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을 하루 한편 읽고 있다.

오늘은 읽었다.

소설을 읽고 급기야 눈물 짓고 말았다.

소설 속의 아이에 자신을 겹쳐보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되리.

우린 모두, <>에서 이런 아이가 된다.

농담으로 가득 찬 집에서 어른들의 진담을 기다리는 아이.

아이의 집에는 아이가 응당 받아야 돌봄이 없다

부모는 무심하다. 어머니는 병약하면서 병약을 부인까지 한다

아버지는 력하다

아이의 오른팔이 소매에서 나오지 않았는데도

아버지는 단추를 채우고 

아이를 반쯤 열린 안으로 들어온 얼룩얼룩한 손을 향해 밀고 갔다.

(214p)

아이에게 닿는 손길은 언제나 결핍되거나 부재한다

아이에겐 그래서 집에서의 모든 말은 농담이 된다

자신의 집에서는 모든 농담이었다.

229p

집안의 어른들이 하는 말은 무게를 잃고, 약속이 되지 못한다

농담은 언제나 가볍다. 지켜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허무하니까. 허무해서 가볍다.

아이는 보모인 코닌 부인에게서 농담하지 않을 같은 어른의 기미를 본다.


집 안의 어른들에게서 배운 농담을 했을 때였다.

'해리'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두고 '베벌리'라고 말했을 때.

"이런 우연이! 아까 내가 말했지? 그게 설교자 선생님 이름이라고!"

아이는 보모의 반응이 신기해  요상한 이름을 말한다.

어째, 농담 같지 않다, 어른은.


코닌 부인은 아이를 강가로 데려간다.

강가에서는 설교자가 세례를 베푼다.

아이는 코닌 부인에게 했던 식으로 자기 이름을 베벌리라고 우렁차게 말한다

설교자는 웃지 않았다. 역시. 농담하지 않을 같은 어른이다.

설교자는 웃지 않았다. 그의 앙상한 얼굴은 굳어 있었고 

가느다란 회색 눈에는 색깔 없는 하늘이 비쳤다. 자동차 범퍼의 노인이 요란하게 웃었고, 베벌은 설교자의 옷깃 뒤쪽을 잡았다. 아이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229p

아이는 놀란다

처음으로 자기 말이 농담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자신의 언어가 약속처럼 느껴진 순간

설교자가 내린 세례는 아이에게 약속이 되었다


너는 이제 영원히 달라질 거야. 너는 명단에 들었어.


이에, 아이는 결심한다.

농담으로만 가득한 집을 선택하지 않기로.

좋아, 나는 집에 돌아가고 속으로 거야.

(229p)

약속으로 가득 강으로 가기로.

아이에게 약속된 명단은 아이에겐 이제껏 없던 세상,

구원이요, 희망이 되었다.


아이는 세례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여전히 무심하고 허무한 농담으로 가득 찼다

코닌 부인의 집에서 가져온 책은, 어른들에겐 희귀본이라 가치 있을 뿐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무슨 거짓말을 했니

순간, 아이는 강에서의 신성한 세례의 약속마저 농담으로 오염됨을 느낀다.

언어와 의미 간의 끊임없는 미끄러짐-.

데리다의 '차연(差延)'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슬프고 아린 차연...



 







  













집안의 어른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미끄러짐을 경험한 아이는

급기야 결심한 대로, 강으로 향하기로 한다.

농담 아닌 진지한 약속을 찾기 위한 아이의 순례가 시작된다.


그러나 강은 처음에 그를 거부한다. 물살이 너무 급하다.

아이는 절망해서 속울음을 운다.

이것도 농담이구나. 이것도 농담이야!

(237p)

세상에 진담은 없는 걸까, 약속은 없는 걸까

모든 것이 또다시 오도(誤導) 걸까


그때 아이의 눈에 빨강, 하양 몽둥이를 흔들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거인 돼지 같은 게 보인.


죽음의 전령


그것은 사실, 주유소 노인이었다

아이를 붙잡아 구하려 아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약속의 손길.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농담에 지친 아이 눈에 그것은 공포의 형상으로 닥친다.

오도된 시선 속에서는, 구원의 손길조차 자신을 방해하는 농담의 세력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이의 마지막 선택은 강으로 다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때 강은 달라졌다. 이번에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붙잡았다

강은 아이에게 돌봄의 손이 되었고, 약속의 실체가 되었다

아이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잠시 아이는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몸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자신이 어딘가로 간다는 알았기에

분노와 공포를 버렸다.

237p

아이는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오도' 아닌 '인도' 받는다.

바로, 죽음이라는 종말 앞에서.

(이런 종말은 까뮈의 '이방인'과 닮았다)


오코너의 미학은 바로 아이러니에 있다


아이를 살리고 싶었던 손길은 실패했고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강은 은총의 손길이 되었다

오도는 구원의 손길마저 오해하게 만들고

은총은 가장 몰락적인 형태로 도착한다


이토록이나 불편한 우리 생의 아이러니라니.


오코너의 문학이 주는 불편함-,

그를 추앙하게 되는 가장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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