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 비전공자의 소설 쓰기 경험들 시리즈 4
정진영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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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지만 두툼하다. 소설을 쓰며 자랑이라 할 수 없는 실패담을 ‘성공적으로‘ 엮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써 달라는 이 없지만 뭐, 나 혼자 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소설이 그런 것 아니던가. 실패에 관한 혼잣말. 성공이 담보되는 소설이 무슨 매력인가 말이다. 실패하자, 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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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걸작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크누트 함순 아닌가. 

무려, 노벨문학상.

무려 자전적 소설.

빈농의 아들로 15세 때부터 거리로 나섰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는 배고픔에 거리로 나선다.

집에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서.

수중엔 돈도 없고.

전당포에 잡힐 건 다 잡혔다.

누군가에게서 얻은 초록담요와 안경뿐.


업은 그럴싸하다.

신문에 글 내는 자유기고가.


딱, 함순 자신의 이야기다.


글이 채택되면 몇 푼 얻는다.

신문사로 글을 내러 가는 중에 참 여럿을 만난다.

지겹도록 만난다.

만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배고픈 자들이다.


'나'는 '배고픈 주제에' 또 그들을 돕고 싶어 안달이다.


그 바람에 '나'의 굶주림은 계속되고

배채우기는 지연된다.


제발 밥, 좀 먹자.


기다리다 소설 읽던 내가 배고파 지칠만하면 '나'의 손에 돈이 들어온다.

그거로 배를 채운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장은 또 이내 며칠이 흐르고 '나'는 또 배가 고프다.


이 명작의 명작 포인트는 바로 이 '지연'과 '충족'의 기막힌 타이밍.

독자가 소설을 읽는 속도를 타이머로 잰 듯, 정확하다.


소설을 읽어보라.


배가 고플 것이다.

배가 고파지는 지점에서 배 채울 '구원'을 만날 것이다.


소설 속의 '나'처럼.


당신은 독자가 아니라 '나'가 된다.

함순이, 된다.


나는 온 나라에서도 비길 데 없는 머리와 하역 인부라도 때려눕히고 콩가루로 만들 만한 두 주먹을 가지고 있다(신이여 용서하소서), 그런데도 크리스티아나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굶주리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세상의 질서와 순서가 그런 것인가? (137p)


*명작모멘트


굶주리다가 노숙자로 위장하고 경찰서에 찾아 들어가 노숙자 숙소에서 밤을 보내는 '나'.

특별한 암흑 속에서 기묘한 어둠을 만난다.

그러자 어처구니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차면서 물건 하나하나가 두려워진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모든 소리가 예리하게 들린다.

그러다 '나'는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쿠보아.


암흑 속에서 그 단어가 눈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즐거워서 웃는다.

'나'는 굶주림으로 인하여 완전히 광기에 이른다.

텅 빈 상태가 되면서 괴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생각의 고삐를 놓으면서 떠오른 그 신조어.


쿠보아.


죽을 떄까지 잊지 못할 명작 모멘트.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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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짜증나는 여인. 인도이민자로 영어로 문학하고 이젠 이탈리어로 소설을 썼다. 번역 산문집도 냈다. 다 좋다. 짜증난다, 솔직히. 부러우면 지는 건데. 완벽하게 졌다.


로버트 맥키의 액션

액션소설을 쓸 일은 없을 거지만 읽어야 한다. 로버트 맥키잖아. 그의 액션은 다를 거니까.


윌리엄 트래버

단편소설의 대마왕. 짧게도 잘 쓰신다. 짧을수록 더 힘든 건데.


2023 신춘문예 희곡당선작품집

희곡, 쓰고 싶다아!! 신춘문예, 붙고 싶다!!


사물어 사전

사물이 좋으니까. 단, 사물을 다뤘다고 다 좋은...책은 아니...


음악, 밀당의 기술

음악의 '박자'에 관해서 논한 책. 드무니까.


소설 강화

무조건 사야지. 내 소설이 강화될 거야!


초급한국어/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작가님 책은 사야지. 작품도 좋지만 인품마저 좋으신.

소설에도 인품이 담겼을 테니까. 인품도 배워야하거든.


저지대

헤르타 뮐러는 소설을 시같이 쓴다.

밤새워 일순위로 읽을 책. 그녀의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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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2-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래버 책을 저도 샀는데 한 편도 읽지 않았어요. 책을 너무 아낀 나머지 구기기도 싫어 모셔 두고 있어요. 다른 책 읽느라 완독할 자신이 없는 책은 새 책으로 일단 남겨 두는 버릇이 있어요. 하하~~

젤소민아 2024-02-01 23:32   좋아요 1 | URL
ㅎㅎ 페크님, 그 심정 너무나도 이해합니다. spine 접히는 것도 싫거든요~심지어는 두 권 살 때도 있어요. 하나는 소장용, 하나는 마구 메모하기 용으로요 ㅎㅎ 어떤 독서에세이에서 추천한 방식이죠. 주머니는 얄팍한데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네요. 행복한 비명이죠! 댓글 감사합니다~자주 봬요~
 
돌에서 짜내는 마음 - 인지고고학과 인간 마음의 진화
카렌레이 오버만.프레데릭 쿨리지 지음, 이성근 외 옮김 / 하나의학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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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노력 없이, 그냥 문자 그대로 ‘짜낸‘ 제목인데 이리 좋을 수 있나. 별 노력 없어 보이는데 가슴에 쿵, 와닿았을 때 기실, 그 이면에 밴 엄청난 노력을 눈치챌 수 있는 법이다. 수백, 수천의 잠재적 제목을 떠올렸으리라. 그냥 원점으로 회귀키로 결심했더라도 그 지난했을 길은 의미가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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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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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되고 나서 ‘명작‘이란 입소문을 듣고 어렵게 구한 책. 나만 갖고 있다는 회심과 자부심에 빛날 수 있었던 책. 이제는 공유함에, 솔직히 아쉽지만 흐뭇하기로 한 책. 심도 있는 책들이 획득하기 어려운 실용성마저 겸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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