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책 모리스 블랑쇼 선집 3
모리스 블랑쇼 지음, 심세광 옮김 / 그린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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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 <도래할 책>을 (뒤늦게) 구입해서 보고 있다. 매혹적인 책이다.

 

 

어떤 책들은 수많은 다른 책 읽기를 자극한다. 한 권의 책 안에 수십, 수백 권의 책들을 포함하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거야 말로 정말이지 '막막한' 책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 경우 처음으로 그런 자극을 받은 책은 마샬 버먼의 <현대성의 경험>이었다. (마르크스, 보들레르, 괴테의 <파우스트>, 도스토옙스키, 미국 시인들이 다뤄진다.) 그리고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과 프랑코 모레티의 <근대의 서사시>가 그랬다. (전자에서는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 스탕달의 <적과 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다뤄지고; 후자에서는 <파우스트>, <모비 딕>,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등이 다뤄진다.) 아 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도 빼놓을 수 없겠다. (최근에 이 책을 다시 들춰보다가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가 언급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다.)

 

'막막한 책'의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모든 것은 빛난다>와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있다. 전자의 도움을 받아 <일리아스>와 <모비 딕>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또한 <신곡>을 한 번 맘 먹고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품게 해주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엔 플로베르와 헨리 제임스를 다시 찬찬히 읽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해주었다. (한편 <도래할 책>에서도 헨리 제임스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서 반가웠다.)

 

요즘 틈날 때마다 나름의 정리를 해보기 위해 보고 있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도 다른 책 읽기를 자극하는 메타-북이라 할 수 있겠다. (카뮈가 책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키르케고르를 읽고 싶은 마음까지는 솔직히 들지 않았지만, 책 말미에 실린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 독후감은 무척 흥미롭고 자극적이다. 카뮈의 관점 및 해석과 나의 생각과 느낌을 비교하면서 '도(스토옙스키) 선생'과 '카(프카) 청년'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도래할 책>은 제목이 뭔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읽어도 무슨 말일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읽기를 미뤄왔는데, 막상 읽어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블랑쇼의 무질에 대한 언급은 카프카 수용 태도와도 겹쳐지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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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거장들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연순.박희석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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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당신 외에 더 유익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당신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하고 레거는 말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지요,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일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바로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해버렸습니다.

- 토마스 베른하르트, <옛 거장들>, 143.

 

 

베른하르트는 작중 인물 레거의 입을 빌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나는 저 대목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저 대목이 계속 기억에 남아 반복해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베른하르트의 의도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뻔뻔스럽다는 느낌은 전적으로 자기 감정이다. 곧 자의식의 감옥에 감정을 가둬두는 것이다. 듣는 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뻔스러움을 무릅쓰고 입 밖에 꺼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일'이 상대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저 대목이 소설 <옛 거장들>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어제 폭풍 소나타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오늘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라고 나는 오늘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곧 이미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정말 무의미하듯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무의미한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합니다 하고 레거는 말했다. 모든 이야기가 조만간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능한 한 최고의 열정으로 확신에 차 말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까지는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침묵하면 숨이 막혀 죽습니다 하고 레거는 말했다.

 

- 토마스 베른하르트, <옛 거장들>, 141.

 

 

 

 

 

