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역사
마크 스미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수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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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각은 의미의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가 감각에 대해 갖는 생각이다. 그런데 감각도 의미가 있다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랄 수 있다.

그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란 말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마샬 맥루한이다.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미디어의 이해’에서 맥루한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 한줄도 채우지 못하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 미디어가 도구일 뿐이고 메시지는 미디어로부터 중립적일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맥루한의 업적은 바로 그런 의문을 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맥루한은 사회의 미디어가 구어에서 인쇄매체로 바뀌고 다시 라디오와 TV로 바뀌면서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메시지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감각의 역사란 제목을 가진 이책은 바로 맥루한이 제기한 질문에서 등장한 분과에 대한 입문서로 쓰여졌다.

이책의 질문은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제기했던 이론으로부터 그 이후 어떤 발전이 있었는가를 요약하면서 이 분야에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을 감각의 역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혁명이라 말하면서 그 것을 ‘분수령’의 시점이라 말했다. 이후 구어에서 문어로 사회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시각이 다른 감각들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쇄기가 발명된 시절은 원근법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가들은 이 이론을 검증하기 시작했고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메시지를 만드는데 있어 시각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계몽주의 이후 역사에서 청각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다른 감각 역시 무시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책은 맥루한의 분수령 이론 이후 감각사라는 분야의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요약해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당히 흥미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책의 논의를 읽다보면 논의가 상당히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분야 자체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그다지 많은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로는 이 분야의 사료 자체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책이 다루는 주제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분야 자체가 생소하듯이 업적 자체가 일천하기 때문에 입문서로 쓰여진 이책에 실린 내용도 풍부하거나 깊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분야의 논의가 어느 수준에 와 있고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이라면 이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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