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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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보의 3별가 중 한 구절이다. 이책이 다루는 제자백가들은 바로 두보가 대변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중국인을 '현실적'이라고 한다. 중국인의 현실성은 공자시대의 중국과 동시대의 다른 문명권을 비교해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를 '축의 시대'라 한다. 그리스에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헬레니즘 문명의 기초를 놓았고 인도에선 힌두교가 성립하고 부처가 등장했으며 팔레스타인에선 유대교의 개혁이 한창이었다.

축의 시대 다른 문명권의 현자들은 종교나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상이 아닌 천상의 양식을 따졌다면 중국의 공자는 정치를 물으면서 지상의 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공자의 현실주의는 이후 제자백가들의 문제의식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축의 시대에 등장한 현자들이 보았던 현실은 혼란의 시대였고 전란의 시대였다. 씨족 사회 또는 부족 사회의 세계관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았다. 변해버린 세상은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고 새로운 해법을 요구했다. 중국 이외의 다른 문명에선 그 해석과 해법을 종교와 철학에서 찾았다.

붓다를 배출한 인도는 종교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현실이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잇는 것으로 만들면 된다.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는 나를 바꾸면 된다. 즉 그들에겐 현실에 대한 해답은 종교에 있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의 후배들은 혼란과 전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전란을 끝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방법인 정치학이었다.

이책은 저자가 백가강단이란 TV 교양강좌에서 강의한 원고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책 이전에도 삼국지강의나 초한지강의를 강의했던 저자는 역사에 밝다. 저자는 역사전공이 아니라 문학전공이지만 역사학자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역사가라 할 수 있는 저자는 제자백가를 철학사가 아니라 역사로서 해석한다.

저자는 공자와 후배들의 문제의식을 예악질서의 붕괴에서 찾는다. 공자가 꿈에서 만나던 '주공'이 세운 예악질서가 무너지면서 혼란과 전란이 시작되엇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자는 예악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해답이라 생각했다. 공자는 예악질서의 근본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혼란이 왔다고 생각했고 그 처방으로 예악질서의 근본인 仁을 회복하는 것을 제시했다.

예악질서란 주나라 봉건제도에서 지배층의 관계를 규정하는 규칙이다. 봉건제란 천자가 제후국을 봉하고 제후는 대부를 봉하고 대부는 가신(사 계급)을 봉하는 계층질서를 말한다. 이들의 관계는 주종관계이면서 동시에 친족관계(종법제)이다. 그리고 이들 간의 인간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 '예'이다.

공자는 예의 근본정신을 인이라 말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또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러나 그 근본정신이 흔들렸기에 혼란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근본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학을 平天下의 원리로 생각했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천명으로 생각했다. 그가 知天命이라 말한 것은 정치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후배들 역시 공자의 문제제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평천하할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이 달랐다.

공자의 첫번째 후배인 묵자는 공자의 문제의식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다. 공자의 문제의식은 지배계급의 문제였다. 천하의 혼란은 지배계급의 관계가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우면 질서가 회복되고 천하는 다스려진다. 공자의 정명론이다.

그러나 묵자는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햇다. 묵자는 겸애를 들고 나온다.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공자에게 사람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지배계급에만 한정된 것이다. 人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만 쓰는 말이고 예는 그들간의 관계이며 인 역시 그들간의 관계를 말한다. 정치적 권리가 없는 民에게는 예가 아니라 법이 적용된다.

묵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면 인과 민의 구분이 없어야 하며 모두가 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의 혼란은 천하의 정의 즉 義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겸애 즉 무차별한 사람의 핵심이다.

노자와 장자는 둘 다 반대한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천하의 혼란은 이미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이니 쓸데 없는 짓은 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천하에 대해선 無爲해야 할 뿐이다. 도가의 이상향은 공자와 같이 서주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으로 훨씬 올라가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 원시 씨족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 시절이 가장 자연스런 시절이었고 하늘의 도에 가까웠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천하의 혼란은 도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가의 정치학은 정치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에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도가 사라지니(씨족사회) 덕이 나오고(예악정치, 주나라) 덕이 사라지니 인이 나오고(공자) 인이 사라지니 의(맹자와 묵자)가 나오고 인의가 사라지니 법(법가)이 나왔다.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법가는 자신의 선배 모두에게 반대한다. 모두 비현실적인 헛소리라는 것이다. 정치학은 현실의 학문이다. 그러므로 정치학은 뒤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현재와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 그리고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가능한 것을 실현하려고 해야 한다.

저자는 법가가 3가의 종합이라 말한다. 법가는 권력의 학문이다. 법은 권력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면 권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천하의 정의(義)를 위한 것이다. 이는 묵가에서 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묵가의 겸애는 모순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질서는 어디서 오는가? 해답은 리바이어던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모두가 이기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를 가질 때 질서에 대한 해답으로 국가가 요청된다고 말햇다. 묵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모두가 제 목소리를 낸다면 궁극적인 결정은 국가가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가는 국가주의가 되었다. 천하의 혼란은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개인들이 자신의 자유를 국가에 모아줄 때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가는 국가의 중심인 군주의 권력이 확고해야 한다. 헤겔이 국가가 보편이성의, 절대정신의 실현이라 햇던 것처럼.

그러므로 법 술 세라는 법가의 3대 핵심어는 모두 군주의 권력을 위한 것이다. 법은 권력이 유지되기 위한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며 술은 권력이 침해되지 않기 위한 방어적 권모술수를 말하며 세는 권력의 행사에서 오는 세력이다.

결국 제자백가의 꿈인 천하의 안정은 법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법가의 사상에 따라 제국이 건설되면서 천하는 안정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약으로는 이책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방송강의이다. 그리고 이중톈의 모든 방송강의가 그렇듯이 강의의 맛은 구어로 풀어내는 디테일에 있다. 요약에선 그 디테일은 살지 않는다. 제자백가에 대한 이중톈의 견해는 위에 요약된 것으로 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맛을 보려면 그의 책을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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