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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 작품집 네 권을 읽습니다. 이야기적 재미도 있지만 소설적 완성도 역시 출중한 후기 작품들과 자전적 색채가 강한 초기 작품들을 고루 배치하였어요.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 대체로 추상적이고 어렵다는 느낌이 있는 것에 반해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읽어 나갈수록 흥미진진하고 애정을 갖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아마 무엇을 기대하든 그보다 훨씬 재밌는 읽기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먼로 문학의 키워드를 꼽자면 ‘단절’ ‘분리’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인물들이 보이는 소심하지만 단호한 ‘선 긋기’의 태도, 선언이 도드라집니다. 무엇에 대한 선 긋기일까. 그건 소수자, 약자들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논리들, ‘사회의 상식’, ‘다수의 입장’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인데요. 집단의 힘을 등에 업고 쉽게 증폭되는 그런 목소리 앞에서 먼로는 겉보기 화해나 소통이 아니라 미약하지만 확고한 단절/분리 선언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로 같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선보인 그런 태도 덕택에 오늘날의 우리도 무력감과 싸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작가가 집중적으로 다루는 ‘관계’에 대한 고민, 특히 ‘집/가족/지역 사회 떠나기(-에서 분리 되기)’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도 호소하는 바가 큽니다. 대표성이 있는 주요 작품들,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들, 깊이 있는 작품들을 고루 선정했기에 먼로 문학 초심자에게는 물론 보다 깊이 읽고 싶은 독자에게도 유용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기간 : 3월 하순 시작~5월 (총 5회)

장소: 모든 모임 화상(zoom)으로 진행됩니다. (토요일 오전은 오프라인, 망원동 '필로버스')


신청. https://forms.gle/z4Jb63eW6nqV8sW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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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읽은 책 중 인상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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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백치> (*<죄와 벌>은 을유문화사 번역본 괜찮았다.)
발자크 <고리오 영감> (*역시 을유문화사 번역본이 괜찮았다.)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문> (*<산시로>는 독서모임에서 못 다룬 게 아쉽다. <햄릿>을 빼고 <산시로>를 다뤘어야 했나…)
레이 브래드버리 <태양의 황금 사과>, <화성 연대기>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후자의 경우는 16페이지짜리 발제문을 썼다. 민폐… 스압… 아마도 최장 기록일 듯.)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존 치버 <기괴한 라디오>
체호프의 단편들 (<사랑에 관하여>(펭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열린책들),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귀여운 여인>(시공사))
니콜라이 레스코프 <광대 팜팔론>, <왼손잡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발터 벤야민 선집 9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 특히 ‘이야기꾼’ 에세이.
테드 창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필립 K. 딕 <높은 성의 사내>
옥타비아 버틀러 <킨> <블러드 차일드>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술라>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인생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훌륭한 <프랑켄슈타인> 독후감이 들어있다. <프랑켄슈타인>도 나름 인생 책...)
어슐러 K. 르귄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피터 게이 <모더니즘>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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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좋았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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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첫 두 장'을 넘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던(좋은 수면제였다...) <댈러웨이 부인>을 3종의 번역본 및 원문 판과 주석판까지 비교해가며 읽은 것. 특히 최초 독서 때 소설의 후반 절반은 숨도 안 쉬고 몰입해서 읽은 경험을 한 것.
- 앨리스 먼로의 작품들을 모두 다 사랑하게 된 것.
- 최초 착상으로부터 6년만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백치>를 독서모임 리스트에 넣고 읽은 것. (<악령>과 <까라마조프...>는 '차마' 혹은 '감히' 못했다...)
- 벤야민 에세이 ‘이야기꾼’의 맥락에서 레스코프 소설들 읽은 것.
- 체호프 단편 번역 출판된 것들 거의 다 읽으면서 앨리스 먼로, 카버, 치버 등 이른바 ‘체호프 라인’으로 분류되는 단편 작가들까지 쭉 살펴본 것.
- 레이 브래드버리로 시작해서 옥타비아 버틀러와 어슐러 르귄을 읽는 등 SF와 친해진 한 해이기도. (*그간 줄곧 MT파였습니다… SF에는 거리감을 갖고 있었죠. 그러나 올해 화제작 중 하나였던 <체체파리의 비법>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 하우저 <문예사>, ‘아는 만큼 보인다’를 실감하며 나름 재미지게 읽은 것.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여사를 발견한 것. (*이건 한림원의 공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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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내 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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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호프 소설들 읽을 때, 희곡까지 함께 읽지 못한 점.
- 체호프 라인 작가 중 윌리엄 트레버를 읽지 못하고 넘어간 점.
- 주디스 버틀러 책 사두고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점.
- 장 뤽 낭시도 마찬가지...
- <댈러웨이 부인>을 열심히 읽었는데, 읽은 만큼 정리를 못함. (<— 지금 이걸 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다…)
- <블러드 차일드> 역시 할 말이 많았는데 정리 제대로 못 함.
- 카뮈 <반항하는 인간> 읽기로 마음 먹고 못 읽은 것. (*역시 난 '반항'쪽은 아닌가...)
- <일리아스>로 ‘느리게 읽기’ 모임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
- ‘단편 읽기’ 모임을 기획만 하고 만 것. (실행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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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페딘1T 2017-08-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들에 감사드립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보고 싶은데, 괜찮은 번역본이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ㅠㅠ 초보자라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죄와벌은 김학수 번역본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을유에서 나온 것도 좋은가 봅니다. 조금씩 읽어보고 잘 읽혀지는 것으로 구입하면 될까요?
.
.
질문을 올리고 아래쪽을 보니 댈러웨이 부인 번역에 대한 언급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일단 1독을 하는게 목표이니만큼 시공사판으로 보는게 좋겠죠?

