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와 열한 개의 우물 b-SIDE 1
신우승 지음 / 비(도서출판b)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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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작품을 구성하는 기호만을 소리 내어 읽음을 뜻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이제 막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어린아이가 보르헤스의 소설을 큰 소리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작품 읽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작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을 뜻하며, 그 ‘무언가’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독자가 작품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무언가를 작가의 의도라고 이해한다. 독자는 작품을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독자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의도하는 바를 임의적 개입이나 주관적 판단 없이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포착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예컨대 현진건은 「운수 좋은 날」을 통해 일제 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사는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했다. 이것이 현진건의 의도라고 할 때, 「운수 좋은 날」을 읽고 나서 ‘김 첨지는 가정 폭력범인데? 죽은 아내의 따귀를 때려?’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 반응은 작가의 의도를 포착하지 못한, 따라서 작품을 잘못 읽는 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작가의 의도 파악을 작품 읽기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일은 독서의 능동성을 약화하고, 작품에 대한 건전한 평가를 차단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통한 작품의 다각적 확장을 막지 않는가?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 자신의 입장에서 작품을 새로이 읽는 일은 작가의 의도를 포착하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며, 이렇게 새로이 읽을 때 원래의 작품은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알라딘 책소개 인용문 중에서)


완전히 공감하면서 읽어 내려오다가, 뒤로 가면서 조금 흠...


작가의 의도 파악을 작품 읽기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일은 독서의 능동성을 약화하고, 작품에 대한 건전한 평가를 차단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통한 작품의 다각적 확장을 막지 않는가?


작가의 의도 파악만을 위해 소설을 읽으면 안 될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정말정말 중요하다.


작가가 왜 그런 인물을 내세웠고, 왜 인물들은 별 것도 아닌 것을 놓고

그렇게 힘들어하는지...독자는 그걸 이해해 보려 애써야 한다.


그걸 다 모아 놓으면 결국, '작가의 의도'로 모아진다.


작가의 의도에는 그 소설을 쓰고자 결심하는 첫마음이 담겼고,

그 소설을 끝내 써나가는 소신이 담겼고,

그 소설을 종내는 완성하는 고집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바로 '이유'. 

그 소설이 쓰여져야 하는 이유. 


나는 소설 읽기에서 그 일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만을 위해 읽지는 않지만, 그게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는 믿는다.


그것만을 위해 읽는다,와

그걸 핵심으로 삼는다,는 아주 많이 다른 말이다.


저자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면

[독서의 능동성을 약화하고, 작품에 대한 건전한 평가를 차단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통한 작품의 다각적 확장을 막지 않는가?]하고 우려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공감도 간다. 


작가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 자신의 입장에서 작품을 새로이 읽는 일은 작가의 의도를 포착하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며, 이렇게 새로이 읽을 때 원래의 작품은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말도 사실, 아주 중요하다.

보르헤스의 소설에 독자 나름의 입장에서 작품을 새로이 읽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말 그대로, 원래의 작품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다.


그 소설은 원래의 작품보다 새로운 작품으로 꼭 거듭나야 할까?


보르헤스의 소설 한 편이 품은 힘을 백분의 일이라도,

독자로서 나눠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늘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소설이 나를 관통해, 내 나름의 입장에서 새로이 읽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길...


그다지 원치 않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도 알고, 그게 의미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나는 그걸 그렇게 바라면서 소설을 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도 내 책상에 소설 한 권이 올려져 있다.


댈러웨이 부인


나는 댈러웨이 부인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먼저 알고 싶다.

작가의 생각에 닿고 싶다.


소설을 읽으며 왜 내 나름의 입장과 생각을 펼치기엔 

소설이 내겐 너무 높고 크다.


인물의 소소한 감정이나 상황과 사건에 대한 촌평은 물론, 끊임없이 하면서 읽는다.


그러나 소설 '작품' 앞에서 내 나름의 입장과 생각을 펼쳐놓으며 

'작품에 대한 건전한 평가를 차단하'지 않으려 노력할 생각은 별로 없다.


나는 그럼 깜냥이 못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저,

작가의 의도를 백만분의 일이라도 파악할 수 있다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할 일이니까.


(그 외 소설 독법과 관련해 좋은 문장도 많고,

보르헤스의 단편을 풀어준다니~~카트에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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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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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소설의 문장마다 기억하긴 힘들다.

온갖 미디어에 중뿔나게 소개되는 명문장조차 단 한 줄도 외우기 힘들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냥, 소설의 줄거리다.


그래도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어디 가서 소설의 몇 문장-명문장 아니고, 몇 문장-은 외워서 읊는 척도 하고 해야 할 것 같아

외우려고 해 봤다. 머리가 시멘트처럼 굳었나보다. 안 된다.


그래서 외우기를 포기하고 매달린 게 밑줄이다.

