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번영 - 현대 금융경제학이 빚어낸 희망과 절망
이찬근 지음 / 부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인이 한국경제에 대해 쓴 책치고 제대로 아니 품질이 제대로 된 것을 못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입장의 품질 때문인 것같다.

경제현실에 대해 쓰려면 불가피하게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적영역에 유행하는 담론들이라는게 구닥다리다. 서구의 기준으로보자면 70년대 이전에나 유효한 논리를 21세기에 써먹으려니 현실과 맞지 않고 현실과 맞지 않는 프레임에 현실을 우겨넣으려니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 류의 입장 중 하나가 이책의 저자가 버린 한국의 좌파 그중에서도 좀 세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민주의 입장이랄 수 있다.

저자는 한때 한국이 나아갈 방향으로 사민주의를 주장했었다고 서문에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모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책은 그러한 좌파의 입장에서 세계화론자 정확히는 세계화 불가피론자로 전향하게 된 저자 나름의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왜 한국의 좌파들이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가를 에필로그에서 지적한다. 한국의 좌파들이 의지하는 담론에 중심 개념인 민주주의, 공동체, 국가, 노동이라는 것들이 세계화의 파괴력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좌파의 담론에 등장하는 그 개념들은 어디까지나 세계화 이전의 70년대 이전의 세계에서나 유효할 수 있는 개념들일 뿐이다. 지금은 현실이 아닌 흘러간 역사일 뿐이다는 것이다.

사민주의는 역사적으로 실재한 시스템이다. 1차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 주도적인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모델이 유효할 수 있는 환경은 어디까지나 폐쇄된 경제의 일국 경제에서나 유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로 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유효할 수 없는 모델이다.

그러나 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사민주의 모델, 주류경제학의 용어로는 케인즈주의, 조절학파의 용어로 하자면 포디즘 모델은 파산햇다. 그리고 대체이념으로 나온 것이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이념이다. 저자는 지금의 세계화를 시동하게 한 것은 바로 이념이었다고 말한다.

시장의 실패보다 국가의 실패가 더 나쁘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시장의 효율과 사회의 형평의 균형을 추구하던 케인즈주의 모델을 부수었다. 장기불황의 비참함에서 사람들은 경제의 엔진을 돌려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시장의 효율성을 우선한다는 합의를 이끈 것이다.

이후 탈규제, 민영화로 대표되는 흐름이 레이건과 대처에 의해 시동되었다. 그리고 세계화의 시작은 금융의 자유화부터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은행은 따분한 직장이었다. 영업은 주의 일부지역에만 할 수 있었기에 2만개나 되는 은행이 있었고 예대금리의 제한을 받았으니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금융자본의 비대화로 인해 생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대공황을 촉발했다는 반성에서 금융산업을 과도하게 규제한 결과였다.

그러나 금융업의 탈규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회생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월스트리트의 주도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벤처캐피털과 같이 신성장동력을 키워낼 수 있었으며 세계각지로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었고 중국과 인도와 같은 신흥경제가 클 수 있게 자본을 댈 수 있었다. 저자는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의 금융자본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양극화가 지적되고 잇듯이 세계화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세계화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부를 만들었지만 그 부는 종속이론에서 언급했던 부등가 교환에 기초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로 가치 이하로 임금을 받는 중국 등의 저임노동력이 그 근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수출은 중국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 수출의 절대다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하는 것이다. 미국에 중국이 수출하는 물량의 반 이상은 미국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임금만 주고 상품을 만들면서 미국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노동자가 중국 노동자와 경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쟁은 임금상승률을 생산성 증가 이하로 묶었고 양극화로 이어졋다. 저자는 프리드먼의 평평한 세계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라 말한다.

양극화는 우리가 보고 있듯이 사회를 분열시켜 공동체를 무력화시킨다. 그러나 국가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양극화를 시정하기 위해 임금을 올린다든가 기업의 이윤에서 세금을 더 거둬 분배를 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으로선 죽으라는 말이기에 다른 유리한 나라로 떠나라는 말이 된다. 결국 민주주의도 국가도 노동도 무력화된다.

그러나 세계화가 이런 파괴적인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세계화를 미국보다 더 지지하는 나라는 부등가 교환 시스템에서 을의 위치인 중국과 인도이다. 그들은 세계화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는 성장을 이루었고 거기서 막대한 혜택을 보고 잇다. 사실 세계화로 그 어느 때보다 세계의 빈곤은 감소했다.

세계화가 유지되고 가속화된 것은 이런 상호의존성 때문이다.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유리한 것이다. 세계화에서 소외된 북한과 버마를 보라.

그렇다면 양극화와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많지 않다. 저자는 프리드먼이 말한 것처럼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교육만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에서 가장 혜택을 크게 누리는 문제해결형의 지식노동자가 20%나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세계화에서 블루컬러의 몫은 적다. 선진국이든 중국이나 방글라데시등 공장노동자의 수준은 평준화되어 간다. 서비스업도 대우가 좋지는 않다. 세계화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혁신을 만들어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성을 가진 지식노동자이다.

이런 세계에서 대안은 그런 지식노동자를 최대한 많이 키워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나아갈 방향이며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이책의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세계화에 대한 주류입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돋보인다.

우선 이책은 저자가 자신의 전향 이후 나름의 입장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책의 논의는 주로 세계화에 대한 기존 논의들을 요약하면서 저자 나름으로 해석해나가는 식으로 되어 잇다. 저자의 지적 방황을 모아 책으로 정리하는 것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다른 한국의 저자들이 쓴 책들과는 다른 지적 긴장감이 있다. 그리고 그 지적 긴장감의 밑에는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한국의 진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모색이 있다.

물론 이책은 세계화에 대한 교과서라 할 수 있는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처럼 발로 뛰면서 쓴 책이 아니다. 이책의 모색은 현장보다는 종이 위에서의 책상에서의 모색이다. 그러나 이책은 현실감각이 있다. 그 현실감각은 바로 저자의 고민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고민은 한국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기에 이책은 단순한 문헌의 요약이 가질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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