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알라딘 책 두 박스 도착.


책 박스가 오면 놀이동산 앞에 선 아이처럼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게 된다지.

내가 주문해놓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잘 몰라.

주문내역을 따로 들여다보면 몰라도 말이지.


주문내역을 보고 싶지 않다.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렛 상자처럼, 안에 초콜릿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떤 모양일지 어떤 맛일지는 전혀 모르는 거거든.


책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떤 모습의 어떤 알맹이를 지닌 책인지는

상자를 열어 하나하나 집어 펼쳐봐야 아는 게지.


이 순간을, 몹시 사랑한다.


새책, 혹은 누군가의 손을 한 번, 또는 여러번 거쳤을 중고책까지...

솔직히 중고책을 더 좋아한다.

빈대나 책벼룩 때문에 비닐에 싸서 3일간은 냉동고에 넣어둬야 한다지만,

그것까지는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러기엔 너무 게.을.러.서.



아, 제목이 잘 안보이는..ㅠㅠ


작가들의 산문집을 좀 샀다.

박솔뫼 소설가

고명재 시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을 아무 데다 펼치니 '사우나'가 나온다.


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은 흡사 우는 것 같고

그래서 '촛농' 같다고.

캬.............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재미가 이런 거겠지.


레이먼드 카버님의 산문집도 들였고,

'영문법' 책도 하나 샀다.


영어의 원리로 영어를 접근한다는 책소개에 솔깃했는데,

읽어봐야 믿음이 갈 것 같다.


영어를 원리로 접근한 책들은 80~90년 나왔던 게 레전드다.


그런 좋은 책들은 왜 복간이 안 되는 건지.


쉬프팅 패러다임 영문법(문성업)이라든가.


그때 쏟아졌던 레전드 영문법서들을 쏠찮이 소장하고 있다.

중고서점에서 찾아보니 30만원짜리를 홋가하는...

기뻐할 필욘 없다. 절대 안 팔 거니까.


청탁받은 소설을 써야해서 이 책들은 죄다 침대 머리맡으로 보낸다.

'서양사강좌(박윤덕)'에 거는 기대가 제일 크다.


'정치사'만 죽자로 파는 기존 서양사들에 물린 지 오래.

이건 '사회사'를 중심으로 했다고.


고 최인호 작가님의 단편집을 샀다.


추모집으로 기획된 '미발표습작품'들 위주라고.


최근 그분의 '술꾼'을 다시 읽었다.

가슴 저민다. 

순문학가로서 최인호 소설가의 단편 미학은 독보적이다.

이참에 최인호 중단편집도 주문했다.


리뷰 쓸 일이 걱정이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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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4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5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4-09-04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완전 공감합니다 ㅎㅎ

젤소민아 2024-09-04 22:24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그걸 최근에 다시 축약본으로 봤어요. 포레스트 검프요..으..축약본 보고서도 눈물나고..명작은 명작만의 힘이! ㅎㅎ 초콜릿 상자는 평생 못잊을 거고, 평생 써먹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9-04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다양하게 구매하셨습니다. 저도 요즘 몇 권을 세 차례 질렀습니다. 언제 읽을지 알 수 없어요. 제가 책 수집가가 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헤밍웨이 단편집, 이문열 중단편집, 하얼빈 등등을 샀어요.

2024-09-0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6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0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9-05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자가 하나면 어떤 책이 들었을지 알 것 같지만, 둘이면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는 즐거움이 있었겠습니다


희선

젤소민아 2024-09-05 21:13   좋아요 1 | URL
전 하나도 모르겠드라고요..기억력 소멸 중..ㅠㅠ 책을 읽어도 며칠만 지나면 가물가물..헤택은 있습니다. 좋은책, 명저 판별이 수월해졌어요. 시간이 지나도 제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이나 장면이나 등등...그럼 명저! ㅎㅎ

왜 남았겠냐고요, 이 머리에~~ㅋㅋ
 
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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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꺅!입니다. 꺅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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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30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 이란 소설을 좋아합니다. 반복해 읽었었죠. 사랑의 생애, 는 제 기대치에 못 미쳤어요.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젤소민아 2024-08-30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분의 작법서 3권을 읽고 홀딱 반해서 이후로 소설을 찾아 읽었어요. 그 작법서 3권은 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든 근원적 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한국 소설을 잘 안 읽을 때라 이 유명하신 분의 존함도 몰랐네요~. 저도 ‘생의 이면‘으로 시작했어요. 작품이 많으신데 전 단편을 특히 좋아합니다. 전 이분의 문장이 한국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승우 작가님의 모든 작품에 구현되는 게 ‘구원‘이란 모티브 같은데요, ‘생의 이면‘도 그렇죠.

