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입문서로 유명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앞부분은 이런 논의로 시작한다. 지금 컵에 담긴 물을 마시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철학자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지금 들고 있는 컵은 실재하는가? 무슨 멍청한 질문인가 생각하며 당신은 당연히 그렇다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철학자는 되묻는다. 당신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내가 손으로 만지고 있고 그 컵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데 그 이상의 증거가 필요한가? 철학자는 당연히 그렇다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까? 철학자가 무슨 말을 하든 귀를 닫고 계속 물을 마실 것이다.

보통 우리에게 철학이란 이런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괘변에 불과하다. 사는데 한푼어치 도움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 철학자도 강의실을 벗어나면 역시 컵으로 물을 마시면서 데카르트처럼 이 컵은 실재하는가?라고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윤리적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가고 묻는 이책 역시 쓸모없는 것일까? 언듯 생각하면 쓸모가 없다.

임대계약을 맺고 세입자를 들였다. 그런데 보일러가 고장이 나 온수가 안나온다고 세입자가 불평을 한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임대계약서는 온수가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주어야 한다는 조항까지 나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해석의 문제인데 그 해석을 놓고 세입자와 싸울 것인가? 그럴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 생활은 상식의 영역이다. 우리는 상식에 따라 행동하고 상식에 따라 상황을 해석한다. 그 정도로도 별 문제없이 살아간다.

이 책이 묻는 것은 바로 그 상식의 근거가 무엇인가이다. 그러면 왜 그것을 물어야 할까?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데 말이다.

그러나 정말 도움이 안될까? 상식이 깨질 때 철학은 도움이 된다. 계약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공유된 상식에 따른다. 그러나 그 공유된 이해가 깨질 때 우리는 상대와 합의를 구해야 하고 나아가 새로운 공통의 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는 바로 그렇게 합의를 만들고 상식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원칙이 되는 것을 정치철학이라 부른다. 하버드대 정치철학 과목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이책은 그 정치철학에 대한 입문으로 쓰여진 책이다.

입문서인만큼 이책은 기존의 유력한 학설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책에서 소개되는 정치철학 이론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말로 기억하는 공리주의와 보편입법을 말한 칸트의 자유주의도 나오고 존 롤스의 정의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그리고 저자가 속한 공동체론 등이 이책이 다루는 이론들이다.

그러나 이책은 단순한 소개로 끝나지 않는다. 나름 학계에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저자인만큼 기존의 학설들을 소개하면서 그 학설들을 나름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면서 그 비판에 근거해 자신의 이론을 강의의 결론으로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공리주의를 소개하고 그 공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입장에서 칸트의 실천이성론을 소개한다. 공리주의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결과론적 입장이다.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따라 그 행동이 정당한가를 판단한다. 그러나 칸트는 모든 행동이 결과로서만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기에 따라 행위는 정당화되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칸트는 영국의 소유적 개인주의의 자유개념을 뒤집어 윤리화했다.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정의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행위의 원칙을 선택하는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자유는 공리주의의 결과론과는 대립된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을 규정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정치이념을 지배하는 공리주의(복지)와 자유주의(자유)만으로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단수가 아닙니다.’ 어느 소설에서 읽은 구절이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며 누군가의 친구이고 누군가의 윗사람이며 누군가의 아랫사람이며 등등 나라는 사람은 여러 얼굴을 가진다. 그 얼굴 모두가 나이다. 나라는 인간은 누군가의 무엇이기에 그에 따른 의무를 지며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누군가가 모여 만든 집단이 정치의 대상이다.

저자는 그 집단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공리나 자유만으로 되지 않는다고 본다. 집단이 공유하는 공동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이상이 이책의 논의를 거칠게 정리해본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책과는 다르게 건조하고 이책의 생생함이 살아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책의 논의는 위에서 정리한 것과는 달리 생생하며 위트가 넘치고 재미있다. 저자는 단순히 과거의 학설을 정리하고 그 정리한 것에 근거해 자신의 학설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우선 정치철학이란 것이 어떻게 실제 생활과 정치에 적용되는지 구체적인 예들을 들면서 쉽게 논의를 풀어나가면서 실제 그런 논의가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되며 왜 그런 논의가 필요한 것인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정치철학, 또는 정의가 무엇인가, 자유, 평등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없더라도 (사실 그런거 몰라도 잘 산다) 잠깐의 지적 유희를 즐기는데도 이책은 그만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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