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의 저자에 따르자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좀 더 구체적인 비유를 들자면 펜티엄 프로의 하드웨어에 DOS를 돌리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가 가능한지도 한 세대 가까이 지났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 불릴 수 있는가?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의 정치문화를 지배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지역주의란 단어를 잘못된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지역주의가 망국병의 원인이란 말이 떠돈지도 기억이 가물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런데 왜 지역주의가 문제인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주의의 문제를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표의 쏠림 현상, 둘째 자리의 쏠림현상 셋째 향리주의. 그러나 왜 이게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사람에게 표가 많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당선된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려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나 적대 세력의 사람을 쓰기 보다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인선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탕평책이란 것은 우악스런 알도 안되는 정책이라 지적한다) 내 지역이 우선이라는 향리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지역주의가 도대체 왜 문제인가? 저자는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다. 위의 3가지 중 호남에서 90% 이상의 표 쏠림이 있지만 그런다고 대한민국이 내전으로 조각이 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고 지적한다. 게다가 저자는 지역주의란 말을 하면서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보기에 지금의 지역주의라 불리는 현상의 원인은 광주사태 때문이라는 것이다. 광주사태란 황당한 경험을 한 호남사람들은 그 사태를 일으킨 정치세력을 불신할 수 밖에 없고 그 후계자인 세력에게 당연히 반감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영남의 표 쏠림은 또 다른데 김대중에 대한 반감으로 김대중의 후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표 쏠림 현상이 지역주의라면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이고 다른 어떤 대안도 가능할 것같지는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표 쏠림이 나온다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대한민국이 그것 때문에 무슨 망국병을 앓고 있는가? 저자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역주의를 문제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망국병이라 말한다. 실제 문제가 아닌 것을 이름을 붙여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몰아 공격하는 마녀사냥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가짜문제’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의 특징을 일차원적 합리주의와 선험주의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관념론적 사고방식이다. 저자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미성숙의 특징으로 본다. 세상에는 항상 정답이 있고 진리는 하나라는 태도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사고방식을 산술적 합리주의라 말한다. 1+1=2라는 정답이 있듯이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그 답을 아는 사람이라는 오만을 드러낸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으니 나와 다른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답이 여러 개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합리성이란 정해진 답을 찾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합리성이란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 합리성이란 답을 만들어가는, 진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할 뿐이다. 저자는 현실의 합리성을 입체적 합리성이라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옹고집 오만 덩어리들은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현실이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성 위에서만 성립하는 현실의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답이 현실에서 부서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한다. 불확실성을 두려워 하는 제노포비아, 익숙한 것 알고 있는 것만을 지키려 하는 폐쇄적 사고방식이 한국의 정치문화를 질식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의 합리성이란 토론과 타협을 통해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할 뿐이다. 저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덜된 옹고집들은 자신과 다른 답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토론과 타협으로 자신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불확실한 것과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하기 싫은 것을 힘으로 누르고 침묵시키려 한다. 이상이 이책의 저자가 말하는 바를 간단하게 요약해 본 것이다. 그리 낯설지 않은 주장이다. 한국문화의 폭력성에 대한 말은 많이 나왔고 파시즘, 전체주의적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책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 많은 말들 중에서 이책의 가치는 그것을 정치에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일반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대단히 장황하게 말하고 잇고 중언부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치 그중에서도 문화 그중에서도 담론의 형식에만 한정된다. 사실 읽어나가면서 왜 이렇게 두꺼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책의 제목처럼 모든 사람이, 정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상당히 기초적인 개념까지 자세히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상당히 자세하게 사례를 들고 사례를 분석해나간다. 전체적으로 이책이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자가 의도한 것처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가 왜 이 모양인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잃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라면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