"우리는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까지는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침묵하면 숨이 막혀 죽습니다." 정말 그러하다. 말을 줄여야겠다고 항상 다짐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말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정신없는 헛소리이거나 상대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기 위한 아첨이거나, 내가 하는 말이 헛소리이고 아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 스스로와 대화 상대자, 그리고 나아가 세상 전체를 조소하는 말이거나 하기 때문이다.(아니면 세상 전체가 아니라 세상의 권력자들만을 조소하는 것으로 한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참으로 안전한(=같잖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매 순간 하더라도 결국은 지껄이게 되고 만다. 바로 그 이유를 베른하르트의 저 문장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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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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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을 마시자 마음속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길고 육중한 프레디의 시신 밑에 폴로 코트가 구겨져 있었지만, 시신을 내려다보던 톰은 코트를 똑바로 펴 줄 기운도 마음도 없었다. 톰은 짜증이 났다. 그의 죽음이 얼마나 슬프고, 서툴고, 어리석고, 위험하고, 불필요한가! 그리고 프레디에게는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부당한가! 물론 프레디를 싫어할 수도 있었다. 디키는 분명 그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었고,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한 명을 성적인 일탈이라는 이유로 조롱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친구였다. 톰은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났다. 성은 무엇이고, 일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프레디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고 씁쓸하게 말했다.
프레디 마일즈, 넌 너 자신의 더러운 생각에 희생된 거야.”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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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 대목에서 우리는 리플리가 프레디를 죽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사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1999)에서는 각각 맷 데이먼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역할을 맡았다. 영화와 소설은 디테일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짜증이 났다"는 표현이다. 리플리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데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게 아니라, 그게 불필요하고 서투른 살인이었다는 생각에 '짜증'을 낸다. 물론 프레디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이후 곧바로 합리화할 빌미를 찾아낸다. “친구를 조롱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친구니, 죽을 만도 하지”라는 논리다.


이어서 리플리가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는 것, 나아가 그것을 쪼개서 그 본질적 의미를 따져보는 건 무척 의미심장하다. 성이란 무엇이며, 일탈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알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따질만한 문제도 아니다. 프레디가 디키를 놀린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과연 죽을만한 이유가 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문제다.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도 프레디가 쓴 게 아니고, 리플리가 방금 생각 중에 떠올린 표현에 불과하다. 그래서 톰은 웃는다. 자신의 생각이 일견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실은 웃기는 자기합리화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성은 무엇이고, 일탈은 무엇인가?”하는, 눈앞의 상황과 어긋나는 이 '한가한 생각'은 ‘자신이 지금 사람을 죽였다’는 사태를 회피하고 호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생각이다. 이렇게 '한가한 생각'을 떠올림으로써 그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사람을 죽여놓고 그 시체 앞에서 이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리플리라는 인물의 핵심이자 그가 지닌 재능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그는 연기의 달인답게 한 마디 멋진 대사를 날림으로써 자기정당화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마도 자기 확신에 찬 단호한 어조로 말했을 것이다.) “프레디 마일즈, 넌 너 자신의 더러운 생각에 희생된 거야.”


자신이 저지른 범죄 앞에서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정신분열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 이게 단지 리플리라는 예외적 개인의 재능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성적인 일탈'이라는 개념적 표현을 떠올리고, 그러한 '더러운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남을 비난, 혐오, 경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자신의 행동은 합리화하여 차분함과 평온을 되찾는 리플리의 이 자기합리화 프로세스는 뭔가 굉장히 익숙해서 공감이 되는 한편 섬뜩한데, 어쩌면 이것은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정치인이나 재벌 3세지만) 이 사회에서 정신분열을 겪지 않고 정상과 상식의 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사고 과정이 아닐까? 



20150905
#막독15기 #상남자들 / 네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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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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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독서 모임을 하느라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를 한 3년여 만에 다시 읽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인물은 시드니 카턴이 아니라 은행원 자르비스 로리 씨였다. 보통 숫자를 다루거나 계산에 능한 인물, 합리성의 화신, 규범과 규칙의 화신 같은 인물들은 디킨스 작품에서는 엄청난 까임의 대상이 되는데, 자르비스 로리 씨는 앞서 언급한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인물인데도 풍자 대상이 되지 않고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흥미로왔다.

 