시로군 2017-08-29 16:50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댈러웨이 부인> 시공사판 번역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열린책들 번역도 좋았어요. (오역은 두 번역본 모두에 있긴 합니다만...)

<죄와 벌>은 김학수 번역본이 좋다고 저도 들었습니다만, 을유문화사판본도 괜찮더군요. 본문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었지만, 특히 작품 이해를 돕는 각주가 좋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요-!

시로군 2017-08-29 16:53   좋아요 0 | URL
판본에 대해서는 이 서재글 아래쪽을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http://blog.aladin.co.kr/705623165/8968962

니페딘1T 2017-08-3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
 

 

 

 

 

 

 

 

 

 

 

 

 

 

 

긴 문장. 그것을 나는 맨 처음 토마스 만의 <베니스의 죽음>에서 발견했다.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익숙하지 않았던 그 긴 문장을. 오직 선택된 문장과 언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푸르고 인상적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세계로부터 격리당하고, 그리고 동시에 어느 한 세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 도시, 그 거리, 너무나 특별했던 어느 한 시기, 그리고 ......라 불리는 한 작가 ......에 대한 풍경. 두세 번을 반복해서 읽고서야 나는 그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멀고 먼 산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윽고 나는 나 자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배수아, <독학자>

 

 

오랜만에 <독학자>를 다시 꺼내들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될까 두려워 그렇게 오랫동안 <독학자>를 펼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독학자>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군복무 중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군에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별 탈 없이, 죽지 않고 살아서 제대한 것에 대해 나는 정말로 신에게 감사한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당나귀들>과 같은 소설들을 나는 군복무지인 대구와 집인 광주(혹은 서울)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읽었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 일이다. 몸이 약해 차를 조금만 오래 타면 멀미를 하는 체질임에도, 이 책들만큼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나에게 책 읽기란 '도피'이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대담(<평행과 역설>이란 책으로 출간되었다)에서 "음악은 아주 완벽한 도피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최상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각자에겐 아마 '완벽한 도피 수단'이 될 수 있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배울 생각도 시간도 없다, 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군 생활은 내게 무척 힘들었고, 앞서 "죽지 않고 살아서 제대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고 썼지만, 실은 군복무 당시에는 오히려 자살할 생각 같은 건 거의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보자니 당시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것이지, 정작 그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다. 주변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는데, 정작 나는 태연하게 굴었던(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내가 연루된 몇몇 사건들이 생각난다.

 

내가 연루된 사건, 이라고 썼지만 군에서는 때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그러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할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해내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 책임으로 보자면 내 책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일들, 실은 모두가 비슷하게 잘못한 일들.

