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왈츠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박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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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더 많은 음악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민주주의....가 그러하듯. 그러나 어느날 음악이 소음이 되어 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도처에 넘쳐나는 음악, 길거리 어딜 가나 들리는 음악, 버스를 타도 원하지 않는 장르의 음악이 귀를 찌르고 있다. 심지어 지하철에서조차 옆사람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원하지 않는 음악을 들어야만 한다. 

지금은 음악의 포화상태다. 가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요의 상태에 있고 싶다. 무엇이든 과잉하면, 물리게 마련인듯. 그러나 매번 다시 음악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음악은, 이렇듯 물리다가도 다시 찾게 되고, 나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 있을 몇 안되는 존재 중 하나다.

나는 대개 슬플 때 음악을 듣는다. 슬픈 음악, 비장미가 느껴지는 그러나 청승스럽지 않은 음악이 좋다. 이때 음악이란 무엇일까? 정서의 폭발을 대리해 주는 무엇일까? 치유의 어떤 힘일까? 

대니얼 레비틴의 호모 무지쿠스를 먼저 읽었다.  

호모무지쿠스가 음악이 인류의 진화에서 담당했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 책이라면 이 책은 음악은 우리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 음악이 우리 뇌에 어떻게 수용되는가에 대한 책이다. 

음악이 청각의 치즈케이크가 아니라 진화적 선택압에 의해 진화한 산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언어의 진화에 부수적으로 얻었다는 스티브 핑거의 주장과 반대로 음악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언어보다 더 먼저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조심스럽게 내 놓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조건들, 섹스가 좋은 것은 섹스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우리 조상들 중  섹스가 즐거운 누군가 유전자 복제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한 음식에 구토를 느끼는 것 역시 상한 음식 자체가 역한 게 아니라 그것을 역하게 느끼는 조상 유전자가 복제에 성공했고 우리가 그들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수백 수만종의 종들의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유리하지 않은 것들은 선택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지과학의 관심사가 그러하듯 대니얼 레비틴은 뇌의 어느 부위가 음악에 관계하는가라는 문제보다는 우리 뇌가 어떤식으로 음악을 인지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그에 따르면 뇌의 특정부위만이 음악이나 언어와 같은 특정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뇌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대상과 교류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라 우뇌와 좌뇌가 특히 더 관련되는 작용도 있다. 그렇기는 하나 도식적으로 우뇌는 감성적인 활동, 좌뇌는 이성적인 활동과 관련한다고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악 역시 뇌의 특정한 부위만 관련하는게 아니라 소뇌에서부터 전두엽, 브로카영역 등 다양한 부위들이 상호 작용한다는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넘쳐나는 음악에 신물이 날 법도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라디오 앞에서 오디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누워 있거나 천정을 보는 행위는 자주 음악과 함께 진행된다. 내 어느 순간에 뉴런이 발화하여 음악에 감응할지는 사실 엄마의 뱃속에서, 열 한두살의 나이에 이미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기억은 매개가 얼마나 특징적이냐에 따라 활성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뇌에 기억들이 모두 저장되지만 매개물의 특성에 따라 고스란히 되살아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래 전에 읽은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도 뜻밖의 기쁨을 주었던 책이다. 이 책 역시 음악의 기원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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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전쟁 - '자유' 개념을 두고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격돌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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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꿈을 꾸었다.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막 끝낼 참이었는데. 연거푸 같은 인물에 대해 세번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꾼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의 이름을 공중에서 큰소리로 세 번이나 불러댔다. 어딘가 숨어있던 그는 나의 부름에 답하였다.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며, 꿈속의 나는 이것이 꿈임을 자각한다.
도대체 꿈은 내 인생의 몇분의 몇인가? 꿈이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삶의 또다른 이면으로서 그것이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종으로서 인간의 삶에 어떤 잇점이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지럽던 머리를 막 끝낸 조지레이코프의 자유전쟁에 집중하기로 한다.


자유는 본능적으로 우리 신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또는 자유로운 상태를 언어로 표현할 때 그것은 우리 신체의 어떤 상태로 은유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라든가 "사슬에서 풀려난다"라든가...그러고 보면, 자유는 너무도 당연한 인간 존재의 상태여야 하므로 좌와 우가 부인할 수 없는 '단순한' 자유가 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자유에는 빈공백이 있으므로 그것을 어떤 개념으로 채우느냐는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자유전쟁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진보주의자의 우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자유는 당연히 진보적이라고 사고하는 데 있다고 읽힌다. 미국의 건국에서부터 자유의 개념은 진보적이며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논하기에는 비열하고 부도덕하기 때문에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안먹힐 것이라는 거다.