생의 이면의 생이 우리를 성장케한다는...메시지가 느껴져 제 삶에도 큰 각성이 되었어요.
페크님 덕분에 다시 읽고 싶네요.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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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 어부 올라이의 아들, 요한네스가 태어난다.



이제 우리 이만 가지요, 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29p)


산파가 떠난다면 탄생은 종료된 것이다.

늙은 산파 안나는 떠나고 요한네스는 태어났다.


그리고 2부가 시작된다.



1부와 2부 사이의 여백.


이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에 박수 보내고 싶다. 

이 여백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이 소설의 미학을 아는 편집자가 만든 여백이 분명하니까.


소설의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는 행간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서브 텍스트가 있다.

소설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서브 텍스트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드러내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내고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

혹은 하기 싫은 이야기...


여백이니 서브 'text'라고 하기 뭣하고...


서브 'picture'라 해보자.

이 여백에는 서브픽처가 숨어있다.


어부 올라이는 아들 요햔네스를 낳고, 아들 요한네스는 그 아비 올라이처럼

어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2부를 펼치면서 어부 요한네스의 삶을 구경할 것이다.

그의 여행에 동반할 것이다.

그의 바다가 바야흐로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2부의 시작에서 어부 요한네스의 아내는 이미 늙어 죽었다.

요한네스도 늙어 죽기 직전에 있다.

아니, 그는 죽어간다.

아니, 이미 죽었다.


2부를 끝까지 읽고 나면 1부와 2부 사이를 가른 여백에

서브픽처, 즉 '바다'가 숨었음을 알게 된다.


크림빛 빈 종이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늙어 죽기 직전의,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를 요한네스가 평생에 걸쳐 누볐던 바다-.


그 굴곡진 사연이 그 여백의 종이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말이다.


이 소설은 울지 않고 읽어낼 재간이 없다.

'죽음'을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탄생'을 지척에 둔 거리감 때문이다.


이제껏 소설에서,

우리는 탄생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분하다면 충분하다 할 시간적 거리를 벌었다. 


인물은 태어나 부지런히 한 시대나 한 시기를 살아주었다.

우리는 그걸 구체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한다.

인물이 부지런히 살았던 한 시대나 한 시기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된다고 한다. 충분하다고...


이거면 충분하다고 한다.


우리 오랜 세월 서로 머리를 잘라줬지, 요한네스가 말한다

내가 지금 막 계산해봤더니, 요한네스가 말한다, 세상에 그래 벌써

사십 년 가까이 됐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63p)


사십 년 간 머리를 잘라준 어부 친구면 된다고 한다.


친구는 어깨까지 치렁대는 요한네스의 머리를 계속 걱정한다. 

친구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도...

죽어서도 친구는 요한네스의 긴 머리를 걱정한다.


내 머리가 어떻다고 마음 쓰는 친구가 있다면...

죽어서도 그 걱정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런 생각만으로도 눈물은 흐르고도 넘친다.


작가는 어부 요한네스의 지난하고 고달펐던 삶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한다.


제발 여기서 물에 빠지지는 말라고, 자네도 알잖아, 자네가 수영 못한다는 거,

페테르가 말한다


과연, 충분하다.


평생 바다를 벗삼아 가족을 먹여살린 어부 요한네스의 곡진하고 신산한 삶은

이걸로 충분하다. 충분하고도 남아서 울컥하게 만든다.


어부인데, 수영을 못한다, 요한네스는...


뭐가 더 필요한가 말이다. 


1부와 2부를 가르는 여백의 종이에서 

어부 요한네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물에 가라앉는 그림이 떠오른다.

말하지 않아도 떠오른다.

그러고도 남는다. 충분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에게 얘기해도 될까 생각한다,

루어가 가라앉지 않고 배 밑바닥에서 일 미터쯤 아래 계속 멈춰 있다는 걸,

아무 이유도 없이

루어가 내려가지 않는 건가? 페테르가 묻는다

안 내려가,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거 고약한 일이군,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가 올려다보니 페테르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정말 고약한 일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원하는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81p)


바다가 더이상 원치 않는 어부가 되었다, 요한네스는.


언젠가 나는 내가 써온 글이 나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내가 쓰기 시작한 소설이 

나를 더이상 받아주지 않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의미로든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때,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으려면,

어부 요한네스처럼 눈물을 흘려주는 친구...