 

서로 정직하게 책임을 나눠 지는 것이 아니라 만만한 사람 하나에게 덮어씌우는 데 익숙하며 능수능란하기까지 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태연자약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그 사건들을 지금 다시 겪는다면 그때처럼 태연하게 굴지는 못할 것 같다. 태연하게 굴기는커녕 단숨에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나는 퇴화해버린 것일까? 아니면 당시 앓고 있던 '중2병'을 벗어나는 데(혹은 숨기는 데) 성공하고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된 것일까? 모르겠다.

 

'도피'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품은 단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도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피로/도주로'를 내야 한다. '도피'의 반대 태도로는 '당당히 맞선다'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하지만 둘은 결국 반대되는 태도라기보다 동전의 이면처럼 동일한 속성의 다른 면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도피할 곳--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 느낌은 '믿는 구석'이 된다.

 

자기만의 '믿는 구석-도피할 곳'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자신에게 비겁한 복종과 침묵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고 태연할 수 있다고, 그것은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비겁'이나 '방관자적 태도가 스민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이 모든 것에 대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에 대해 당당히 맞서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고, 그렇다는 사실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위험하며, 그런 종류의 당당함이야말로 언제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소한 계기와 명분만 있다면) 비겁함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피'와 관련하여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한다.

 

 "[...]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당신이 만일 어떤 곳에 귀속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시적으로 말해서 '돌아갈 집이 있다'고 느낀다고 가정해 봅시다. 또 당신이 그러한 감정을 작곡가로서 음악으로 표현하고, 연주자로서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경우 당신은 언제든지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잘못 놓여졌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든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한편으로 음악은 삶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음악은 이렇게 말하지요. "이봐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삶입니다.""

 

- 다니엘 바렌보임, 에드워드 사이드 대담집, <평행과 역설>, 58-61.

 

 

 '(자기로의) 도피'에 대해, 그것의 긍정성에 대해 최근에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과 소세키의 강연 모음인 <나의 개인주의>이다.

 

먼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들뢰즈+가타리의 <카프카 : 소수 문학을 위하여>가 있다(대학 시절에 이 책을 두고 세미나를 했지만 거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밖에 만화책 <은수저>가 있다. 특히 만화책 <은수저>는 도피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을 아주 쉽고 공감가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한편 대개 도피란 낭만화되기 쉬운 법인데, 바로 이 '낭만화의 함정'을 훌륭히 피해나갔다는 점도 이 만화책의 아주 큰 장점이다.

 

작년인 2013년에 나는 언급된 책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열심히 읽었거나 읽으려고 노력했다(<카프카>는 결국 읽지 못했고, 대신 (예비작업 격으로) <성>과 <소송>을 읽었다. <은수저>는 아직 완간이 되지 않았다(현재 9권까지 발매)).

 

 

 

 

 

 

 

 

 

 

 

 

 

 

 

 

 

 

 

 

 

 

 

 

 

 

 

 

 

 

 

 

 

 

 

 

 

 

 

 

 

 

'보다 완벽한 도피'를 위한 계획과 실천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 같다. <독학자>를 비롯한 배수아 작가의 소설들이 훌륭한 곡괭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 <독학자>를 읽는데, 예전 읽을 때 연필과 펜으로 표시해둔 대목이 너무 많아 새책을 사서 읽으려고 검색해보니 '품절'이다. 재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출판사에 전화라도 넣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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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라고 하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전공자가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를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죠. 

 

널리 알려진 작가라고 해도 '깊이 읽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 존 쿳시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200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덕분에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 출간 되어 있긴 합니다만,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는 것 이외의 깊이 읽기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은 쿳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가 이렇죠. 번역된 작품의 본문을 읽고, 본문 뒤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역자 해설을 읽으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각별히 좋아하는 작가라면, 해당 언어를 배워서 해당 언어로 발표된 관련 논문이나 에세이 등을 직접 찾아 읽어봐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이런 과정을 하나 하나 밟아나가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들어선 간혹, "중요한 작가론(또는 작가가 연루된 논쟁)으론 이러이러한 게 있고, 어디어디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라고 전문적 수준의 가이드를 해주는 역자 해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갤 끄덕 끄덕 하며 밑줄을 그어놓거나 따로 수첩에 메모를 해두기만 하지만, 직접 찾아보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 아주 드뭅니다. 이건 뭐 게을러서가 아니라, 책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 정보 형태라는 데 위화감이 들어... 그런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찌 됐건, 나쓰메 소세키는 비교적 다양한 관련 책들이 국내 출간 되어 있기에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가 가능합니다.