밑줄을 긋기 위해 온갖 펜을 동원했다. 


(요즘 내 독서의 밑줄긋기를 맡아주기 위해 엄선된 애들)


펜을 동원하다 보니 펜에 관해 쫌 알게 되었다.

펜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팬 말고, 펜-.


내 책상을 볼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문구점이냐, 필기구 공장 차렸냐,

하는 말들을 잊지 않고 한다. 난 칭찬으로 듣는다.


뭔 이야길 하다가 펜으로 흘렀나...


아, 밑줄긋기.


문장을 외우지 못해 밑줄을 긋다가 위기에 봉착했다.

어느 책의 어디에 밑줄을 그어놨는지 당췌 알 길이...


책을 일일이 열어봐야만 그어놓은 밑줄을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또 짱구를 굴렸고, 그래서 찾은 방법이 '머리띠' 끼우기다.


책갈피 위에 '머리띠'를 끼우듯  head tab을 하나 붙이는 거다.


끄트머리에 메모를 적어서. 

이렇게.



이게 얼마나 유효한지 모른다.


뭘 찾아야 하는데 어떤 책에서 봤더라???


그러면 책꽂이로 달려가 이 '머리띠'를 훑으면 된다아!!


<미겔 스트리트>에서 그렇게 머리띠를 끼워놓은 문장이다.


내가 미겔 스트리트로 돌아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해트였다.

그는 팔에 신문 한 부를 끼로 평발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카페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손짓을 하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네가 이맘때쯤 하늘 위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실망했다. 해트가 이렇게 냉랭하게 맞아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영영 이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도 모든 것은 이전과 같았고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던 것이다.


289p)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가 어디 다른 나라로 떠났다가 돌아온 게 아니다.
어디 다른 나라(런던)로 가려고 공항으로 갔는데 비행기가 6시간 연착돼서
다시 미겔 스트리트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엄청 민망한...

나도 이런 적 있다.

나도 '나'와 꽤 비슷한 상황이었던 때.
다른 나라로 갈 때.

가족, 친구, 친척 다 모여 울고불고 콧물 짜고 했더랬다.
나는 그들 곁에 내가 있던 자리가 받을 타격을 상상하며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더랬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여권을 빼놓고 택시를 탔고,
나는 곧 죽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택시를 돌렸다.

이미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고 그랬는데,
내가 다시 돌아가자 내 자리는 이미 거기 없었다.

내가 사라지기 직전까지는 내 사라짐에 대해 하늘 무너지던 사람들이
나의 귀환에 "너, 왜 또 왔어?" 였다.

두번째 이별은 밖에 나와 보지도 않드라...

예전에 지방으로 전보나서 떠나는 직장 동료와 뜨거운 작별 회식자리에서
그 동료가 먼저 뜰 때도 그랬다.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눈물의 허그와 울먹임.

그러고 먼저 나간 그 동료가 10분 쯤 우산을 두고 왔다며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린 어깨동무를 하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부르느라 
그 동료가 왔다 간 줄도 몰랐다.

나중에 우산이 있다가 없어진 걸 알고 알았다. 

나는 실망했다. 해트가 이렇게 냉랭하게 맞아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영영 이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도 모든 것은 이전과 같았고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던 것이다.


289p)


내가 이 문장을 외우고 밑줄 긋고 머리띠를 하고 난리치는 건

이 문장 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얼마나 실망했던지.

나는 영영 그곳을 떠나기 위해 가버렸는데 모든 건 이전과 같았다.

나의 부재를 가리키는 건, 끔찍하리만치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나를, 50여년 전에 쓰여진 문장 속에서 만난다.

내가 언어화하지 못한 나, 내 마음, 내 처지, 나의 무엇-.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태어난 소설가에게 기댄다.

나의 언어를 좀 찾아달라고.


그게,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가진 위력적인 힘이다.


내게 기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언어를 좀 찾아줘어어-.


내가 오늘 단 한줄의 소설도 쓰지 못한 이유.

내 언어부터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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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 1943~1983 인터뷰집
윤진 옮김, 로베르 브레송 인터뷰이 / 고트(goat)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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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the ideas, but so that people find them. The most important will be the most hidden.

아이디어는 숨겨두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세요.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가장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브레송이 한 말이다.


이건 단지 그가 천착한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소설에도 더할 수 없이 적절하게 적용된다.


소설을 쓰다 보면 인물의 감정과 처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강박에 눌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세히, 상세히 묘사하고 풀어내려 든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진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좋은 소설이나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독자와 관객을

감응시킬 수 없다. 독자와 관객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작가와 감독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더 많은 걸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그들이다.


소설은 문장으로 다 보여주면 안 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무언가가 ‘피어나고 자라나게’ 해야 한다. 


