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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지금은 꽤 된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떠들석했던 일이 있었다. 한국의 기업은 2류 공무원은 3류 정치인은 4류.
그 평가가 있은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정치가 4류라는데는 변한 것이 없는 것같다.
이책의 저자는 방송토론 사회자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방송토론을 진행한 사람으로서 저자는 책의 시작을 방송토론이 왜 그모양일 수 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변명으로 시작한다.
방송토론의 이름중 하나로 난상토론이란 것이 있었다. 그 이름처럼 방송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난상 싸움터인 것이 현실이다. 토론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토론은 싸움만 있지 합의는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토론은 상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토론을 기획하는 방송국에게도 그렇고 토론자들에게도 그렇다.
방송국으로선 대립각이 분명해 논점이 명확하고 논쟁이 화려해지는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인 입장을 말해봐야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팔리지를 않는다.
그것은 참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석에서는 현실적이고 타협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토론장에선 고집불통의 꼴통이 된다. 왜냐하면 토론회는 선전장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단체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정치적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수단이 토론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언론, 정치와 같은 공적영역(public sphere)이 방송토론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합의와 타협을 모르고 극한 대립만 해대는 정치, 당파적 이해를 가지면서 갈수록 공정성을 잃고 선정적이 되어가는 언론. 4류라는 지적이 아깝지 않다.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어젠다를 설정하는 언론과 어젠다에 대한 합의를 이끌고 실행을 해야할 정치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저자는 그 원인을 한국의 특이한 고속성장에서 찾는다. 저자는 1공화국 때 민주당 선거유세를 도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농촌에 가서 민주당 후보를 찍어달라고 말하니 촌노가 "왕을 어떻게 가는가?"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선거가 3번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왕조적 가치관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왕조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민주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독재정권 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민주화 이후만 경험한 사람들 등 한국인들은 이름만 한국인이지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서구에선 수백년 걸린 과정을 반세기에 뚝딱 해치우면서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공통된 합의가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토론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질서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회사내에서도 회의무용론이 퍼지고 학교에선 토론식 수업을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 토론이 무엇인지 배워본 일이 없는 교사도 모른다.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 위에서 결정하는 것을 따르는데 익숙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합의된 가치관이 없다는 문제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87년 이후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더 이상 공적영역의 뇌사상태를 놔둘 수 없다고 말한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문제라는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 앞에서 대화가 없고 싸움만 있는 공적영역이 변해야 대책을 토론하고 해법을 합의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영역의 뇌사상태를 벗어나려면 토론을 토론답게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이책이 제안하는 대안은 공자님 말씀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을 배우자 정도로 한마디로 끝날 수 있는 이책의 대안은 대안이랄 수 없다. 그러나 저자도 그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채그이 서문에서 대안을 쓸 때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만큼이나 독자도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