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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명의 기원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05년 11월
평점 :
중국의 영어 명칭인 China는 진나라에서 왔고 한인, 한어, 한자의 한은 한나라에서 온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이란 문명의 외양은 진나라 또는 한나라에서 이미 완성되어 그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나라와 한나라로 완성된 문명의 외양은 춘추전국시대에 완성된 것이다.
지나치게 조숙하지 않은가? 세계 주요문명중에서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문명은 중국이 유일하다. 그리고 기원전에 쓰여진 문헌을 지금도 그대로 읽을 수 잇는 문명 역시 중국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연속성의 뿌리는 언제나 기원전의 춘추전국시대로 올라간다. 이 얼마나 조숙한 문명인가?
이책은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중국문명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춘추전국시대 이전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 시대 이전이라면 하, 상, 주(구체적으로 서주)가 되는데 서주에 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있지만 하와 상은 전설에 속하는 시대이다. 20세기초 중국에선 그 시절은 아예 꾸며낸 허구일 뿐이라고 까지 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갑골문이라 알고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고고학적 발굴이 쏟아지면서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고 기록되지 않은 시대에 중국문명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대에 관한 가장 뛰어난 개설서로는 The Cambridge History Of Ancient China (1999)가 있다. 캠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이책 역시 해당 분야의 권위자들을 동원해 자신의 분야에 대한 개설을 하도록 위촉한 책으로 1200페이지에 달하는 이책 한권이면 역사 이전 중국에 대한 개관으로는 충분하다.
이책 역시 캠브리지 히스토리와 마찬가지로 20세기 후반 쏟아져 나온 고고학의 업적에 기대어 춘추전국시대 이전 중국문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책은 캠브리지 히스토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여러명의 저자들이 동원된 캠브리지 히스토리와는 달리 저자의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잇다.
이책의 입장은 중국문명의 기본성격은 이미 신석기 시대와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중국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문명이다. 그 이유는 집약적 농업에 따른 생산성에 있었고 바로 그 집약적 농업이 중국문명의 성격을 규정했다고 저자는 본다.
집약적 농업이 등장한 신석기 시대는 돌과 뼈, 나무로 만든 빈약한 농기구 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 빈약한 농기구는 노동력 투입의 증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농업의 노동력 요구에 따라 농업의 단위는 씨족을 단위로 하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중국의 씨족중심의 문화를 규정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씨족구조를 정치에 원용한 것이 주나라의 종법제에 기반한 봉건제였다. 그리고 유가가 가장 큰 호소력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 씨족문화를 대변한 것이 유가였기에 중국의 현실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집약적 농업은 사회와 정치의 인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농경사회에서 노인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식 때문에 우대받는다. 경로사상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집약적 농업은 집단의 협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륜을 갖춘 리더를 요구했고 그것을 덕이라 부른다. 지도자로서의 덕은 연륜에서 나온다. 인자하고 후덕한 지도자란 중국의 리더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유가의 지도자 상은 그런 농업사회의 특징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러한 리더에 대한 이상은 유목 수렵 전통의 유럽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을 인용하면서 유목 수렵사회에서 지도자는 더 많은 사냥물을 잡아오는 사람, 즉 뛰어난 영웅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농업사회라는 특성 때문에 중국은 무신론의 성격이 굳어졌다고 지적한다. 농업은 한곳에 붙박이로 사는 환경이다. 그런 환경에서 노인이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존중되는 것은 오랜 세월 반복되는 규칙성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그런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오랜 관찰에서 나온 성찰과 지혜를 말하고 잇다.
그런 환경에서 공자가 말하듯이 괴력난신은 발붙일 곳이 없다. 괴력난신은 농사에는 아무 쓰잘데가 없는 것이며 예외적인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잘해야 흥미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상왕조는 주술적인 성격이 강했다. 상왕조의 최고신인 띠(帝)는 상왕실의 조상신이며 인격신이었다. 상의 왕은 제사장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주의 역성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장된 천명사상은 탈종교화에 결정적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주족의 최고신은 티엔(天)이었다. 티엔은 띠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신이다. 그러나 당시 대두되었던 天道無親(하늘은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다)이란 사상과 결합해 주족은 상나라가 정치를 잘못해 티엔의 천명을 잃었다. 티엔은 덕이 있는 자를 찾아 주족에게 천명을 주었고 주왕실이 티엔의 대리인인 天子로서 天下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뒤에 이 천명론은 맹자의 백성이 하늘이라는 역성혁명론으로 발전했고 동학의 人乃天으로 발전한다.
천명론에 따르면 티엔은 제사를 지낸다고 특별히 친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덕이 있는 자에게 천명을 내릴 뿐이니 天德에서 人德으로 무게중심이 바뀌게 되고 신은 기독교의 신과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변덕쟁이가 아니라 합리적인, 이치일 뿐이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후에 도가에서 天이 道가 되면서 理神論으로 발전하고 거의 범신론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천명론이 중국문명의 합리성과 인본주의를 가능하게 한 위대한 사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그 천명론이 중국의 한계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천명론에 따르면 천명을 받은 천자가 다스리는 것은 천하 즉 하늘 아래 모든 것이다. 시경에 따르면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것이 없고 하늘 아래 왕의 백성 아닌 자 없다. 여기서 중화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상왕조가 성립하기 전까지 중국의 문명이 특별히 주변 민족보다 뛰어나지는 않았다. 중국의 신화를 분석하면서 저자는 치우와 황제의 전쟁, 그리고 그후 여러 신화들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면서 신석기 시대부터 화하족과 주변민족간에는 서로 반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였고 특별히 화하족이 더 뛰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하 중류에서 발원한 화하족은 이후 다른 민족들을 밀어내고 흡수하면서 영역을 넓힌다. 산동반도에서 요서까지 살았던 동이족은 그 다툼에서 밀려 그러나 상왕조 이후 국가체제를 만든 화하족은 아직도 신석기 시절의 빈약한 경제구조와 생활방식, 정치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변민족을 압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부터 형성된 오랑캐에 대한 중국인의 멸시는 근거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먹을 것이 없게 되면 툭하면 침략해 자신의 것을 뺏어가고 사람을 끌고 가는 작자들을 경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우월의식은 주변민족과 교류를 하면서 발전해온 중국문명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중화주의에 물들었던 한, 송, 명 시절 중국은 정체되었고 중국의 발전은 대개 이민족의 정복왕조가 들어섰던 시절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저자는 예로 든다.
이상이 이책에 나타난 저자의 중국문명관을 요약해 본 것이다. 물론 위의 요약은 여기 저기 이책에 흩어져 있는 저자의 주장을 하나의 주장으로 줄거리를 만들어 엮어본 것이다. 이책의 목적은 위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맞다. 그러나 이책은 논문이 아니다. 이책의 우선적인 목적은 20세기 후반의 고고학적 업적과 기존에 신화로 기록되어 있던 역사의 흔적을 합해 글로 쓰여지지 않았던 중국문명의 뿌리를 탐색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서 이책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잇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