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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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수시로 띄지만 못 보았다 여기고 싶은 군집. 인류사 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대미문의 계급. 호모 사피엔스 시절엔 있었을까. 슬럼. 그땐 모두가 슬럼 상태였을까. 사냥한 날 한 끼만큼은 그래도 배불렀겠지. 도무지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21세기의 빈곤. 어쩌면 우린 모두 슬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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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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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령은 커피 통 뚜껑을 열고 

커피가 한 숟가락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7p)


소설은 첫 문장에서 '얼굴'을 보여준다.

소설이 어떻게 생겼는지, 인상을 먼저 보여준다.

대개가 그렇다.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 소설의 얼굴을 얼핏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다.

생각해 보라. 

소개팅(요즘도 이런 단어를 쓰는 지는 모르겠지만)하면서 

얼굴도 안 보고 그 사람에 관해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리라 결심하고 첫 장을 펼친 독자에게 호기심을 주지 못하는 소설은...

소설, 자신도 힘들고 독자는 더 힘들게 한다.


아무리 난해한 소설도 호기심은 주게 마련이다.

도대체 이 난해함의 끝은 어디인가, 란 호기심조차 주게 돼 있다.


[커피 통 뚜껑을 열었는데 커피가 한 숟가락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얼굴은 '결핍'의 인상이다.


이 소설은 '결핍'에 관한 이야기구나.

대령은 '결핍'의 인물이구나.


독자는 대령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나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대령이 결핍에 무너지지 않고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대령을 알아야겠다.


다음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순진한 기대감에 부풀어 

화덕 옆에 앉아 커피가 끓기를 기다렸다.

(7p)


대령은 자신만만하고 순진한...캐릭터

가 아니라 그의 '기대감'에 관한 설명이다.

그의 기대감이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기다린다'가 더 중요해 보인다.

대령은 아무래도 '기다리는' 사람일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7p)


이제 우리는 '대령'의 이름도 나이도 뭣도 모르지만 

그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보했다.

그는 기다린다. 무엇을?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찾아 소설로 기꺼이 뛰어들 작정이다. 


아내는 굽고 딱딱한 등뼈 위에 얹힌 보잘것없는 하얀 연골에 불과했다. 

호흡 곤란 때문에 의문문을 긍정문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8p)


대가...답다.


대령이 기다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 동안 우리는 대령의 아내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무엇'을 범상치 않게 맞을 수 있다.

대령 혼자서 소설의 목적을 이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대령의 기다림에는 필시 조력자가 있을 터다.


하얀 연골에 불과하고 의문문을 긍정문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아내.


대령에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할 것처럼 그녀는 병약해 보인다.

대령에게는 어째 '쓸모없는' 존재 같다.

소설에서 대개 그렇듯, 독자에게는 적잖이 유용할 것만 같고.

하얀 연골에 불과하지만 의문문을 긍정문으로 탈바꿈시킬 정도라면야...


이 문장의 서브텍스트는 다층적이다.

그 중 하나를 벗겨보자면.


생에 대한 수많은 의문을 외력에 의해 받아들어야만 하는

'긍정'이 강요화된 무력의 극치.

자발적, 타발적 모두 다.


아내는 아무래도 대령에게 조력하기보다는 대령에게서 조력을 받아야 할 인물 같다.

모기장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만 봐도.


아내는 남편의 신발을 눈여겨보았다.

"그 신발은 이미 버릴 때가 다 되었네요."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계속 에나멜 구두를 신는군요."

대령은 갑자기 우울해졌다.

"마치 고아가 신는 신발 같소." 대령은 투덜거렸다.

"이 신발을 신을 때마다 고아원에서 도망친 느낌이라오."

"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예요." 아내가 말했다.


아, 솔직히 말하자.


나는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아니, 이제껏 읽은 모든 소설이 그런 느낌이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예요.


과연, 나만 이 문장에서 멈춰 한참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많은 '우리'가 그랬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의 소명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것의 어떤 의미가 됐든지간에 그런 거라 믿는다.