한 사람의 친구면 족할 지 모른다.


어부 요한네스는 바다에서 밀려나 바다를 떠나지만 

딸 싱네가 있다.


어부 요한네스의 바다내음은 싱네를 관통해 싱네의 딸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죽었지만 죽지 않을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고, 저녁이 가면 또 아침이 오듯이.

이 소설의 제목이 '아침 그리고 저녁'이듯이.


참 잘 산 거예요, 어부 요한네스.



* 아, 인간적으로 이 소설, 너무 울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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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8-20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너무 좋았어요.
이 글에 담긴 젤소민아님의 느낌을
저도 똑같이 받았습니다.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게 엄청 많았어요^^

젤소민아 2024-08-21 05:17   좋아요 3 | URL
그래서 걸출한 것 아닐지요. 사실, 말로 다해서 주는 감동은 쉬우니까요. 말로 다하는 동안 감동,이란 주머니에서도 찔끔찔끔 누수가 생기는 것 같고요. 압축도 아니고...이건 ‘스킵‘인데요. 그걸 배웠어요. 오히려 쳐냄으로써 채워지는 서사도 있다는 것을요. 쳐낸 부분을 독자가 감지할 수 있도록 또 나름의 치밀하게 지독한 배려가 있었을 거고요..

페크pek0501 2024-08-20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이길래 페넬로페 님과 젤소민아 님이 극찬하시는지(별 다섯 개) 궁금하네요. 검색 들어갑니다.^^

젤소민아 2024-08-21 05:21   좋아요 3 | URL
이 소설은 ‘중간‘이 없고요~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자 화자의 장례식부터 시작하죠. 결말도 장례식이고요. 책 껍질을 펴서 두개를 이어붙이면 중간은 사라지죠. 그런데 그 중간을 책 한권으로 풀어놨다는 거고요...ㅎㅎ 작가들, 머리가 참 비상해요~~~작가적으로요~~이혜경 작가의 ‘길위의 집‘도 그렇죠. 잃어버린 엄마를 찾았는데 서사는 되짚어 가고, 결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는...말하다 보니, 새삼 멋지네요!
 
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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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좀 이상한 소설이다.

소설에서 익히 본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9p)


소설에서 누가, 특히 아버지가 돌아온 이야기는 물릴만치 많다.

새로울 게 없다. 더 읽고 싶다는 감흥이 일어나지 않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떠난 이유와 돌아온 이유를 따져 묻기에 

이미 지난 숱한 소설들이 진력나게 말해 주었다.


더 떠날 아버지가 있고, 더 돌아올 아버지가 있을까 싶을만치.


아버지는 어머니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남겨 놓고 떠났다.

(중략)


"더러운 인간! 포기하겠다는 거야, 전부 다."


9p)

이 또한 새로울 게 없어서 별로 궁금하지가...


아버지는 십 년 전에 다 놓고 갔고, 오죽하면 조부가 물려준 오래된 만년필도 챙겨가지 않았단다. 그리고 그 조부가 죽어 장례를 치르러 미국에서 귀국했다. 조부는 아버지가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사흘 간 대신 울어달라며 고용된 사람처럼 보였다. 

열심히 울어서인지 아버지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였다.


11p)


솔직히, '있어 보이는' 문장은 이게 고작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겉이 번지르르한 문장들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하나 번지르르할 것 없는데 번쩍이는 문장들이 있다.


이 소설은 둘 다 아니다. 

그냥 번지르르할 것 없는...문장들이다.

소설이 끝나지 않은 아직까지는.


어지간히도 비유를 쓰지 않는다. 

요즘 소설에서 판 치는 '~처럼'조차 거의 없다. 

그냥 할 말을 담백하게 한다. 비유 같은 것에 의탁하지 않고.


그래서 '울어달라며 고용된 사람처럼'처럼 신중하게 쓴 비유가 좀 귀하게 느껴진다.

다른 소설에 썼다면 흔하거나 낯익을 수도 있는데.


요즘 소설답지 않게 이 소설의 '아버지'는 '교수 씩이나' 된다.

대개, 무직에 무능해서 집을 나간 소설 속 흔한 아버지들과 다르다. 

그 점이 계속 읽게 만들었다.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이렇게 '있어 보이는' 아버지들은 집을 잘 나가지 않으니까.


'나(아들)'는 아버지를 공항으로 배웅하면서 '가벼운 점심'을 함께한다. 