 

다양한 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 2012)입니다.

 

 

 

 

 

 

 

 

 

 

 

 

 

 

 

 

만화이지만 웬만한 해설서나 평전 못지 않게 내용이 충실고 잘 만들어진, '빼어난' 책입니다. 다음과 같은 선전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

 

문인,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메이지 시대의 풍경은 수십 권의 인문서를 읽는 것보다 명징하게 이해된다. 편집자로서 다니구치 지로의 집요한 그림이 빛을 발하는 이 걸작을 소개하는 기쁨이 크다.

 

<[도련님]의 시대>는, 제목처럼 두 번째 소설인 <도련님>을 쓸 무렵의 소세키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만화의 내용은 소세키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메이지 말기'의 시대상까지를 아우릅니다. 해서, '메이지 말기'의 일본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기도 합니다.

 

<[도련님]의 시대>는 다섯 권이 시리즈인데, 현재로선 시리즈 1권인 <[도련님]의 시대>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지금 2권, 3권이 번역 작업 중이고, 조만간 출간된다고 하는데요, 기대가 큽니다.

 

시리즈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역시, 모리 오가이 편인 2권입니다. 소세키는 시리즈 마지막 권에서 한 번 더 다뤄지고 있네요.

 

 

1권 『도련님』의 시대(나쓰메 소세키 편)
2권 가을의 무희(모리 오가이 편)
3권 저 푸른 하늘에(이시카와 타쿠보쿠 편)
4권 메이지 유성우(코우토쿠 슈스이 편)
5권 거북 소세키(나쓰메 소세키 편)

 

한편, <[도련님]의 시대>에는 주인공 격인 소세키 말고도 일본 메이지 말년의 여러 문인들이 등장합니다. 모리 오가이히구치 이치요, 시마자키 도손, 구니기타 돗포 등이 그들입니다. (그 외에도 후타바테이 시메이, 다야마 가타이, 나가이 가후, 이즈미 교카 등 많은 작가들이 언급됩니다.) 해서,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메이지 시대 일본 문학 작품 리딩 리스트를 구성해 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도 좋을 듯.

 

 

모리 오가이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입니다. 국내에는 소개가 거의 안 됐지만 '아쿠타가와 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선생님이라 불렀고, (5살 연하인) 소세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모리 오가이란 사람은 일급 작가이기도 하지만, 일급 연구자이기도 하고 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세속적 관점으로도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고 독일 유학을 다녀와 군의관이 되었는데, 군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군의총감의 지위까지 올랐습니다. 뭐 소세키도 모리 오가이와 마찬가지로 도쿄대 출신이고 영국 유학을 다녀와 도쿄대 교수로 임명되는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만, 신경쇠약으로 인해 교수를 그만두고 만 것은 대조가 됩니다(영문학을 싫어하는 영문학자 소세키, 강의를 잘 못하는 교수 소세키의 모습은 <[도련님]의 시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리 오가이의 작품은 <아베 일족>(문학동네), <기러기>(문예출판사) 등이 출간되어 있습니다(두 책이 제목은 다르지만 중단편 몇편이 수록된 '소설집'이어서 겹치는 작품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군의관'이 쓴 소설이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화폐 5000엔의 모델로 유명합니다. 여류작가입니다. 불과 스물넷의 나이로 요절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요절했고 남긴 작품 전체가 책 한 권 분량으로 갈무리되는--전집이 한 권인--작가에게는 대개 신비스러움이 덧씌워지거나 아련한 동경 같은 걸 품게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그런 한국 작가로는 이상-김수영-기형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죠). 사후 얼마 안 되어 큰 인기를 얻고, 화폐 모델까지 등극한(?) 이치요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한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치요의 작품은 <키 재기 外>(을유문화사)가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치요의 작품을 (다른 판본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리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작가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나쓰메 소세키와 모리 오가이가 어느 눈 오는 날 히구치 이치요가 생전에 살던 허름한 집 앞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마자키 도손은 천재 시인으로 각광받았고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했으나 현실에서는 굉장히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 작가입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시마자키 도손이 신작 소설을 발표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소세키가 탄식을 내뱉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 어느 문학인 모임에서 도손이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남자로 면박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시마자키 도손의 대표작은 <파계>(문학동네)인데, 야한 소설은 전혀 아니고 신분 차별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소설을 두고 '후세에 남길 명작'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구니기타 돗포는 시마자키 도손과 마찬가지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역시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요즘엔 그렇지만, 옛날,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돗포의 애독자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광수가 어떤 대담에서 자기는 소세키와 돗포를 애독한다고 하면서, 소세키보다 돗포를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간결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는 돗포의 대표 단편들을 모은 선집인 <무사시노 外>(을유문화사)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소개서/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면

