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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책의 첫 페이지는 인상적이었다. 책표지에도 실린 이책의 첫번째 사진은 티벳의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그 구도가 눈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찍은 이 사진의 구도를 따라가다보면 사원으로 보이는 건물이 나오고 그 건물의 배경이 되는 푸르디 푸른 쪽빛의 하늘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하늘이 저랬었던가? 이책에 실린 첫 사진과 그 뒤의 사진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는 하늘 자체만으로는 하늘을 알지 못한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항상 땅을 배경으로 하늘을 이해할 뿐이다.
고비사막처럼 자갈 사막의 황량한 땅을 딛고 심해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쪽빛으로 물든 하늘.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티벳의 풍경이다. 이책의 사진을 보면서 왜 티벳인들이 불교도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 장식이 없는 자연 앞에 내던져 사는 티벳인들에게 삶의 근본을 묻는 불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책의 사진이 보여주는 티벳의 풍경은 피안도 차안도 부정하면서 텅빈 삶의 모습(空)을 깨닫도록 몰아세우는 중관철학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중관철학은 티벳의 대승불교의 중심철학이다.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일관되게 중관철학의 심상이었다. 직관적으로 티벳을 느끼게(생각하거나 읽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책은 다른 어떤 티벳에 대한 책들보다 티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책은 완전히 잘못 선택한 경우이다. 이책을 골랐을 때 생각은 스님이 쓴 티벳 여행기였다. 책을 받았을 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책은 티벳 여행기가 아니다. 물론 이책의 주인공은 티벳이지만 그 티벳은 지리적 단위로서의 티벳과 그 지리적 단위에 사는 티벳인들이 아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티벳은 인문지리적 대상으로서의 티벳이 아니라 저자가 티벳을 여행하면서 본 저자의 기억 속의 티벳이며 저자가 티벳 불교를 공부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저자 머리 속의 티벳이다.
이책의 구성은 2-3페이지 정도의 짫막한 에세이들이 나열되어 있고 에세이마다 1-2컷의 티벳 사진들이 배치된 형식이다.
에세이들의 질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그 에세이의 성격이 문제이다. 에세이들은 보통 명상 장르라고 불리는 책들과 비슷한, 또는 불교서적의 법어집과 비슷한 성격이라 보면 된다.
물론 티벳과 그 글들이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간간히 저자가 티벳을 여행하면서 본 것들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저자가 티벳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은 것이 주종이다.
알기로는 요즘 한국불교에선 남방불교가 유행인 것으로 아는데 저자는 드물게 티벳어를 공부하고 티벳불교를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는 학술적이지도 않고 특정 종교인을 위한 것도 아닌 일반인을 위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쓰인 글들이지만 어느 정도 저자가 티벳 불교를 파고든 내공이 느껴진다.
그러나 티벳 여행기를 기대했던 입장에서 이책은 기대했던 책은 분명 아니다. 사진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내용을 알았다면 굳이 이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대만족이다. 사진만이었다면 이책은 5점을 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