벚꽃이 핀 봄날이다.


'갸벼운 점심'은 가벼운 점심답게 패스트푸드점에서 이루어진다. 

뉴요커가 다 된 아버지는 뉴요커답게 햄버거를 주문한다. 

'무거운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던 '나'는 못내 아쉬워하지만.


나와 아버지 사이에 두 장의 사진이 오간다.

나는 아버지에게 연인의 뱃속에 자리한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사진 속 아기가 자신을 닮지 않길 바란다.

아버지는 나에게 연인의 사진을 보여준다.

금발의 파란 눈을 한.


나는 대번에 아버지에게 그 사람이 아버지의 진짜 사랑임을 알아챈다.

그래서 아버지는 행복해 보인다.


아버지는 나를 낳고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부자 간의 '가벼운 점심'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를 가볍게 주고받기에 더없이 적절한 매개가 되어 준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

아버지의 연인 또한 아버지와 사랑을 하면서 일도 가족도 잃었다는 식의.


학자였던 아버지는 뉴욕에서 연인과 세탁 일을 한다.


학자였을 때 아버지의 손은 말랑했지만 왠지 삭막하고 창백하고 무뎠던 걸로 기억한다. 시든 손. 그러나 세탁을 한다는 현재 아버지의 손은 거칠지만 부정하기 힘들 만큼의 생기가 감돌았다.

활짝 핀 손이었다.


35p)


이런 식이다. 

그 흔한 비유가 고집스럽게 없다.

세상 말로 '흔한' 작가라면 "~처럼' 말랑거리고 '~처럼' 거칠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독자를 편하지만 게으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활짝 핀'이 고작이다.


이상한 소설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려다 문득 서게 된다.


손이 피다니. 손이 활짝 피다니.

아, 봄 꽃? 봄 꽃처럼 활짝 핀 다섯 손가락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작가는 독자더러 하라는 것 같다.

비유는 직접 알아서 생각하라는 것 같다.


"봄이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인 거야."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분홍 빛으로 물들었다. 즐겁게 나이를 먹어서 생긴 주름이었다.


"열 번의 봄은 열 번 환생한 느낌이었어."


41p)


자식이고 아내고 다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서 연인과 저 하고 싶은 대로 살며

분홍빛 주름을 달고 봄마다 환생한 느낌으로 사는 아버지.


있어 보이는 아버지는 다 그런 건가.


도대체 이 아들은 어째서 이런 아버지와 '가벼운 점심'을 나누며

가벼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인가.

이 아들은 어째서 다 버리고 집 나간 아버지에 이다지도 호의적인가.


이제 소설의 결말에 이르렀다. 

도대체 독자로 내가 얻어가야 하는 건 뭔가 밑진 느낌이 들 참이다.


반전을 도모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이제 겨우 한 장 남았으니.

앞의, 새로울 것 없는 그 모든 걸 뒤집거나 흔들기에 한 장은 역부족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소설이다.


한 장으로 그걸 해 내고야 만다.


턱을 괴고 소설을 읽다가 결말을 다 읽고 턱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맨 앞으로 돌아가 양손에 책을 쥐고 다시 읽었다.

전에 읽었던 거의 모든 단어가 새롭게 읽혔다.


특히, 여기.


"더러운 인간! 포기하겠다는 거야, 전부 다."


집 나간 아버지들에게 던지는 어머니들의 흔한 개탄사.

그런데 결말까지 읽고 돌아오면 이 문장의 진의를 알게 된다.


'더러운'의 서브텍스트를 알게 된다.

'포기한 것'의 대상을 알게 된다.

'전부 다'의 스펙트럼을 알게 된다, 이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비유가 필요 없었는지 모른다.

혹시 작가는 비유를 썼다가 다 지웠는지도 모른다.

비유가 해 낼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단어가 지닌 본연의 의미만으로도 얼마든지 서브텍스트가 품어질 수 있다는 걸 

이 소설은 보여준다.


봄, 봄 꽃, 아버지, 어머니, 연인, 손, 주름, 행복, 사랑 같은 단어가 

이다지도 품이 넓었던가.


내가 단어들마다 얼마나 졸렬한 고정관념으로 대했던지를 절감하게 해 주었다.


참, 이상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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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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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17p)

아는 분이 아이를 대학에 보내보니 이제 어지간히 알겠더라고 했다. 

아이를 명문대 보내는 걸 실패해 보니 명문대 보내는 비결을 이제 알겠더라고.