감정을 강요하면 큰일난다. 망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정말 골백번도 더 들었다.

실제로 쓸 때, 그게 정말 너무 너무 어려워서 그렇지.


작가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야 한다.

결핍을 감추고, 연결을 감추고, 장면을 감춰야 한다.


그래서 생긴 여백과 사이에 무언가가 들어찬다.


긴장

의미

감응


독자는 소설을 침묵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오히려.


신춘문예나 문학 공모전에서 그 많은 소설을 심사위원이 어떻게 다 읽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들어서도 알고, 겪어서도 안다.


다 읽지 못한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예심에서 걸러지고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이야 꼼꼼히 보겠지만.


그들은 보이는 텍스트보다 보이지 않는 텍스트를 더 많이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직아이'처럼 텍스트의 밑면을 응시하며 거기서 부양해 올라와야 할 텍스트를 자동으로,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그래서 그것들이 적절히 표면으로 떠올랐는지, 그 적절한 타이밍과 분량과 정도를 포착한다.(나는 심사위원이 아니니 들은 소리다)


즉, 브레송하고도 논조가 통하는 것 같은데,

'예술'에서 좋은 작품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잘 말하지 않는데 성공한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한 권을 읽었는데 책 무게 외에 손에 묵직하게 뭔가 남는 게 느껴지는 

책이 있다. 농담 아니고 있다. 뭐, 가슴이 그득해진다...는 오글거리는 멘트는 하기 멋쩍다.


진짜로 손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존 밴빌의 <오래된 빛>이 그랬다.

이건 디지털로 책을 읽었을 때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레송의 철학은 소설가에게 ‘신뢰하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를 믿고, 그래서 텍스트의 여백을 믿는 것-.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배치하고 충돌시키고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만들어지는 '침묵' 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두는가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 부재의 미학 속에서 진실은 더 또렷해진다-.


소설가들의 산문집, 작법서, 또 스승님한테서도 골백번 들은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게 됐다.


사운드트랙이 분위기를 창조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는 관객이 눈을 감을 때 보이는 것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서 그의 영화는 비로소 완결되며, 그의 영화와 말은 우리 관객 자신에게도 참으로 자유로운 여정이 되고 맙니다.


-출판사 소개글 중에서

A sigh, a silence, a word, a sentence, a din, a hand, the whole of your model, his face, in repose, in movement, in profile, full face, an immense view, a restricted space…Each thing exactly in its place: your only resources.

한숨, 침묵, 단어, 문장, 소음, 손, 모델의 전체 얼굴, 정지한 얼굴, 움직이는 얼굴, 옆모습, 얼굴 전체, 광활한 풍경, 제한된 공간... 

각 사물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유일한 자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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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2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민아님 리뷰 정말 잘 쓰시네요. 정말 이책 읽어보고 싶어져요. 왠지 모르게 민아님의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감정을 강요하지 말라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신간이네요. ㅋ

젤소민아 2025-06-29 12:51   좋아요 1 | URL
앗, 스텔라님, 어디서 쓸쓸함이 느껴졌는지요~~~. 속내를 보인 것 같아 부끄럽지만, 쓸쓸한 거 맞을 거예요. 글을 쓴다는 작업이 좀 쓸쓸하거든요. 이 좋은 주말, 내내 책상에 붙들려 있었어요. 만 이틀만에 바깥을 나가니 가을날씨처럼 선선한 거 있죠. 그렇게 덥다가~~. 브레송 감독은 말의 귀재기도 한 것 같아요. 창작과 예술에 영양제 같은 좋은 말씀이 너무 많네요~. 창작과 예술을 하는 사람/향유하는 사람 모두에게요. 더위에 건강 조심하셔요, 스텔라님!

페넬로페 2025-07-04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말씀처럼 매번 젤소민아님의 글에 감명 받습니다. 글을 잘 쓰신다는 것도 팍팍 느끼고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저도 영화나 책이 모든 것을 다 주는 것보다 여백과 생략, 침묵을 좋아합니다.

젤소민아 2025-07-05 01:58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도 이달이 리뷰 당선작 되셨지요? 저도 읽은 책이라 더 반가웠어요. 자주 교류해요~.
 
본심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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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등 문학 공모전에서 낙선한 작품으로 묶은 소설집이란다. 그러나 ‘실패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심사평이 같이 실렸다는데 그렇다면 결선이나 최종경합에 오른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범작은 넘는. 그 틈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당선작으로부터 배울 것보다 많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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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6
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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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방인>이란 걸출한 제목을 포기하다니. 그 용기에 일단 박수. 이안,이라...다른 사람이자 두 명의 사람...역자 이름은 또 ‘이기언‘. 묘하게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날 듯한 느낌이 든다. <이방인>과 한몸인 것만 같은 김화영 역자님 번역과 대조하며 읽는 재미를 누려보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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