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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세상은 따로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누군가 눈에 보이는 대로 맺힌다.
누군가의 눈이 보는 대로 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나만의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내 눈에 맺힌 나만의 세상을 보는 것이다.
같은 소설을 읽었으면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유튜브를 둘러봐도 다 같은 말이다.
이렇게 느꼈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
이렇게 느꼈다,라고 말하기를 강요받은 적은 없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모두의 말이 같은가.
비슷한 생각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정말 소설은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한 사람이니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없을 지 모른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으로 내 몫을 다하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들 같은 자리에 선 것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자리에 선 지구인 아니던가.
나는 소설을 쓴다.
소설가이다.
소설가 지구인이다.
소설가 지구인이다보니, 뭘 봐도 소설이 보이는 모양이다.
무덤가에 모인 대다수의 학생들은 음악 선생의 지휘에 맞추어 합창곡을 부르면서도 지휘자의 손을 주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양복점 주인의 외롭고 초라해 보이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136p)
틀에 박힌 지성과 잘 짜여진 미래를 강요하는 수도원에 모인 수재들은 소심했던 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다. 무덤가에 모여 학생들은 지휘자의 손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친구의 아비를 본다. 외롭고 초라한 아비를 본다. 아비는 추위에 떨며 눈 속에 서 있다.
학생들이 보는 아비는 '영혼'이다.
영혼은 대개, 외롭고 초라한 법이니까.
영혼을 다루어야 하는 수도원은 정작 영혼의 부재 공간이다.
학생들은 지휘자의 손을 보지 않을 줄 안다.
본능이다.
친구의 무덤가에서만큼은 그 손을 보지 않을 줄 안다.
진심이다.
이따금 왼손으로 저고리 자락에 숨겨놓은 손수건을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정작 그것을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137p)
우리네 순수한 영혼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드러나주기만 한다면 우린 초라하고 외롭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들 잃은 아비여, 손수건을 끄집어내 주길!
소설가도 이래야 한다.
지휘자의 손을 주시하지 않아야 한다.
외롭고 초라한 재단사 아비를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재단사 아비가 끄집어내지 못한 손수건을 끄집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만지작거리긴 해야 할 것이다.
이따금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책 속에서 동경과 갈망에 사무친 인물이나 역사의 한 부분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살아나 자신의 시선이 생동하는 눈망울에 맺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149p)
내가 쓰는 소설의 인물이 바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살아나 자신의 시선이 생동하는 눈망울에 맺히기를...
바라는것이다.
소설의 인물은 생명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산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에 갇힌 것이다.
텍스트 안에서만 자유로운 것이다.
소설의 인물은 현실로 불쑥 튀어나오지 못한다.
제힘으로는 못하는 것이다.
독자만이 할 수 있다.
소설의 인물을 현실로 불러낼 수 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살아나 자신의 시선이 생동하는 눈망울에 맺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네들의 바람을 듣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동해야 할 것이다.
생동하는 눈망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소설을 읽는 외롭고 초라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여.
아, 생동하는 눈망울을 가진 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