마르께스는 '고아'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해 우리에게 선사했다.


'부모가 없는 아이'에서 '자식이 없는 부모'로.


부모(어른)도 아이가 될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식이 '소거'된 부모는 자식의 고아일 수 있다.


'없음'이란 '부재'로 인해.


마르께스의 '고아'는 기존의 통상적인 '부재'와 '결핍'이란 의미에 한 가지를 더 얹었다.


(대령의) 기다림.


그러고 보니, 그렇다.

'고아'는 기다림이다.

'결핍'과 '부재'를 '있음'으로 치환해 줄 대상을 기다리는.


그렇다.

'고아'는 우리인 것이다. 


우리 중에, 과연,

무언가를 기다리는 '고아'의 상태가 아니라고 항변할 자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소설의 중간도 가지 못했는데,

나는 이미 '대령'이 되었다. 

당신은 어떤가.


여기서부터 나는 '우리'란 말을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어디서 난 거요?"

"수탉한데요." 아내가 대답했다.

"아이들이 옥수수를 너무 많이 가져오는 바람에 수탉이 우리와 함께 나누어 먹기로 했어요. 이런 게 인생이에요."

(60p)


죽은 아들이 기르던 수탉은 죽어 무력해진 주인,

그 주인에 의해 '고아'가 된 주인들에 의해 무기력해진 채

침대 다리나 화덕 다리에 매인 신세다.


그 수탉에게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옥수수가 대령과 아내를 먹인다.

그리고 대령과 부부는 '그게 인생'이라고 한다.


"인생이란 지금껏 발명된 것들 중에서 최고라오."

(61p)


수탉에게서 나눠 받은 옥수수 죽을 먹고 대령과 아내는 그때까지 가지 않고 있던

죽은 사람의 집에 조문을 간다. 그리고 시계를 팔 궁리를 모색한다. 

그리고 대령은 드디어 수탉을 팔 결심을 한다. 


소설은 전환을 맞는다.


링 한복판에 무방비 상태로 혼자 있는 수탉을 보았다.

며느리발톱을 누더기로 싸매고 있고, 발을 떠는 것으로 보아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상대는 칙칙하고 창백한 수탉이었다.

(중략)

수탉이 전광석화처럼 깃털이 펄럭이더니 발로 공격하고 목덜미를 물었다....

그의 수탉은 공격하지 않았다. 상대가 공격할 때마다 물리치고는 정확하게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제 수탉은 발을 떨지 않았다.


(84p)


소설의 절정이다.


소설은 이미 결말을 맞은 느낌이다.

대령도 이제 더는 발을 떨지 않을 것 같다.


더는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


대령의 기다림은 완료될 것 같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싶다.

결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죠."

아내는 이렇게 물으면서 대령이 입은 티셔츠의 칼라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투계, 투계의 투영이다. 

대령과 아내는 '투계'를 치른다.


"말해봐요. 우리는 뭘 먹죠."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 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심오 년의 

일각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똥."

(94p; 소설의 마지막 문장)


나는 앞으로 책을 몇 장 넘겨 이 문장을 찾아 다시 읽는다.


수탉이 전광석화처럼 깃털이 펄럭이더니 발로 공격하고 목덜미를 물었다....

그의 수탉은 공격하지 않았다. 상대가 공격할 때마다 물리치고는 정확하게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제 수탉은 발을 떨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의 고아다.

내게 무언가는 결핍되고 부재한다.

나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나의 무언가는 무엇인가.

내 기다림은 완성될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대령처럼 더는 발을 떨지 않을 수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었으니 

이 소설을 읽기 전과 달리,

나는 앞으로 발이 떨릴 때면

의식적으로나마,

수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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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1-12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소설 너무 읽고 싶어지고...젤소민아님 글은 넘 웅장하구요ㅎㅎ
글 읽는 10분 동안 문학 수업, 소설 작법 강의 듣는 기분이었어요.
저에게는 소설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젤소민아님의 기다림은 완성될 것입니다!!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젤소민아 2025-01-12 03:38   좋아요 1 | URL
꼭꼭꼭, 읽어보세요, 전야제님. 뒤늦게 읽었는데...제 인생소설이 되었어요~제 인생소설 top10에 바로 등극~(졸지에 다른 게 밀려남). 감히, 순위는 못 정하고 지난 4년간 권당 최소한 3번씩은 읽은 명작소설들 중 top10이 있어요.

