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의 이 방문자는 누구일까? 혹시 나인가? 내가 로그인을 하면 카운트가 되는 것인가? 

어제 아침에 일찍 병원에 갔다. 마음이 두근두근. 역시 예상 외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한단다. 때가 되었다는 말. 누군가 그랬다. 나의 별자리는 병약함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후천적으로 내가 관리를 잘 해서 그나마 이렇게 건강하게 산다고. 

그말은 별로 울림은 없었다. 헌데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그말이 떠오른다.  

언어는 힘을 가지는 모양이다. 형체없이 떠돌던 것들은 비로소 언어로 인해 모양과 실체를 구성하고 존재를 부여받는 것인가보다. 

그다지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지만, 혹시나 내게 남은 생애가 이 석 달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은 생각은 한다. 그리고 언제가 읽은 에스에프소설을 생각한다. 

내일 지구는 그 마지막을 막게 되고 오늘은 그 전야이다. 두 부부는 어제와 다름없이 저녁을 먹고 설겆이를 하고 똑똑 떨어지는 수돗물을 잠근다. 

그리고 굿나잇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나 역시, 어제의 오늘과 달라지지 않으리란 생각을 한다. 석달이 남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저 이렇게 서성거리고 있을 터이고, 계단을 오르고, 밤거리를 걷고, 무거운 짐을 두 손 번갈아 옮겨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희망없는 쇼핑을 하고, 내일 아침 출근길에 무슨 옷을 입을까 잠시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재생해 보면서, 잠을 청할 것이다.간혹 일기도 쓰겠지. 남아있는 날들을 손으로 꼽아보기도 하면서. 

이토록 존재란 하찮은 것이다.이 우주의 한 귀퉁이,표도 나지 않는 이 작은 점의 점의 점의 점...으로 사는 것은, 결국 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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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경이었을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이어도 좋고, 아니면 화창한 늦봄이어도 좋다. 산책하기 그럴듯한 날이었다면, 그 어떤 날이라도 괜찮다. 

내가 첫 직장을 삼았던 곳은 강남구 신사동의 깨끗하고 단정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던 곳에 있었다.  

나는 외로웠던 것일까? 점심을 먹고 나면 근처 sk가 운영하는 레코드가게-어쩌면 씨디 가게-나 맞은편 대로가에 있던 책방-이름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을 넘나들었다. 

그래 외로웠던 탓이다. 외롭지 않고서 어떻게 책과, 음악을 찾아 들었겠는가. 

여행으로의 초대, 당신을 닮은 나라라는 보드레르(?)의 구절들을 읽었던 곳도, 그리고 크렌베리를 알게 되었던 곳도.  

언젠가 때가 되면,아일랜드로 가서 크렌베리의 공연을 보리라. 돌로레스의 그 특이한 창법을 미친듯이 따라하면서 몸을 흔들어도 보리라. 

조르쥬 페릭스의 "인생사용법"을 "사물들"을 다시 보아야 겠단 생각을 한다. 이재룡교수가 다시 번역하였다고 하네. 이재룡 교수의 <외로운 남자>도 다시 생각난다. 외젠느 이오네스코도. 이 외젠느란 이름에서 나는 다시 북호텔의 왼젠느 다비를 발견하게 되었지. 그리고 2002년 가을, 프랑스 파리의 북호텔 로비에 서 있게 되었지. 그때 나의 옆엔 누군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니도 마음도 머리도 멍한 이 계절의 한 귀퉁이가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 두 서너달 동안 읽은 책도 없고, 멍때리고 살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허기가 자주 지고, 뒤늦게 지난 드라마를 몰아본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이건 무슨 신호일까?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더니, 헤어디자이너가 성의없이 싹뚝 잘라버려, 앞머리는 몽실이가 되었다. 

팔뚝에 레이저로 지진 자국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 흰색 진바지를 사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어 버렸다. 바지 잘 입지도 않는데. 

아무튼 돈도 깨지고, 마음도 깨지고, 이상한 날들이다.

쓰지 않으니 반성이 없다. 반성이 없으니 삶이 없다. 삶이 없으니 나도 없다. 없는 것 투성이다. 결핍의 비극. 어제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나상담에서 김현철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기란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대방을 파괴하여 자신을 살리려는 반응이라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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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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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녜스 생각을 했다. 