사실 이 말 역시 수긍할 만하다. 진보주의자에게 있어 자유는 진보주의자들만이 전유물로 여길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 대응의 가치를 아예 느끼지 못했고 또 실제로 그래왔다. 헌데 여기에 또 다른 우가 있다. 지난 30년간 보수주의자들은 너무도 교묘하게 자유의 개념을 뒤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당연하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수를 쓰지 않아도 자유의 개념은 "그대로" 진보적 가치로 진보주의 진영에 오롯이 머물것이란 너무도 안일한 사고는 자유전쟁에서 진보주의자들의 패배로 귀결하였다. 

도덕성이 인간이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감정과 관려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솔깃하다. 사람들은 삶의 여러 면에서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 가치에 따른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익숙하면서 일터나 사회적 관계에서는 진보적 가치에 경도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아니면 환경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재산권이나 노동문제에서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어떤 가치에 대한 개념을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떤 지점에서는 진보적 가치에 또 다른 어떤 지점에서는 보수적 가치가 내 마음 속에 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은 결국 이와 같은 개념틀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것. 자유를 선취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레이코프는 인지과학자이므로 주장은 단순한 주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그는 누구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년간 연구해 온 과학자이다. 현상에 대한 해석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일방적 주장이나 개인적 경험만으로는 어림없다. 가설이 엄밀한 실험과 논증을 거쳐 이론이 되는 것이라면 레이코프의 과학자적 입지와 태도는 자유개념 전쟁에서 우리를 설득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나는 본래적 의미의 자유-레이코프식으로 말하면 단순한 자유를 원한다. 그것의  빈 공간은 진보적 가치로 채우고 싶다. 그것은 인류라는 종이 그토록 많은 종들 사이에서도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였고, 그래서 사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 종족의 생존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일부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연한 세포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이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것들에 빚진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정된 우주의 자원을 골고루 나눠갖는 것은, 우연히 기회를 얻어 오늘날 이토록 많은 개체수로 지구 곳곳을 파고든 우리 종족들 때문에 사라지고 줄어든 다른 종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 당연히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거의 많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가난한 사람이 절제력이 부족해 가난한 것인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고, 인터넷기반을 만들고 수자원을 관리하고 전기시설을 유지한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런 시설들을 가난한 자들보다 더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기회 역시 가난한 자의 기회는 부자의 기회보다 덜 자유롭다. 

진보주의자들이 도덕적 우월성이나 자유의 본래적 개념에 머물러 있기만 하다가는 큰 코 다칠 판이다. 아니 이미 큰 코 다치고 있다. 개념에서 지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가끔 우리 종의 진화의 끝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섬뜩한 책이다. 물론 종의 진화와 절멸이 자연의 한 과정이자 우주의 질서 중의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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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진달래 2010-10-22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확하게 책을 이해하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시사점을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옮긴이로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퍼갑니다.

테레사 2010-11-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벌써 지난 해가 되어 버린 2009년, 흔히 연말이면 출판사나 신문사 등에서 올해의 책들을 선정하는 것을 보았다. 혹시 내가 읽은 책이 포함되어 있나 하고 가끔 살펴보곤 하였는데 내가 신뢰하는 신문사의 선정목록에 내가 읽은 책들이 들어 있을라치면 왠지 뿌듯함과 동시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약간은 뻐기는 기분이 들곤 하였다.  

그런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나도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고 적어도 내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 정도는 메모해 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소수의 음악 

기괴한라디오 

순수의 시대 

마지막3분 

역사 위대한 떨림 

오늘을 잡아라 

불완전성쿠르트괴델의 증명과 역설 

미토콘드리아 

무한의 신비 

마더나이트 

책읽어주는 남자 

부분과 전체 

위대한물리학자들4권 

레볼류셔너리 로드 

리만가설 

거미여인의 키스 

설국 

마티스 

거대한전환 

주기율표 

더크젠틀리의 성스런탐정소 

고뇌의 원근법 

오리진 

달콤쌉싸름한초콜릿 

굿바이 다윈 

그저좋은사람 

진화하는 진화론 

세상의 끝 여자친구 

위대한유산 

두도시 이야기 

에드위 드루드의 비밀(순서는 읽은 순서) 

