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페이퍼를 간략하게 썼다. 그 책의 저자가 60세에 인생을 다시 살기로 작심하고
70세에 졸혼하고 88세에 독서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쇼킹하고 감동적인 배경이 있어서.
근데 책 제목이 어디선가 자꾸 기시감이 드는 거다.
제인 오스틴이야 다룬 워낙 많으니 뭐.
제인 오스틴 소설 말고, 다른 사람이 제인 오스틴을 모티프로 쓴 책.
대충 봐도 이 정도. (바로 아래에 사진이 안 붙어 아쉽)
아무튼 다시 찬찬히 돌이켜 보니, 이 책이 떠올랐다!
리리딩(Re-reading)
다시 읽기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제인 오스틴'에 관해 본 것 같아서.
오스틴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오만과 편견'에도 다시 읽기의 힘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상사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시의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상했던 엘리자베스 베넷은 그가 해명 편지를 보내자 처음에는 격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편지를 되풀이해 읽게 된다.
-71p
이 장면은 독자의 사회적, 도덕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으로, 다시 읽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에마'를 처음 읽는 독자는 그저 에마의 대사가 웃기고 재미있으며, 지나치게 말이 많은 베이츠 양이 그 정도는 당해도 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오스틴이 놓은 덫에 걸려들어 베이츠 양의 수다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76p
'리리딩'에서 추구하는 바는 말 그대로 책, 특히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다.
다시 읽기를 통해 우리는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애써 무언가를 발견하려 하지 않아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이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특정 단어나 문구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쯤 가면 이런 문장도 나온다.
다시 읽기는 우리가 지금은 무엇을 찾고 있으며,
과거에는 무엇을 찾아 헤맸는 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다.
-279p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지만.
저자가 '선언하듯', 혹은 '단정하듯' 말하고 있어도 독자인 우리는 그게 모두 가설이고 가정임을 안다. 책 어디에도 진실은 확정되지 않는다. 진실만은 말하는 책은 이 지구상에 단 한권도 없다.
팩트와 진술이 버무려져 있다. 다만, 독자인 우리는 그 팩트와 진술을 낱낱이 세고 앉아 있지 않고 그 책을 읽을 때만큼 저자에게 머리를 기댄다.(이것 역시 팩트 아니고 진술)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 많이 기댔다.
저자가 하는 말이 거의 팩트 같고, 아니, 전부 팩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다.
내가 책을 다시 읽을 때, 최소한 할일 없다거나 무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의심을 사서 하고 싶진 않아서다. '다시 읽기'의 효용을 믿고 싶어서다.
저자에 의하면 '다시 읽기'란 이런 것 같다.
어차피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읽고 싶은 것만 본다.
한 권의 책에 쓰인 그 전부의 내용을 다 읽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남는 건, 기억되는 건 일부다.
내가 보고 싶고, 읽고 싶었던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
찾아 헤매는 것과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단히 높다.
책을 한 번, 두 번 더 읽는 가벼운 수고로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안 할 게 뭔가.
나는 이 책부터 다시 읽을 셈이다.
이 책, 다시 읽기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