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ㅣ 시공아트 18
수지 개블릭 지음, 천수원 옮김 / 시공아트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Oil on canvas


오늘 뮤지엄 버디들과 MoMA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그림.

단연코 고흐다. 

그중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아무것도 가로막힌 존재 없이

그림과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 좀 기다려야 했다.


여러 번 마주한 그림이지만 그때마다 설렌다.

원본의 힘 아닐까 싶다.

그림이 그려진 시간이 1889년 6월. 


137년의 시공간을 넘어, 

비록 찰나적으로나마 

고흐의 곁을 스치는 것 같은 상상을 하며 남몰래 벅찼다. 


스스로 들어간 요양원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그린 그림이라지.

고흐의 시야에 그림 속 마을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 속 마을 정경인 셈이다. 


나중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이 그림을 포함해 

이런 내용을 전한다. 


Van Gogh described The Starry Night as an exaggera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arrangement. He was aware that he had moved away from a realistic representation of nature by exaggerating and distorting its forms. However, he did not necessarily consider this a failure. Rather, he was exploring how simplification and exaggeration could express the essential character of nature more powerfully.

(원문에서 영역된 내용;

https://vangoghletters.org/vg/letters/let805/letter.html?utm_source=chatgpt.com


exaggera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arrangement.

배치/구성의 관점에서 본 과장(정도 되려나)


그렇다면 저 그림 속 자연은

실제의 자연이 아니라 고흐를 통과한 자연이라 해야겠다.


미메시스.

현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재배치하기.


고흐가 실제 자연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구성상의 과장’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자연을 만들었듯,
소설가 역시 현실을 선택하고 생략하고 변주하고 재배치해서
현실보다 더 선명한 ‘소설적 현실’을 만든다.


현실과 미메시스된 현실 사이에 생겨난 그 ‘차이’에서 걸작이 빚어지는 셈이고.


사실, 뮤지엄 내 전시된 숱한 걸작들은 보면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그대로 베껴 그리는 게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한 번 만들어진 예술품은 그 '한 번'에 불멸의 가치가 있는 거겠다.

그 '한 번'을 불멸의 가치로 만드는 게 과연 뭘까.


고흐가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를 이용했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그 ‘차이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만든 것 같다.


MoMA에서 본 신기한 장면.


고흐 그림 앞에서는 사람들이 몇 겹으로 둘러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앞에서는 턱을 괴든, 고개를 기울이든,

짝다리를 하고 서 있다. 


아마 나하고 비슷한 생각들을 하면서.

도대체 이 사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원본 사진을 못 찍었다. 찍을 걸. 이건 '나무위키'에서 퍼온 사진/연인들(Les Amants), 1928)


르네 마그리트는 '상징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에 무엇이 숨어 있고 어떤 의미를 품었는지 쪼개 보는 걸 거부했다고.

정작 자신은 상징을 갖다 퍼부었으면서. 


그래서 나는,

두 사람 얼굴을 덮은 천의 의미가 어쩌고저쩌고, 는 생각하지 않고 

보려고 기를 썼다.

(혹시, 천을 벗기면 사람 얼굴 아닌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해서 못살겠다.

그래서 책을 주문했다.


르네 마그리트


현재 판매중인 르네 마그리트 관련 책은 이것뿐이다. 

 

소설을 더 소설답게 읽기 위해, 더 소설답게 쓰기 위해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그림 감상을 자주 하려 기쓰는 편이다. 


생각해 보면, 소설과 그림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현실을 얼마나 닮게 재현할 것인가가 아니라, 

현실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 

우리가 알던 현실을 어떻게 새롭게 보게 할 것인가. 

인간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아는 이 현실을 새롭게 보지 않고

우린, 어떻게 살아낼 수가 있을까.


이 현실 딱 그대로, 딱 요만큼만, 딱 이런 식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이래도 너무 괜찮다, 너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로또 맞은 것보다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나는 예술 앞에 서서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예술은 혹시, 

지금 이 현실로는 살아내기 힘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예술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현실과 나 사이의 관계를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질문이다.

오늘도 이러고 살아낼 수 있을까, 열 세번 정도 자문했으니까.


르네 마그리트를 읽고 나면 

이 질문이 좀더 선명해질 것 같다는 기대를 한다. 

답까지는 감히 바라지도 못하겠다.

그건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이란 걸 기특하게도 알겠다.


그는 현실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것들을 지독하게도 낯선 관계 속에 다시 놓는다. 


르네 마그리트를 읽고 나서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오히려 진짜 현실을 놓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


소설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무엇보다, 이 슬픔과 아픔이 진짜 현실로 들어가는 입구길 바라기에

이대로는 도저히 살아내지 못할 것 같은 미메시스 전의 현실을 빠져나가는 출구길 바라기에.


나는 그런 '경로'에 있을 뿐이라고 자신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6-09-23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생각보다 원본의 힘이 약했어요. 그러니까 인쇄본을 보든 원본을 보든 감흥의 차이가 딱히 없고, 무엇을 보든 처음 볼 때 제일 인상이 강하고 중요했어요. ^^
고흐의 그림은 인쇄본과 실제의 차이가 좀 많이 나죠. ㅎㅎ
저도 르네 마그리트 막 궁금해서 책 찾다가 이 책 샀는데, 이게 꽤 오래전인데 아직도 딱히 국내에 르네 마그리트 책이 없다니 그건 좀 안타깝네요.

젤소민아 2026-09-23 21:18   좋아요 1 | URL
오~~저와 비슷한 느낌이셨어요~저는 오죽하면 MoMA에 걸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사본인 줄 알...^^ 별 다름이 없어서겠죠. 그만큼 그의 그림은 그림 자체보다 ‘구성‘이 중요한 게 아닌지...거기에 혼이 빠져 다른 건 안 들어오는 듯한 느낌요. 한국에서도 이분 그림 인기 정말 많은데 관련 책은 정말 없더군요. 빨리 나오길 고대합니다~바람돌이님, 좋은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