작년에 찰스 디킨즈를 새로 발견한 것은 참 즐겁고도 뜻밖의 행운이었다. 위대한 유산 덕분에 연이어 그의 소설들을 몇권 더 읽어보기도 하였다. 데이비드허버트 로렌스의 역사책도 즐겁게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미토콘드리아와 최근 영화까지 보게된 레볼루셔너리 로드. 뭐 위에 열거한 책들 모두 다 버릴 수 없이 아끼고 싶은 책들이긴 하지만, 시간의 근접성을 고려할 때 영화를 본 것이 기억을 더욱 강하게 만든 듯하다. 하지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기대 이하였다. 영화가 훨씬 더 생동감있고 즐거웠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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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진화론 - 종의 기원 강의
스티브 존스 지음, 김혜원 옮김, 장대익 감수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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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은 우울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감안하자. 그저께 겨우 끝낸 책을 되새김질하기도 쉽지 않다.  

갑자기 모든 것이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매사가 시들시들해 진 것은 꽤 되었다. 열정도 호기심도 무엇보다 모험심도, 고갈되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지 않은 것들. 나는 갑자기 내 유전자에 모든 것을 넘겨버리기 시작한다. 해서 나의 아버지를 관찰하였다. 물론 신중하고 의미있는 관찰은 아닐 터였다. 그것은 일종의 삐딱하고 비난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일종의 공격을 위한 합리화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의 혈통이 나쁘다는 사실에 수긍한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다. 젊잖지 못하고 상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을 위한 관찰은, 기실 내 존재에 대한 비난에 다름아니란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중단할 수는 없었다. 내 정신의 판단은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나아간다. 어설프게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을 흡수한 자의 현실!

그저께까지 김연수의 세상의 끝 여자친구와 줌파 라이히의 그저그런사람 그리고 진화하는 진화론을 읽었다. 더 거슬러가니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도 있다. 물론 한꺼번에 왕창 읽은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두고두고 조금씩 읽었고, 어떤 것은 휴일날 왕창 읽었다. 원체 게을러서 침대와 방바닥을 오가며 고작 목과 손의 위치를 바꾸었을 뿐이었다.  

각각의 책들은 너무 다른 형식과 서술방식으로 한꺼번에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몇마디 단순하게 평한다면, 줌파라이히의 그저그런사람은 그저그랬다. 첫 작품 축복받은 집을 잘 읽은 때문이리라. 여전히 그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동화되기 어려운 이방인으로써의 정체성, 가족,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 이런 문제의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음, 뭐랄까 너무 호들갑을 떨면서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여전히 읽을 만하다는 말은 해두고 싶다. 다음으로 김연수의 세상의 끝 여자친구. 사실 앞의 몇 편은 지금 명료하게 기억하기 어렵다. 한번 읽으면 좀체 두번 읽을 엄두를 안내는 나의 독서버릇 탓에 기억에만 의존해서 뭔가를 평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공평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려나 여기는 내 공간이고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있다. 하다면, 뭐 실수나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면야....아무튼 앞의 작품들을 또렷이 기억하긴 어려운데, 마지막 작품은 선명하다. 달로간 코메디언. 나는 여기 두 구절을 어느 공적인 글에서 인용하기까지 했다.  

뭐랄까 아련한 우수같은 것, 비애 같은 게 느껴졌다. 좀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5만달러를 훔쳐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였던 것일까. 주인 잃은 안경테를 발견하는 순간이.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이 우수와 비애의 정체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진화하는 진화론은, 애초 독자평이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기대않고 읽었다. 

기대를 안해서인지, 실망이 적었다. 아니 사실은 재미있었다. 옹기종기 이야깃거리가 즐비하니 즐겁게 읽었다. 물론 독자평에서 번역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까닭은 나도  알겠다. 말이 안맞고 무슨 뜻인지 모를 구절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용서할 마음은 있다.. 뭐 저자가 워낙 말을 꼬아서 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으려니...하고 그만 넘어가 주고 싶은데,,이전 독자가 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그런데 이거 영, 그냥 넘어가 주면 안될 것 같다. 나 같이 마음씨 넉넉하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사람만 있다간, 문제있는 번역이 그대로 판을 칠 터. 그러면서 우리말을 야금야금 잘도 갉아먹을 터. 이건 나에게도 안좋은 일이다. 김영사에서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고 기 구매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요구한다(으쌰으쌰)!

