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폐전쟁 ㅣ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은 교묘하게 쓰여진 선동이다. 이책의 논지는 간단하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은 약하디 약하다. 그리고 세계라는 무대에서 약하다는 것은 죄이다. 19세기 아편전쟁이란 터무니 없는 폭력을 당해야 했던 것처럼 중국이 약한 것은 죄가 된다. 21세기에 19세기의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중국은 미국이 정한 세계경제의 규칙인 달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려면 중국 자신의 화폐인 위안화로 무역을 할 수 있어야 경제주권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중국의 실력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 정도가 아니다. 그러면 두눈 뜨고 미국에게 얻어맞아야 하나? 방법이 있다. 금본위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갑자기 금본위제라니?! 금본위제는 대공황을 최악의 경제위기로 만든 원인이 아닌가? 지금에 와서 케인즈가 야만의 유물이라 혹평한 금을 꺼내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책은 그런 의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다. 이책은 금본위제가 왜 지금 필요한가를 밝히기 위해 영국에서 시작된 중앙은행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사를 보았다면 누구나 알듯이 지금의 은행가들의 선조는 영국의 금세공사들이었다. 물론 메디치가문과 같은 은행가들이 그 이전에 있었지만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란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금세공사들때문이었다.
금이란 사실 거래수단으로 사용하기는 거북하고 불편하다. 분실할 위험도 있고 무겁고 번거롭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실물금을 들고 다닐 필요없이 내가 금을 갖고 있다는 증명만 가능하다면 된다. 그래서 금을 취급하는 신용있는 업자인 금세공사들에게 금을 맡기고 영수증을 받아 그 영수증을 금대신 쓰는 것이다.
그런데 금세공사들은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된다. 금을 맡아두었더니 찾아가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금덩이를 놀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기가 맡은 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금본위제는 바로 이런 제도가 발전한 것이다. 금보관증이 화폐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가 화폐를 받는 것은 금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런데 지금은 법정 불환화폐의 시대이다. 우리가 쓰는 돈은 금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쓰는 화폐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의 비밀이며 국제 금융재벌의 음모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앙은행의 시초는 영국은행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국은행이 2차대전 전까지 민영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는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전까지 유럽의 국가들은 세금만으로 재정을 충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쓸데는 많다. 관료들 월급을 주어야 하고 군대에 봉급을 주고 먹여주고 무장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전쟁을 해대는데 전쟁은 돈먹는 하마다. 해결책은? 빚을 내면 된다.
여기서 국채가 등장했고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것이 가장 수지 맞는 금융사업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을 대규모로 하는 은행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영국은행이었다. 미래에 국가가 거둘 세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서인 국채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한다.
이것이 중앙은행이라는 것이다. 땅집고 헤엄치기이며 도랑치고 가재잡기이다. 안정적인 이자수입에 때일 염려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민영 중앙은행을 두고 미국에서 100년동안 금융재벌과 정부의 전쟁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은 식민지정부가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여 식민지 경제를 활성화한 것에 영국은행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런 발권행위를 금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식민지에서 분노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독립 후에도 영국의 금융재벌들은 정치가들을 조종해 미국에 민영 중앙은행을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 링컨의 암살은 그런 갈등이 원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20세기 초 마침내 연방준비은행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영은행이 아니라 민영은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융재벌들이 성공한 것이다. 미국이란 거대한 경제를 은행가들이 장악한 것이다. 그들은 미국 정부 국채의 이자수입을 받을 수 있게 되엇다. 그리고 중앙은행을 장악하면서 경제에 돈을 풀고 거두는 권한을 갖게 되었고 금융재벌들은 의도적으로 돈을 마구 풀어 호황을 만들고 갑자기 돈을 거둬들여 경제위기를 만들면서 우량자산이 헐값이 되도록 한다음 헐값으로 그 자산들을 사들이는 음모를 꾸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9세기의 대표적인 경제위기들과 대공황도 그런 음모에서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단한 치부채이다.
경제위기만 그들이 만든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채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것은 전쟁때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장사에 최고라는 것이다. 1,2차대전은 그렇게 일어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않은 것이 금본위제가 사라진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처음에 금융재벌들은 금본위제를 지키려 했다. 자신의 자산가치가 안정적이 되길 원한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를 조장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인플레는 다들 알듯이 돈의 가치를 떨어트려 부의 재분배를 일으킨다. 금본위제에 묶이지 않은 화폐는 필연적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재분배된 부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휠씬 대단한 이익이라는 것을 금융재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닉슨이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한 이후 달러의 가치는 98%가 하락한 것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는 위안화가 세계에 통용되려면 금의 가치로 지지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아주 재미있는 음모론이다. 그러나 얼마나 이런 주장이 사실일까? 이책의 내용은 기실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한다. 문제는 저자가 그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저자가 금융재벌들의 음모를 파헤친다고 하지만 음모론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서 추정한 간접적인 논리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음모론으로 머물겠는가? 문제는 그 추정에 이르기 까지의 논리가 매우 선정적이고(그래서 재미있는 것이지만) 비약이 심하며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본위제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지금의 세계경제를 금이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세기 영국의 경제는 디플레에 빠져 침체하는 일이 많았다. 금의 생산량이 경제의 성장속도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대공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경제사를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의 논리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 논리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의도적인 왜곡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책은 잘 언급되지 않는 역사를 드러내고 이렇게 역사를 읽을 수도 잇구나란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일독의 가치는 있다.
평점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