귀띔해 드릴까요?

노인과바다/남아있는 나날/어린왕자/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전쟁의 슬픔/순수의 시대/외투/아큐정전/필경사 바틀비/바다(존 밴빌)

이 TOP 10은 더 읽어가면서 조금씩 바뀌긴 합니다~.

노인과바다-주제(노인의 투지,는 서브테마. 메인테마는 따로 있어 보여요~. 메인테마가 서브로 깔린 게 압권!)

남아있는 나날-캐릭터의 일관성

어린왕자-주제(세상에 오억 개의 장미가 있어도 단 하나의 내 장미)

전쟁의 슬픔-모든 문장의 슬픔

바다-소설의 ‘은폐‘ 기법을 소설로 강의

아큐정전-캐릭터, 캐릭터! 세상 모든 소설은 고골에서 나왔다...에 이어
세상 모든 캐릭터는 ‘아큐‘에서 나온 듯

전야제님과 소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묻지도 않은 ‘TOP10‘ 수다를..ㅎㅎ

전야제 2025-01-12 12: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인생소설 T0P20도 환영입니다.
노인과 바다랑 어린왕자 빼고 다 안 읽어봤지만, 짚어주신 포인트들을 생각하면서 읽을 생각에 넘 즐거워요^^
소설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뇌하고 고민한 것이 좋은 통찰을 가져온다는 게 이런거구나를 젤소민아님의 글에서 느껴요. 역시!!!
노인과 바다와 어린왕자 저도 인생작이에요ㅎㅎ
근데 노인과 바다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메인테마를 찾아서!!
루쉰의 소설은 언제고 한번쯤 도전해야지 했는데 역시 젤소민아님의 인생 소설이었다니ㅎㅎ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를 영화로 접해보고 그의 소설도 읽고 싶었는데 남아있는 나날도 그래서 기대되요.
메모해 놓았습니다.
언제나 소설 이야기 환영이에요!
생생히 살아움직이는 유쾌한 이야기 덕분에 넘 즐거운걸요^^
 
두 번째 원고 두 번째 원고
함윤이 외 지음 / 사계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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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 2025년도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원고>라는 제목만 봤는데 꼴깍, 부럽고! 더럭, 두렵고! 불끈, 의지가 솟네요! 신인들에게 이런 자리 내주시는 출판사는, 무조건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세번째, 네번째~죽,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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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4-12-2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젤소민아님 신춘문예 당선 축하드립니다! 멋지시고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출간하실 소설들도 응원합니다

젤소민아 2024-12-29 23:19   좋아요 1 | URL
기쁨보다 부담이 더 크긴 합니다만~축하와 응원 댓글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2024-12-24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9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5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5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6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6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5-01-0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 책은 2022년 동기생으로 나오는데 어느 연도가 맞는 건가요?
암튼 축하합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그 책인가 봅니다. 그럼 함자가 함 씨로 시작되는..? ㅋ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암요. 세번, 네번째 계속 쓰셔야죠. 응원합니다. 홧팅!!

젤소민아 2025-01-08 11:4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저 책과는 아무 상관없고요~
저 책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다음 작품을 싣는다는 뜻입니다~전 2025년, 올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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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하나 알면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셈,이라고 누가 그랬다. 난, ‘사랑‘이란 단어를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서 처음 접했을까? 누군지 모른다. 사랑, 만큼은 단어가 아니라 마음으로 열리는 우주라서....? 그럼, 난 아직 ‘사랑‘이란 우주를 열지 못한 건 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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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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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초등학교 때 읽었다.

아마도 축약본이었을 것이다.


누가 살았어요, 어땠어요, 저쨌어요..하는 식으로 존대말로 된.


