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버냉키와 금융전쟁
데이비드 웨슬 지음, 이경식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책은 미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벤 버냉키이 18개월 동안 어떻게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막아냈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 18개월동안 벤 버냉키를 사로잡은 감정들은 공포와 당황, 경악그리고 피곤함이었다.

‘수수께끼야’ 버냉키의 전임자인 그린스펀이 미국경제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는 쌓여야만 가는데도 이자율은 낮고 돈이 넘쳐나는데도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린스펀 재임 시절 미국경제는 경제상식이 부정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물러나고 버냉키가 의장직을 맡았을 때 미국경제의 수수께끼는 풀렸다. 그 수수께끼의 답은 중국이었다.

2000년대 세계경제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다. 미국이 대적자를 양산하면서 대량의 피를 내면 그 피를 중국이 마셔 저축을 하고 그 저축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적자를 메워주는 시스템이었다.

아무리 적자가 나 돈의 수요가 넘쳐도 밖에서 돈이 계속 들어오니 돈은 넘쳐나고 돈의 가격인 이자율은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돈이 넘쳐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가 일어난다. 그러나 중국에서 저가로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니 오히려 디플레가 일어날 판이다. 그렇게 중국이 저가품을 팔아 번 돈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적자를 메워준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장기간 적자를 내면서 버틸 수 있었고 아시아 국가들 역시 장기간 흑자를 내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불쌍하게 여겨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없다. 중국으로선 막대한 흑자를 굴리기에 가장 좋은 곳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공학이란 비전을 가진 월스트리트는 돈을 굴리는데 최고의 장소였다. 그러나 버냉키를 놀라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으며 당황하게 만든 것 역시 그 금융공학이었다.

월스트리트가 자랑하는 비전인 금융공학의 요점은 레버리징이었다. 100만원을 투자해 1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하자. 10%의 수익율이다. 그렇다면 자기 돈 100만원에 900만원을 빌려 1000만원을 투자한다면 1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수익율은 얼마인가? 100%이다. 내돈은 100만원만 들이고 수익은 100만원이기 때문이다.

호황일 때는 모두가 행복했다. 그러나 경기는 돌고 돈다. 문제는 시장이 내리막일 때 수익율이 마이너스가 될 때이다. 경기의 흐름이 바뀌어 수익률이 -10%로 바뀌었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투자의 손실률은 얼마일까? 100%이다. 1000만원을 투자해서 100만원을 손해봤지만 900만원은 빌린 돈이다. 결국 수익률을 10%에서 100%로 끌어올리는 마법이 손실율 10%를 100%로 증폭시켰다.

18개월동안 버냉키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대면서 잡아야 했던 금융시장의 대화재는 바로 100% 수익률이 100% 손실율로 바뀌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과정이었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위기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단순한 것도 이해하기 쉬운 것도 없기 마련이다.

주택거품이 꺼지고 서브프라임 문제가 표면화되었던 2007년 버냉키는 문제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되는 서브프라임 대출은 전부 해봐야 5천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라면 문제인 규모이지만 그 정도로는 금융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은 버냉키는 물론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지금에 와서 모두가 알고 있듯이 부실대출이 증권화되고 구조화되어 판매된 과정이 문제였다. 누구도 자신이 산 증권에 부실대출이 얼마나 포함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장의 신뢰성이 무너진 것이다. 거래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디레버리징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막대한 손실이 쌓이면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시장의 한복판에 있던 당사자들에겐 그런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았다. 사태가 분명해지고 위기가 진정된 지금에 와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버냉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서브프라임 대출이 시장을 무너트릴 것이라는 것은 2007년 당시 분명한 것이 아니었다. 버냉키 역시 그러했고 연준은 위기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후반기가 되면서 사정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징후를 감지하면서 버냉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대공황을 전공한 학자로서 버냉키에게 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이책은 버냉키가 위기를 감지한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책의 내용은 이후 버냉키와 재무장관 폴슨, 그리고 뉴욕 연준의 (오마바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이 된) 가이스너가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대책을 내놓았는지 어떤 대책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또는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보여주고 18개월이란 시간동안 그들이 미국경제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증폭되었고 어떻게 진화되었는가는 지금에 와서 상식에 속한다. 이책은 그런 상식에 속하는 설명을 다시 늘어놓지 않는다. 이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버냉키와 폴슨, 가이스너의 시점에서 그들에게 현실이 어떻게 보였는가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본 바에 따라 위기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는가를 그들의 시야에 맞춰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책의 시점에선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경제 전체의 흐름이 잡히지 않는다. 단지 이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위기를 맞아 공포에 떨면서 그 위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땀냄새이다. 그리고 대책을 내놓아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에게 현실이 얼마나 가혹했는가도 보여준다. 언제나 사태는 그들이 가정한 최악보다 더 나빠졌다. 그럴 때 주인공들이 느끼는 당황과 경악 역시 이책의 주 내용들이다. 그러나 대공황의 권위자로서 대공황을 재연할 수 없다는 공포는 주인공을 다시 몰아세운다.

이책의 내용은 그렇게 흘러간다. 처음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후부터 베어스턴스, 리먼 브러더스, AIG 등을 거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위기의 진행을 버냉키와 폴슨, 가이스너의 시점에서 그들이 본 현실을 그들이 느낀 감정을 서술하는 것이 이책의 내용이다.

그러한 서술방식은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지나고 나서 보면 상황이 정리되어 보이지만 그 한가운데를 지날 때 상황은 분명하지 않은 법이다. 이책은 사태가 지나고 나서 정리된 내용들을 다루지 않는다. 오직 그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시점에서 사태를 기술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혼란이 이책의 가치이다. 위기의 한가운데서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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