이제, 다음 차례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말이 필요없다. 번역가가 폴라니 전문가니 오죽하랴. 내가 경제서나 이론서, 철학서는 거의 안 읽는 편인데, 더러 나를 읽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빈곤의 세계화니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가 그런 책이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 헌법을 두고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는 수학의 방정식이나 물리학의 어떤 이론에 대해서도 꼭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보았다. 

솔직히 나는 과연 그런 표현을 쓸 때가 있을까, 싶었는데. 오감을 통한 반응으로서 '아름답다'에 익숙한 나로서 말이다. 

그런데, 가끔 나도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론에 대해 아름답다고, 나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진화하는 진화론은 그런 느낌을 준다. 번역이 좀 그렇다하더라도 아름다운 책인 것 같다는.  

 "와우, 이거 너무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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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10-1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에게, 11년 전의 나는 아름다웠구나.세상의 이치에 대해 여전히 호기심도 있었고, 그건 생의 열망이 있었다는 증거이겠지...지금의 나는 아니다. 이제 나는 스러져가되 아름답게 스러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그래서..이런 예전의 나의 글을 읽으면...좀..서글프다.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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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당신을 떠올리며 이 책을 집어 들었어. 서경식, 이 이름은 당신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을 터이니. 당신이 만진 물건과 당신이 건넨 쪽지들, 당신에 의해 발화한 그 어떤 단어들, 당신이 서 있던 그 자리들, 그리고 당신을 비추던 불빛들, 당신이 머물던 자동차의 그 자리, 한쪽이 더 굵은 팔의 어떤 부분, 오른쪽 손가락 마디굵은 부위.....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고르던 책들, 우리가 함께 공감했던 작가들.....

나는 당신에게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늘 깨닫곤 해. 눈이 뜨이며 늘 당신이 자동적으로 마음으로 달려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추억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건 그 단어가 현재가 아닌 과거를 내포하기 때문일거야. 사랑을 추억해야 하는 상태란, 좋지 않은 결과를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이별의 다른 말임을 이미 알아버린 사람만이 추억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비트겐쉬타인은 옳군!). 

내 사랑,  

그림이 고뇌하지 않게 된 건, 역사의식의 부재일까?  자각이 사라진 현재의 삶 때문일까? 

서경식은 언제나처럼 무거워. 그의 글들은 추상적이지 않지만, 문맥은 늘 의지적이니 말이야. 서경식은 이전과 달라진 점이 별로 없어 보여서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덮어버렸어. 

숨이 막히기까진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이었어. 

그가 좀 달라졌기를 기대한 것일까. 이젠 그만 즐기기를 바란 것인지도 몰라. 그가 너무 무거운 짐을 스스로 걸머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거야. 그의 가족사가 그를 가볍게 만들지 못하리란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왜 그런지, 그에게 이런 기대를 하였어. 

아니 어쩌면 지겨웠는지도 몰라. 삶이 다면체라면, 왜 그의 삶은 늘 면이 아니라 그 면들의 경계선이어야 할까? 그러지 말았으면, 편안하고 달콤하고 안락한 미술도 얼마나 많은데 왜 그는 일부러 고뇌의 정면을 찾아. 고뇌의 그림자와 고뇌의 언저리조차 일부러 쫓아다니는 걸까 하는.  

하지만, 그래서 서경식은 서경식인거야. 그는 왠지 내가 그리던 얼굴 모습을 하진 않았지만, 거리를 적당히 두어야만 하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가  만약 이렇듯 반드시 존재하지만 숨어있는 듯 보이는 것들에 대해 고뇌하기를 그만두어 버렸다면, 나는 아마 더욱 실망하고 말았을지 몰라(그러고 보니 내가 마치 거미여인 몰리나 같이 말하고 있군. 그녀-나는 그를 그녀라 부르겠어-는, 밤마다 자기가 본 영화를 이야기하지, 그 낮은 대화체의 말들을 내가 지금 흉내내고 있는 듯해).   

사물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야. 나는 늘 그 점이 불편하곤 했어. 나에게 없는 어떤 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조바심나기도 했어. 그래서일까? 나는 늘 과학에 경도되곤 해.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옆으로 기우는 것, 나의 눈이 향하는 곳. 사물의 진실,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 그래서 진실된 것들. 현실과 동떨어져 더욱 가치있어 보이는 것들.

서경식은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해. 역사를 본다는 것,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생의 어떤 부분을 외면하고 지나쳤을거야.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미술이 무엇인가, 예술이 어떤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도록 하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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