뼛속까지 은행원인 자르비스 로리 씨. 인간 관계보다는 은행의 업무를 최우선시 하는 인물로서 사랑이나 결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늙어버린 인물이다. 그의 말버릇은 "이것은 업무일 뿐입니다, 아가씨." 그런데 그는 은행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 고객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앙시앵 레짐의 폭정''혁명의 맹목적 폭력', 이 두 가지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물리적, 정신적 위기를 겪은 사람과 그의 가족을 전심전력으로 보살피게 되고 만다. 시드니 카턴처럼 한 순간 폭발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진 않지만,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가족들 곁에 있으면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어떤 한 은행원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다보니 '사람'을 구하게 된다.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랄까, 논리적으로도 필연성을 띤 귀결이랄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에서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할 때,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하는 '업무'들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행동할 때, 뭐랄까...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은 좀더 아름다운 곳, 살 만한 곳... 뭔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멋진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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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는 펭귄클래식 말고도 창비(2014)와 홍익출판사(2015)에서도 출간이 되어 있는데, 시간 부족으로 각 판본을 비교하지 못한 채로 읽은 게 아쉽다. 애써 구해놓고서도 말이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증이 이는 대목들이 꽤 있었는데, 바로 찾아볼 여유가 없어서 넘어갔더니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또 이 작품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디킨스가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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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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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2015)을 한 달음에 읽었다.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이나 그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읽어볼만하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이면의 도시>도 인포그래픽 형태로 정리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좀더 심도 있게 이 주제를 다루자면, 벤야민의 책들도 참고해야 하고 푸코의 책들도 참고해야겠지만 그러기엔 일단 역량이 안 된다. 독일 철학 전문가이자 벤야민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수잔 벅-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벤야민의 논의를 정리한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정도는 한 번 마음 굳게 먹고 도전해볼만하다. 그램 질로크의 책은 노명우가 번역한 책인데, 그가 쓴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 등과 함께 비교적 가벼운 마음 가짐으로 읽을 수 있다.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 안 풍경>도 함께 봄직하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도시공학, 지리학(지리정치학) 전공자인 임동근 교수의 대담집이다. 2013년에 팟캐스트로 방송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박사논문에 실린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 정리한 것이라는데, 논문은 아직 단행본으로 출간이 안 되어있다. 출간이 기다려진다. (지도와 표가 더 많이, 알아볼 수 있는 해상도로 실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정치, 행정이라고 부르는,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실감을 못하는 영역을 일상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게 이 책의 큰 장점. 가령 이 책에서는 물 문제나 똥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서울이 거대 도시가 되면서(즉 메트로폴리스화 되면서) 중요하게 처리해야 했던 문제들이다. 이 책은 물 확보를 둘러싼 갈등, 전기세를 둘러싼 갈등, 대형 주거 공간인 아파트 관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행정적 결정들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왜 선거를 잘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ㅋ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저 선거만 잘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아파트에 대해 서술한 대목. 지금이야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이자 내 집 마련 플랜의 로망이자 최종 목적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파트에 대한 판타지가 상승한 것은 70년대 후반-80년대인데, 이때 정부에서 조장한 중산층 이데올로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80년대에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전두환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아파트 붐은 없었고, 대신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시기는 '하숙의 시대'이기도 해서 서울로 몰려온 지방 인구 중 상당수가 하숙을 하거나 하숙하는 친구 집에서 안면몰수하고 얹혀 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런 서술을 읽으면 아 옛날엔 정말 그랬었지... 하고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

 

아파트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처음에 아파트가 건설되었을 때, 그러니까 60년대 초에는 서민들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서 지어졌다고 한다. '시민아파트'라는 개념이었는데, 나중에 주택공사가 이런 개념을 잇는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실은 '주공'은 서민보다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더 많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SH나 LH도 마찬가지라고.

 

'서민'들을 수용하려고 아파트를 지어 제공하려는 발상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시기 아파트는 그냥 골조만 세워놓고 거기 들어가서 살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벽지도 거주민이 직접 발라야 했고, 관리사무소 같은 것도 없어서 생활을 하다 새기는 문제는 모두 직접 해결해야 했다고. 건물만 지어놓고 팔아서 회사와 정부가 각자 이윤 나눠먹고 손 터는 이른바 '먹튀'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파트를 지어놓은 후에 관리까지 해준다는 개념은 삼성이 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삼성은 건설 자체보다는 관리, 마케팅, 브랜딩에 초점을 두었고, 나중에는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 '래미안'을 만들어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하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고, 초창기의 서민 아파트에서는 그냥 지어져 있는대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생활 문제가 발생했는데, '장독'을 둘러싼 문제나 '물 공급'을 둘러싼 문제가 큰 문제였다고 한다. 이때는 장을 사다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장독'을 둘 공간이 집집마다 꼭 있어야 했는데, 아파트에는 단독주택처럼 마당도 없고, 대문 위에 만들어진 장독 전용 공간도 없어서 문제가 많았다고. 또 하나는 당시 서민들은 아이들을 길에서 길렀는데, '길'이 '아파트 복도'로 바뀐 셈이 되면서, 아이들이 추락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파트 이후로 등장한 주거 공간인 다세대, 다가구 주택(a.k.a 빌라), 90년대 등장한 오피스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는 '누진전기세'를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서울 인구의 50% 이상이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 살고 있는데, (아파트 연구는 많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오피스텔은 생산직과 사무직이 분리되고 본사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는데, 공급 과잉이 되어서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급하게 용도 변경한 경우라고 한다. 사생활 노출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어서 유흥업 종사자, (밤샘 작업 많이 하는) 공대생들이 많이 살았다고. 그리고 이때 오피스텔의 매입 주체는 주로 사채없자나 폭력조직이었다고 한다.