그러니 제대로 읽은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맘잡고 제대로 읽어볼란다.

번역본이 여럿.


어느 것으로 읽을까.


알라딘의 '미리보기'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

우선, 첫문장 비교부터.


원문은 이러하다.


1801-I have just returned from a visit to my landlord-the solitary neighbour that I shall be troubled with. This is certainly a beautiful country! I do not believe that I could have fixed on a situation so completely removed from the stir of society. 

축약본도 도움은 되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여기서 말한 '집주인'이 그 유명한 히스클리프란 게 기억난다. 


화자는 '나'. 나는 히스클리프란 걸출한 소설 인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solitary neighbour


solitary


이 단어 안에 겹쳐진 다소 이질적 의미를 절묘하게 써먹고 있다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1) separated from/따로 떨어진

2) only one/ 단 하나의


1)번은 집주인(히스클리프)의 몫이다.

2)번은 화자인 '나'의 몫이다. 


'solitary'는 '떨어진', '고독한'이 지배적인 의미지만

영미인들에겐 'single'이란 뜻도 유력하다.


집주인은 따로 떨어진(solitary) 집에 혼자 사는데

그러니 나는 그가 유일한(solitary) 이웃이라 아주 좋아.

(the stir of society에서 벗어났으니까)


==>화자인 '나'와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캐릭터를 바로 소개하는 셈이다.

'solitary'란 한 단어로 '나'와 '집주인'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영어는 이래서 짜증 나게 헛갈리기도 하지만 또 이래서 유용하기도 하다.

영어로 글 쓰는 그들에게는. 그 영어를 제대로 읽어내기만 하면 독자에게도.


그렇다면 번역은 이 두 이질적인 의미를 잘 살렸을까?


비교해 보자.

비교하면서 스스로 평가해 보시길.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민음사(김종길 역)


흠...완전히 다른 의미.

'사귀다'는 의미는 원문 어디에도 없다.


이제 그는 내가 신경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문학동네(김정아 역)

흠...'신경쓰다'는 의미 또한 원문 어디에도 없다.


몇 킬로미터 내에 이웃이라곤 오로지 그 집 한 채 뿐이다-푸른숲주니어/공경희 역

흠..'solitary'를 '뚝 떨어진'으로 밖에 못 옮겼다. 뒤 'troubled'는 어디갔나...

청소년본 같은데, 그래서 '축약되었을' 수는 있겠다.


그는 앞으로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앤의 서재(이신 역)

'문학동네'와 이하동문.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열린책들(전승희 역)

흠..의역하면 맞다. '유일한'도 살렸다. 그런데 'troubled'는 '내가 신경쓴다'기보다는 누가 나를 귀찮게 하는 뉘앙스다. 귀찮으니 신경 쓰이긴 하겠으나, 귀찮고 성가신 게 먼저다.


그 외에도 더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여기까지 살펴보고 좀 지쳤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번역본이다. 황유원 시인 번역.


앞으로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인 그를.--휴머니스트 세계문학/황유원 역


내 생각엔 이 번역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


'trouble'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서.


그런데 굳이, 굳이, 살짝 아쉽다 한다면...


그가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이라, 하면

이웃이 많고 이웃 모두 좋은 양반들인데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는 뜻으로 오독될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뒷문장을 더 읽으면 오해는 풀린다. 


그러나 영미인은 뒷문장을 안 읽어도 제대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이 어떨까 싶다.


나를 성가시게 해본들 이웃이라곤 그가 유일하다.


흠, 여기도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고 오독될 우려가 있지만 

오해 소지가 좀 약화돼 보인다.


최선의 번역문은 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한다, 뭐.


아무튼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지금껏 한국 독자는 '폭풍의 언덕'을 첫 문장부터 제대로 못 만났다는 느낌적인 느낌.


첫 문장에서 휘청이니 번역본을 더 읽기가 좀 주저된다.

그래도 황유원 번역으로 읽기 시작했다.


번역에 관해서도 독서 후기도,

좀더 읽고 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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