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활 - 2호 - 2013 10-11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인간이 찍었던 모든 사진들 중, 그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유통되는 사진은 오직 이것 한 장뿐이다."

 

홍세화 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종합 인문주의 정치 비평지'를 표방하는 <말과 활> 2호에서 무척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습니다. <체 게바라 사진의 기구하고 고달픈 오십 년>(김현호, 사진비평가)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먼산?) 체 게바라의 사진(혹은 그것의 팝 아트 버전 이미지)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라는 그의 말(로 간주되는 문구)과 더불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2000년에 실천문학사에서 낸 붉은색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은 체(Che)의 이미지와 저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됐고 큰 반향을 일으켰죠. 얼마 안 가 <혁명을 팝니다>와 같은 책들이 나와 혁명의 이상과 혁명가의 이미지를 제멋대로 전유하고 맥락 없이 소비하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체의 사진은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종과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면 이렇습니다.

 

 

"이 사진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괴이하다. '게릴레로 에로이코'(체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가 사진에 붙인 이름, '영웅 게릴라'란 뜻)는 엄청난 수의 티셔츠와 포스터로 제작된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체 게바라 티셔츠는 여전히 잘 팔린다. 동티모르의 이슬람 원리주의 게릴라들과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체 게베라 티셔츠를 입는다.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나 생전의 우고 차베스도 마찬가지였다.

 

얄궂게도 가자 지구 서안의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들과 이스라엘 축구팀인 FC텔아비브 서포터들은 모두 게릴레로 에로이코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체 게바라의 얼굴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어깨와 마이크 타이슨의 배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으며, 지젤 번천의 비키니 수영복과 엘리자베스 헐리의 루이비통 가방에도 있다. 심지어 독재자의 아들 알 사디 카다피는 체 게바라의 얼굴을 호화 요트의 양쪽 옆면에 크게 그려넣기까지 했다. 스노보드, 보드카 병, 팬티, 머그컵, 와인 라벨, 지포 라이터, 담뱃갑, 콘돔, 열쇠고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벨파스트와 베이루트, 베를린, 서울, 뉴욕, 리마, 홍콩, 네팔에 이르기까지 이 사진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곳에 살아서 움직인다."

 

가히 '혁명을 상업주의가 포획했다', '혁명이 패션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범인은 역시나 상업자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글의 저자는 혁명과 혁명가를 찍은 수많은 사진 중 왜 이 사진만이 그렇게 포획당했는지,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묻습니다. 여기서부터 글이 재밌어집니다.

 

체의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원래 패션사진가(지망생)이었다고 합니다. 알베르토 코르다라는 이름인데요. 그는 정식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생일잔치나 세례식,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며 허락 없이 사진을 찍은 뒤 현상한 것을 들고 가서 흥정해파는 일로 생겨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코르다는 아바나 구시가지에 '메트로폴리나타'란 이름의 스튜디오를 여는데, 여기서 그는 쿠바의 젊고 예쁜 여성들을 모델로 미국 잡지에 실리는 것 같은 '패션사진'들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가 롤모델로 삼은 인물은 당대 최고의 패션사진가로 꼽힌 뉴욕의 리처드 아베든이었다고 해요. 코르다는 혁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보다는 패셔너블한 사진을 찍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의 쿠바에는 패셔너블한 모델도 별로 없었고, 패셔너블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르다는 쿠바 혁명의 주역들인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를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로 젊고 잘생긴, 그리고 멋진 미소를 지닌 청년들"이었죠. 체 게바라의 사진-이미지가 레닌이나 마오쩌둥, 호치민의 사진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외모가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혁명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체 게바라의 나이는 불과 31세, 피델 카스트로의 나이는 33세였습니다. 코르다는 이 젊고 잘생긴 혁명가들의 사진을 "마치 패션쇼의 뒤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셀러브리티들처럼 화사하게" 찍었습니다. 체 게바라의 사진이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 되고 패션 상품으로 무차별하게 소비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혁명이 패션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혁명은 처음부터 패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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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O>에 이어 또 하나의 '자극적인' 잡지가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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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anpark 2013-12-1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작가 쟌 모리스가 체 게바라와 얽힌 두 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얘기했던 대목이 문득 떠오르네요...
체 티셔츠를 입고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근데 체 게바라가 누구에요?"라고 물었던 어느 젊은 히치하이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던 그 이야기.....ㅋ
시로군님 덕분에, 얼른 찾아서, 서재에 올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