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다.
꽤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꽃이다. 물론 핑계는 있다. 하지만, 꽃이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꽃은 나에게 별로 흥미롭지 않다.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감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감각의 희열, 그런 것을 맛본 지 너무 오래된 것인가? 나의 신경계는 이미 너무 높은 역치를 요구하는 것일까?
내가 대학교 들어가고 첫 봄이었다. 제법 날이 쌀쌀했던 것으로 보아, 초봄이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과선배와 함께 무작정 289 버스를 탔다. 나의 손에는 장미 한다발이 들려 있었을 것이다.
선배는 강남의 어느 동의 주택을 돌며 나의 꽃다발 배달을 해야 했다.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우리는 그 동네 어귀를 몇 바퀴 돌았다. 결국, 동네 복덕방 아저씨에게 물어 꽃다발이 배달되어야 할 곳을 찾았다.
중년의 부인이 건네받은 그 꽃다발이, 과연 나의 당시 남자친구에게 도달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확인을 안 해 보았던 것 같다.
이후로 나는 남자친구와는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나와 다른 대학을 갔고, 이후 소원해 졌다. 여자 없이는 못사는 성격인지라,아마도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것이다, 가끔 전화가 오긴 했다. 유학을 떠나서 방학 중 잠시 서울에 왔을라치면, 엄마는 걔한테 전화왔다는 소식을, 가끔, 아주 가끔 전해주곤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하구나. 뭐 제대로 설명도 없이, 떠나거나 버려놓고선, 잊을만 하면,들쑤셔 놓는구나하고. 왜 떠났는지, 한번도 설명따윈 없었다. 이후 다른 남자를 만났지만, 그도 그랬다. 그 꽃다발을 보냈던 그 남자를, 실은 만나긴 했었다, 딱 한번. 잠시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남자관계가 안풀렸던 탓이 그 남자 와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옛남자친구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우리는 동물원에 갔고, 리프트를 탔고, 함께 저수지의 개들을 보았다, 하필 저수지의 개들이라니...
이제 그 남자친구는 깡그리 잊었다. 뭐 두 아이의 아빠라고 하던데,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나보단 잘 살면, 쫌 약이 오를 법하지만.
이후 꽃을 받고 싶은 남자가 생겼는데, 그 남자는 결코 꽃다발을 주진 않았다.
아무튼, 꽃다발을 보니 오래전 남자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로서는 꽃보다는 남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