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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문학 - 철학이 사랑한 사진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
이광수 지음 / 알렙 / 2015년 1월
평점 :
사진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사진'과 뗄 수 없는 수잔 손택, 벤야민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밑줄을 긋다보면 모든 문장에 긋게 되는 책.
나는 이런 책은,
두권씩 산다.
하나는 밑줄 그으며 밑줄 그은 내용을 내 머리 속에 저장하는 용도,
다른 하나는 내 책꽂이 한 공간에 버젓하게 위치시키려는 용도.
고이, 온전한 상태로.
그 정도로 좋다.
아직 초반밖에 못 읽었는데도 그렇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중략) 달리 말하면 부재의 증명이 되기도 한다.
사진가가 실재를 보면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틀 안에 포함하고
다른 부분은 배제시켜 버림으로써 실재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왜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15p)
이들은 문학을 함의한, 둔중한 문장이다.
사진가,를 '소설가'로 바꾸어보자.
소설가가 실제를 보면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소설 안에 포함하고 다른 부분은 배제시켜 버림으로써 실재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왜곡'(긍정적 의미로는, '눈뜸'같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가.
우리는 무언가에 '눈뜸'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응시하려 한다.
그런데 저자는 사진으로 '배제'를 제안한다.
소설 속에 표현되어 포함된 것은
그 많은 현상 중에서 무언가를 배제한 결과.
이런 '배제'와 연관된 다른 책의 글귀를 보자.
인간 자체까지도 포함한 하나하나의 '물체'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일들을 포함하는데, 그것이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면, 그렇게 살아온 생활은 인간에게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소설의 방법/오에 겐자부로/소화/2003] 15p
소설의 기능이나 의의에 관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지론이다.
세상의 모든 의미있는 것들은 인간의 의식에 포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원래 있었는데 없던 것이 된다.
의미있는 것들, 혹은 의미없는 것들조차에도
의미를 찾고 입히고 더하는 것이 기쁜 '왜곡'일 거다.
그래야 인간의 의식에 포착될 수 있을 테다.
그렇지,
그게 '포함'이 아니라 '배제'에 의해서 수월해질 수 있는 거지.
아니, 더 효과적이거나 정확할 수 있는 거지.
뒤통수를 맞은 듯 기분좋게 뻐근할 지경이다.
카메라의 프레임(틀)안에 넣음으로써 창조되는 가치,
동시에 배제시킴으로써
어떤 존재의 '왜곡', 즉 '다르게 보기' 같은 의미있는 행위가 가능해지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하고 대단히 이기적인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그 무엇들.
거기서 무엇을 배제하면,
시야에 들어온 그 무엇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
그럴 거 같다.
알고 있는 것도 누군가가 누군가의 언어로 제시해 주면, 그제야 잡힌다.
그걸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것은,
다 아는 글자이고, 모르는 내용도 아닌데
굉장히 새로운 걸 대하는 느낌.
저자의 언어가 새롭기 때문일 거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저작이니
사진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보기'에 관한 것이다.
기존과 달리 보기를 하고 싶다면,
인문학적인 보기를 하고 싶다면,
두 권 정도는 소장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