보내면서 한 그룹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지정해 주었고 다른 그룹은 아이들이 스스로 장난감을 선택하도록 했다.

저자는 장난감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해줄 때 아이들이 더 오래 놀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마음대로 선택하게 한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빨리 방을 나가고 싶어했지만 장난감을 지정해 준 아이들은 잘 놀았고 방을 떠날 때 아쉬워했다. 결과는 그때까지 저자가 알고 있던 심리학 연구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은 우리는 선택권이 주어질 때 심리적 안정감(security)을 느낀다고 가정해왔다. 다시 말해 자신의 환경을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심리적인 근거가 있으며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생물학적 조건이다.

저자는 이책의 첫장에서 생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요약하면서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반복되는 실험에서 알수 있으면서도 피실험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물원의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상태에서보다 수명이 짧다. 객관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고 먹이가 더 풍족한데도 그런 것은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택권이 없다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라 부르는 관념은 분명 이렇게 심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시크교도인 인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부모와 같이 독실한 시크교도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자유의 의미가 우리가 적어도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분명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저자의 부모는 인도에서 중매로 결혼했다. 지금도 인도에선 우리나라의 할아버지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결혼하고 나서야 배우자의 얼굴을 보는 식으로 결혼한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자신의 부모가 그렇게 결혼했다는 말을 하면 모두 놀란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렇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의문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부모는 행복하게 살았다.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연애와 결혼이 연결된 것은 개인주의의 역사와 함께였고 그 이전엔 유럽에서도 그렇지 않았고 최근까지 대부분의 문화에서 그렇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권을 절대시하는,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관점은 서구의 그것도 최근의 현상일 뿐이다.

위에서 본 유치원 실험을 확장한 실험에서 저자는 자유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문화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이번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는 실험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두 장난감을 지정해준다. 장난감을 정해주면서 실험자는 그 아이의 엄마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를 원했다고 말해준다. 백인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싫어했다. 그러나 아시아계 아이들은 엄마가 원한다는 말에 오히려 좋아했다.

저자는 반응의 차이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중매로 맺어져도 불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이란 집단의 맥락에서 생각하는 문화에선 그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의 무게에 짖눌린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것같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에선 나는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해야한다. 서점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적들은 ‘너 자신이 되라!’고 명령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야 할 ‘자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저자는 묻는다. 자신은 어떤 사람이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이러 이러할 때 이러 이러하게 행동한다는 말과 같다. 즉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그것이 분명하지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정체성은,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의는 스토리일 뿐이다. 나는 과거에 어떻게 했고 지금 어떻게 하고 있다. 이러 이러한 선택을 해왔다는 스토리이다. 그러나 삶의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하는 설명은 대개 지나고 나서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사후합리화이며 이미지 조작일 경우가 많다.

이책에서도 인용되고 있고 많은 심리학 책에 인용되는 예로 흔들리는 다리에서 본 여성 연구자에게 연애감정을 느끼는 실험이 있다. 유원지에 청룡열차를 같이 타는 것도 이 실험의 응용이다. 뇌는 공포와 연애감정을 같게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합리화하면서 연애감정이라고 자신을 설득한다는 것이 그 실험의 요점이다.

자유란 자신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이러 이러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정체성 자체가 그리 분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유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묻는다. 자유가 심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심리학의 전통적 설명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진화에서 발전한 뇌의 수단인가?

저자는 우리가 자유에 절대적 가치를 느끼는 것같지는 않다고 본다. 처음에 인용한 실험에서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은 저자가 지나치게 많은 장난감을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다. 100개가 넘어가는 장난감 중에서 선택해야 된다면 중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선택권에 대한 실험들은 대개 6개 정도의 선택지를 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자유도 정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즐기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을 때 즐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문가란 남들보다 골라내는 안목이 높은 사람이다. 와인 전문점에 들어간 보통 사람이라면 수천, 수만병의 와인에 앞도당할 수 밖에 없다. 보통 사람에게는 오히려 선별된 소수의 추천상품만 제시하는 가게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와인 전문가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수만병의 와인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선택지를 좁혀나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유가 끔직하고 잔인할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소피의 선택’을 예로 든다. 나치 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아들과 딸 중에 누구를 가스실로 보낼 것인지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소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후 망가져 버린다. 저자는 비슷한 예로 더 이상 살 수 없는 신생아에게 무의미한 생명유지장치를 거둘 것인지 선택하도록 질문받는 부모의 경우를 예로 든다. 미국은 그런 선택을 부모가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선 그런 결정을 의사가 한다. 저자는 미국의 경우 부모들이 심리적 상처가 더 깊고 오래갔다고 말한다. 아이를 죽이라는 결정을 스스로 해야했던 심리적 상처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을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은 언뜻 보기에는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 위에선 일정한 스토리라인이 만들어지도록 요약했지만 실제 이책은 선택에 대해 이러저러한 저자의 사색을 그냥 되는대로 묶어 놓은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자유란 개념으로 생각할 때 이책의 내용이 위에서 요약한 것같이 묶일 수 있고 (저자는 자유란 추상적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잇지는 않다) 저자의 생각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요약해본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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