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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흐느낌 ㅣ 문학동네포에지 28
신기섭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나는 아직 이 시집을 사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읽지 못했다.
일찌기, 어디선가 이 시집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 이가 있어서
시집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개정판도 나와 있었는데, 이제야 아는 척을 한다.
참, 박정했다.
그러나 나는 뜻한 바가 있어 이 시집을 읽는 것을 미루었다.
내가 슬플 적에는 슬픈 시를 읽을 수가 없어서였다.
지금도 나는 슬프지만,
정말 자주 슬프지만...
다행히 사이사이 정말 자주 또 즐겁기도 하기에
내 슬픔과 즐거움은, '쌤쌤'이다.
그런데 생각을 잘못했다.
이 시는 내가 내내 슬플 적에 읽었어야 했다.
슬픔의 사이사이, 즐겁기도 한 나라서
이 시집을 읽으며 내내 미안해해야 할 테니까.
구매할 결심이 섰고, 이제 나는 이 시집을 곧 읽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렇게 후기를 쓸 것이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슬픈 시는 읽은 적이 없다, 라고.
이 시집의 '슬픈' 사연은,
다른 분의 블로그 내용을 빌려온다.
슬퍼할,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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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 경북 문경 출생. 2005년 〈한국일보〉 등단.
500년 전 그는 프랑스의 궁중악사였다.
당시 그는 “지루한 궁중을 탈출한 죄로 사형당했다.”
그가 사형되고 그를 위해 울어 준 것은 난쟁이들이었다.
살아생전에 신기섭은 전생체험을 통해 알게 된 자기 전생을 시 〈원에게〉에 쓰며 “이 생도 탈출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우려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2005년 12월 4일,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폭설에 영천행(行) 고속버스가 굴렀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요절 시인에 대한 청탁 전화를 끊으며 책상에 이마를 대고 십 년 만에 그 이름을 세 번 불러보았다. 기섭, 신기섭, 기섭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지금도 내 가슴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형, 우리 첫 월급 타면 고기 사먹어요.” 고기 몇 점이 뭐라고 월급을 타야 먹을 수 있었단 말인가. 가난했다, 우리는. 그는 봉천동 언덕배기 옥탑방에서 가난했고, 나는 북아현동 지하 고시원에서 가난했다. 그의 마지막 문자가 남은 휴대전화도 그가 일기와 시 메모를 쓰던 홈페이지도 지금은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 그가 결혼을 약속한 착하고 예쁜 ‘원’의 소식도 끊겼다. 세상에 남은 그의 흔적이라곤 유고시집과 그의 모교 동산에 있는 ‘신기섭 나무’ 한 그루뿐이다.
침대 머리맡에 쌓인 시집들 중 그의 시집을 빼냈다. 그는 가족이 없었다. 빨랫줄을 잡고 변소로 가는 할머니가 유일했다. 할머니의 뼛가루를 흰 쌀밥에 섞고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를 불사르고 난 뒤에는 세상에 홀로 남아 분홍색으로 흐느꼈다. 사고가 있기 전날, 그가 홈페이지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밥을 지어 먹고 앉았다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행(行)-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 장소를 가지고 있는 내 생활이 좋다. 다녀와서 발자국 몇 개 꼭 남기리라. 옥상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다.”
그러나 하얀 꽃무늬 커튼이 있는 방, 밥솥의 보온 불빛이 반딧불이로 날아다니던 옥탑방으로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사고 당일, 그는 새로 산 구두와 와이셔츠와 넥타이로 ‘생전 처음’ 차려입었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직장 동료는 그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정말 맛있게 밥을 먹었다고 전했다. 새 옷을 입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 뒤 훌쩍 떠난 것이다. 영천 만불사 뒤뜰에서 그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를 태우며 시인 윤진화는 아흐아흐 울었다. 그의 문재(文才)를 아끼던 시인 길상호가 저도 차마 고개 들지 못하고 흔들리는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쩌면 그날 기섭은 우리 곁에 서서 자기 자신을 또 배웅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입으로 곡(哭)을 하며 길을 떠난다”(〈꽃상여〉). 시인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하얀 커튼 속으로 사라지던 날, 난쟁이 몇몇이 모여 전생에서처럼 그를 위해 울고 있었다. 그해 첫눈은 한국 시단에 기막히게 부드러운 죄를 지었다. 태어날 때 울지 않았다는 시인이 울지 않는 흰 물방울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 12월이다. 곧 첫눈이 돌아올 것이다.
박지웅 씀
*블로그 출처/https://m.blog.naver.com/hansoo8824/22056597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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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대학 은사인 김혜순 시인이 제자들에게 야단 칠 일이 있었던가 보다. 과대표인 그를 불러 호통을 치는데, 그는 벙싯벙싯 웃고만 섰더란다. 화를 돋구는 어린 제자에게 스승은 목청을 더 높이고, 제자는 계속 그렇게 웃고…. 일화를 들려주며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한테 야단맞는 것 같아 그렇게 좋더래. 그 녀석, 그게 그렇게 부러웠던 거야.”
최윤필 기자
출처/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605262367839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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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오래도록 홀로였던 시인이 남긴 시들은 이제,
태어나 누구나 홀로일 수밖에 없는 우리 곁에서
그 홀로임을 슬프게 절감할 때,
등을 도닥이는 손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기섭 시인의 늦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