성공이 아니라 실패해 보니 더 잘 알겠더라고.

그런데 문제는, 대학 보낼 아이가 더는 없다는 사실.


그리 말하며 그분은 씁쓸하게 웃었다.


밀란 쿤데라의 문장이나 그분의 웃음이나 하는 말은 같다. 

우리 인생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


이젠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만 너무 늙어 버렸다.

이젠 결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에서 남편(혹은 아내)가 밥 먹고 있다.

이젠 사랑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떠나고 없다.

이젠, 이젠, 이젠...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18p)


그렇다. 우린 살아봐야만 알게 된다. 알고 나서 사는 게 아니니까.


이 명작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그런 가정, 혹은 진리에서 탄생한 존재들이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미리 살아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믿는 자들이다.


네 명 중 두 명은 '무거움'을

다른 두 명은 '가벼움'을 그 방도로 믿고 산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무거움을 택한 이들은 가벼움을 취하고,

가벼움을 택한 이들은 무거움을 취해간다.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에게 무게를 더하고 덜어내고자 

고군분투한다. 


혹은, 자신에게서 무게를 더하고 덜어내고자 각성한다. 


그녀가 자기 아파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역시 원치 않았다. 

동반 수면은 사랑의 명백한 범죄다.

(26p)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떄 테레자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토록 기겁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중략) 지난 밤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더니 자신이 알지 못했던 행복의 향기를 들이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 모두 잠까지 함께 잘 수 있다는 것에 미리 즐거워했다. (27p)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29p)


여자와 함께 나란히 잠 자는 것이 불안한 남자.

그런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잠드는 여자.


우린 이 두 부류 중에서 어느 한 쪽에는 들 것이다. 

그래서 가볍거나 무거울 것이다. 


쿤데라는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어느 쪽이라고 답하는 순간, 열패감에 젖을 필요는 없다.

쿤데라는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추어 올리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로 하여금 답할 방도를 궁리하게 만들면서

작가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하긴 했다. 작가가 무거움과 가벼움,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인지.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보면 '가벼움'을 힐난하는 것 같은데 읽어보면 막상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아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었다.

(49p)


모빌리티. 

문학에서 구현되는 모빌리티(이동성)의 지류다.


우리가 '이동성'을 발휘하려는 시기는 '만족감'과 '자신감'을 느낄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쿤데라는 그리 말한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는 그게 만져지지 않아서. 그럴 때 우리는 이동한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닌 나라,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131p)


이 정도면 노골적인 모순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찾아 외국으로 이동한다면서?


외국에 없는 단 한 가지를 들라면 바로 조국이 제공하는 구명줄, 모국어가 아닌가 말이다.

모국어란 절대적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장소에서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음의 문장을 가슴으로 읽었다.

카레닌, 날 원망하지 마. 다시 한 번 이사를 가야겠다.

(132p)


외국에 사는 모든 이가 나 같지는 않겠지만, 

조국이 제공한 구명줄을 스스로 놓음으로써

나는 오늘도 곡예하듯 하루를 지나간다.

절반만 이해하는 단어들을 붙잡고 절반만 채워진 것 같은 생을 살아낸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한 번 이사가는 꿈을 꾼다. 

그래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정착한 밀란 쿤데라의 가슴과 닿았다는 것에 조각같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평생 동안 권태의 도시라고 

저주했던 제네바가 이제는 아름답고 모험에 가득 찬 곳처럼 보였다.


147p)


20여년 간 내가 사는 이곳 이국을 권태와 기만의 도시라고 저주했다.

나 역시 이제는 아름답기까지는 안 해도 사람 사는 곳은 맞다고 생각하게 도었다.

20여년 간 해왔던 질문 하나는 접게 된 셈이다.

권태와 기만의 도시라면서 나는 왜 떠나지 않았는가?

왜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 질문을 더는 하지 않게 된 것만도 살 만해졌다.


이 작품을 소설로 읽기에는 벅차다.

이 소설은 사건과 사건 간의 인과관계보다는

문장과 문장 간의 인과관계가 중해 보인다.


줄거리가 없다고 불평할 수 있다.

줄거리는 작가의 사유를 펼치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많은 작가들이 안 그런 척 할 뿐이지만 쿤데라는 과감하게 그걸 드러내놓고 쓴다.


그래서 소설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갔고 소설 속에서 우리를 내다본다. 

소설 속에 존재하지 않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소설 속 인물을 응시하는 인물로 선다.


이제까지 이런 화자가 있었던가, 소설에.

과감한 용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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