아녜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파르마의 수도원에 은둔하기를 바랐으니까. 

나는 아녜스, 그녀를 닮고 싶어했으므로 자연 파르마의 수도원이 궁금했다. 

적과 흑에서 쥘리엥 소렐에 대해 강렬한 그 무엇을 받았으므로, 이 소설에서도 어떤 기대감이 있었다. 

여하튼, 어제밤에 2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사랑, 열정, 행복은 무엇일까..생각해 보았다. 

답은 시원찮았고, 명료하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그쟈'가 들려왔다.  

나는 한 남자를 생각했다. 좁은 승용차안에서 나즈막하게 그 노래를 부르던 그 남자, 

그것은 사랑받고 싶은 여인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남자의 충만감에서 비롯된, 그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만의 공간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어떤 감정에의 자연스런 반응이었을까? 

너무 오래 전이라, 나는 그저 이런 정도의 기억밖에 상상할 수 없다.  

아녜스, 다시 아녜스를 생각했다. 조그만 손짓으로 쿤데라를 매혹시켰던 그 여인말이다. 

열정이 노동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준, 책의 제목도 떠오른다.  

지도에서 파르마를 찾아보아야겠다. 

돈과 사랑에 열정적인 이탈리아 인들의 삶과 , 그 삶의 가장 격정적 일면을 소설로 옮겨 놓은, 스탕달에 대한 존경이 어우러져. 나는 약간 감상적이 되었다. 그래 꿈에, 한 때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자와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열정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여인에 대한 사랑 혹은 남성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한 인간을 격정적으로 만드는가?  

그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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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1-05-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이상 이런 감상문을 쓸 수가 없다..이제 나는 노회하고, 감정은 말라간다. 감정은 맥락적이며 구성된다는 책을 현재 읽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람. 나는 조금씩 시들고 있고, 나에게서 중요한 그 모든 즙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버린 느낌이다...인생이란...무엇일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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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겁이 났다. 난 전작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작가의 작품 모두가 다 만족스러울 것이란 기대는 애초에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란 걸, 태생적으로 논리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문득 깨달은 이후로 말이다. 

커트 보네거트 역시 그럴 것이라는. 사실 타임스퀘어는 지루했다. 

헌데 역시, 보네거트답다. 

나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를 마더 나이트 만큼이나, 사랑하게 되었다. 재밌고, 눈물나고, 서글프다. 

어쩌면 서글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분 탓일 수도, 지금 나의 정서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미 60년대에 커트 보네거트는 세계의 부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돈이 어떻게 미국을 지배하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나는 엘리엇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고귀한 유전자, 반항하는 유전자 그래서 고독한 유전자를 말이다. 

그의 시도는 한낱 우스꽝스럽고 독특한 기행에 불과할지 모르지만,일찍이 톨스토이도 그런 길을 걸었더랬다. 

모든 재산을 농노들에게 나누어준. 