 

임대료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임금이 하락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임대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집 값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바우처(=직접 지원)의 형태로 정부의 임대료 지원이 있을 거란 이야기. 이건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고. 그 조만간이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세계적 흐름은 그렇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대기업이 (이미 공급 과잉이 된 아파트 시장을 버리고) 임대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재벌 3세들은 이미 임대업에 활발히 진출해 있는 듯하고(그래서 기존 상인들과 큰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지하철 등에서 볼 수 있는 '직방' 같은 앱을 보더라도, 후자는 슬슬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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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는데, 워낙 많아서 다 할 수는 없고, 내가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는 주거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 그건 내가 사는 공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단순하게 말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맛있는 것을 해서 나눠먹을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삭막한 동네가 아니라 (애매한 표현이지만) 살기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집에 혼자 처박혀서도 잘 놀 것 같은 캐릭터지만, 나에게는 어울림의 공간이 필요하다. 뭐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나한테는 그런 욕망이 좀더 강하게 있는 것 같다. 그런 공간을 지금 갖고 있지 못하고, 앞으로 갖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하여튼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내가 고층 아파트를 싫어한다는 것. 주거 형태로서도 싫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도 싫다. 땅에서 멀어지고, 하늘을 시야에서 가리기 때문이다. 되게 낭만적인 표현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런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땅과 하늘이 배제되기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인 불편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다.

 

70년대 중반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호 주거 유형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5%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파트를 밀어붙인 이유는 주택 문제를 일거에 해소한다는 명분을 쉽게 갖다 붙일 수 있었고, 급속하게 대규모 단지 조성이 가능해서였다고. 즉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부와 회사가 깔끔하게 먹튀를 할 수 있는 게 아파트였다고.

 

인식도 안 좋고, 잘 안 팔리지도 않는 아파트를 시민들에게 팔아먹기 위한 방법으로 청약 통장, 분양 제도를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선분양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것인데, 이것의 작동방식을 보면 참 이상하지만 동시에 매우 섬세한 방식이라고 한다.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파트가 적합한 주거 형태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이게 별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내가 이런류의 책에 관심을 갖는 마지막 이유. 내겐 내가 지금 어떤 환경, 어떤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를 거시적, 총체적 시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발현되는 자신의 욕망과 로망, (또 그것이 충족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불만과 절망감, 이런 것들과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감당하는 건 무척 버거운 일이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못 본 체 외면 또는 체념하고 넘어가거나 절제의 미를 발휘하여 지긋이 억누르는 수가 있겠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욕망, 로망, 불만, 절망감 같은 것들이 어떤 환경, 어떤 흐름 속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거시적 시점에서 한번 조망해보게 되는 셈인데, 그 조망 행위 자체가 어떤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물론 없다. 크게 보면 잘난 척이고 자기 만족일 뿐이다. (모든 지식 추구 행위에는 그런 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사실을 외면하고 사실 앞에서 체념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로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면이 있다. 그 역시 물론 일시적으로만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각과 태도를 가져보는 것과 그래보지 못한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게 바로 (돈 한 푼 안 생기지만) 책을 읽는 이유일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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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을 때 의식주 생활의 측면에서 의외의 재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앞으로 한국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주거 공간과 사는 동네를(그리고 그것이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인간 관계, 행동 결정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을) 눈여겨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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