그가 삼신 할머니의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자각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는 돈의 위력은 이미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우리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해서, 나는 이 작은 소설이 서글프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느낌으로, 내 슬픔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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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의 금액을 5만원 이상으로 만들려고 헤매다가 이 리뷰를 읽었습니다.
이 리뷰를 읽고 슬퍼졌어요. ㅠ.ㅜ 그리고 장바구니에 이 책은 담겼구요.
반갑습니다. 테레사님~ ^^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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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주로 덕담들을 주고받는 것이 미풍양속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골머리를 싸매어봐도 던져줄 덕담이 떠오르질 않는다. 사실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돌아가는 주변 상황을 보니 외려 감정조절이 잘 안되고 툭하면 목을 넘어 입술근처까지 욕지끼가 차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다. 고백하자면, 특정 신문의 헤드라인만 봐도,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인다. 눈에는 북극 빙하보다도 더 서늘한 찬바람만, 입에는 도저히 숙녀가 담을 수 없을 험한 단어들이 고인다. 나만 그런가? 뭐 못생긴 OOO여자들은 북으로 가라고 손수 찾아오셔서 갈 바를 일러주신 “어르신”들까지 있는 마당에, 단어나 문장으로 덤비는 조중동쯤이야, 실은 안보면 그만이라고 하실 분도 있을 터. 헌데 화만 내고 팔짝팔짝 뛰기만 하는 쩨쩨하고 소심한 나 같은 사람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이는 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커트 보네거트다. 그 할아버지는 이미 2009년에 작고하였지만, 그 분이라면 이런 나를 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일러 줄 것이 틀림없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5도살장, 243쪽)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으로는 <제5도살장>을 제일로 꼽고 싶다. 결코 “웃어서는 안되는 웃기는 책,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슬픈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남자 빌리 필그림의 기이한 전쟁체험 정도가 되겠다. 시간에서 해방된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제목은 좀 살벌하다. 도살장?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제목으로만 친다면 결코 나 같은 요조숙녀(?)가 들춰볼 생각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발견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작가가 풀어놓는 배경 이야기야말로 더 소설적이라는 점도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소설 첫머리에 “이 모든 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10쪽)라는 고백은 혹시 이것은 작가의 고도로 계산된 트릭이 아닐까하는 의심많은 독자의 주의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대학 재학 중에 징집되어 유럽의 전장터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유서깊은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이 연합군의 무차별적 폭격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는 것을, 13만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하는 것은 목격한다. 그 후 23년 동안이나 이 이야기로부터 도망치며 살았다. 물론 자신이 본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했을 리 없지만, 그가 이 비극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까지 장작 23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좀더 정직하게 말하면 세상은 아무도 유럽을 독일나치의 만행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선한 십자군인 연합군(영국군)이 무고한 드레스덴의 시민 13만 명을 무차별 살해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네거트 자신조차 이 참상의 경험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나 그와 함께 드레스덴 참상을 목격했던 전우의 부인이 “그땐 당신들 둘 다 어린애였군요.”(나라없는 사람, 27쪽)라고 일격을 가하고 나서야 “핵심을 깨달은” 그는 “우리는 역사상 최악의 인종인 나치에게 저질렀던 우리 자신의 추악한 행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28쪽)다고 고백한다. 그가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부시정부를 맹비난하며 또 반전작가로 평생 살았던 까닭은, 참상의 한복판에 있었고 선과 악이 뒤섞인 “태초의 밤”(마더나이트)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친 김에 또 다른 그의 걸작을 꼽자면 나는 주저없이 <마더나이트>를 지목하고 싶다.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나는 매혹되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독일로 가 희곡작가로 꽤 성공을 거둔 남자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독일과 연합국의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 것에 대해 쓴 회고록이다. 그가 한 일이라곤 나치를 선전하는 라디오프로그램 대본을 읽을 동안 “말버릇, 말 사이의 중단, 강조, 기침, 중요한 문장에서의 말실수”로 정보를 흘리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그의 삶도 별 볼일 없이 흘러가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역시 전쟁에 대한 혐오와 어리석은 짓이란 깨달음이 절절히 묻어난다. 허나 그것은 그의 전매특허인 신랄한 풍자와 유머를 통해서다. 결코 흥분하거나 감상과 연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웃음과 유머는 에세이집 <나라없는 사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훨씬 더 직접적이다.

커트 보네거트, 당신은 누구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라없는 사람”이라고. “한심한 미국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변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74쪽) 알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자식들이 살고 있는 미국을 기꺼이 버린 사람이다. “인간은 권력에 도취된 침팬지”이며 “미국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한 침팬지”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챈 사람이다. 그는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되었다. ‘진리’란 그런 것인가?”라며 영혼없는 지식인들을 가차없이 비난하는 사람이다. 또 그가 버린 나라의 바탕이 된 종교의 예수를 “그의 가르침이 훌륭하고 대부분의 말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면 그가 신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곧이어 “우리 대통령(부시)이 기독교도였던가? 아돌프 히틀러도 기독교도였다.”(89쪽)고 또 그는 “미치광이 환자들만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나선다”(나라없는 사람, 101쪽)고 한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휴머니스트이다. 소아과 의사인 아들의 말대로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며, “현실적으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추상성(바로 우리 사회)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사람”(81쪽)이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된다고,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치는 사람, 그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이다. 그는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이 우주의 정신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는 거지.”(제5도살장,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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