 

소설 읽기는 지겹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해서는 좀 더 알고 싶다! 라는 분들은 다음의 책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비교적 편하게 술술 읽히는 소개서로는 재일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이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국내에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고, <고민하는 힘>은 꽤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강상중은 소세키의 소설 세계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문 세계를 함께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지만, 소세키 작품을 좀 더 재밌게, '와닿게' 읽을 수 있는 키워드(돈, 청춘, 직업(노동) 등)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은 고모리 요이치라는 저명한 학자가 쓴 평전입니다. 믿을 만한 저자가 쓴 것이라 저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안타깝게도 절판 상태입니다.

 

최근 출간된 것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봄)라는 책이 있습니다. 각각 근대와 현대의 일본 '국민 작가'인 소세키와 하루키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루키 책은 제가 읽어본 게 별로 없고, 또 하루키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마음도 없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그닥 끌리는 책은 아니지만, <도련님>에 대한 논의가 짧게 나마 있어서 그 부분은 일별을 해보려 마음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닥 끌리지가 않아 굳이 구해서 읽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마음만은 그렇게 먹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세키의 산문, 강연록 모음집으로 <나의 개인주의>(책세상, 2004)가 있습니다.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학술적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이고, 실제로 읽어보면 소세키의 소설 만큼이나 재밌습니다. 소세키 특유의 솔직 담백한 어법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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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구매욕을 자극하는 표지 디자인의 세계문학 작품 판본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독자들을 가장 열광케하리라 짐작되는 것은 플로베르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입니다. 펭귄클래식에서 <보바리 부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네요. 포인트가 디자인인 만큼, 펭귄클래식을 비롯, 각 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 시리즈의 디자인 및 만듦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뭐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밝히는 글이므로 그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그 동안 펭귄클래식은 일명 블랙 펭귄이라하여, 바탕은 검은색에 위쪽 면에 큰 그림이 들어가고 중간에서 약간 아래(3/4 지점)에 흰 띄가 가로지르는 표지 디자인을 고수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보바리 부인>을 내면서 펭귄북스의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펭귄북스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초창기 펭귄의 판매 전략과 관련이 있습니다. 펭귄은 표지 디자인에서 각 책의 성격을 드러내기보다 출판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합니다. 수평으로 3분할--3단 그리드--해서 로고, 책 제목, 저자 이름만 넣었는데, 이 단순한 디자인은 당시 많은 책들이 화려한 일러스트와 장식으로 꽉 찬 표지를 내세운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후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펭귄의 디자인도 다양해집니다. 한국의 펭귄클래식이 채택한 디자인인 '펭귄 블랙 클래식'은 '고전(classic)' 작품들에 적용되는 디자인입니다. 이 '블랙 펭귄'은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도 남다른 맛이 있습니다. 반면 민음사나 문학동네, 그리고 창비는 작품마다 다른 색깔을 입혔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걸 더 선호하는지는 독자마다 다를 듯합니다.

 

한국에서 '블랙 펭귄'의 예외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입니다.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번역되는 제목인데, '시간'을 '시절'로 바꿨습니다.)

 

 

 

 

 

 

 

 

 

 

 

 

 

 

 

 

 

그 이전에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의 경우에는 '블랙 펭귄' 디자인 말고도 따로 양장본 표지 디자인을 선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작품을 다른 디자인과 제책으로 선보이는 것은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펭귄 UK나 펭귄 USA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펭귄북스의 디자인적 측면(표지 디자인, 로고, 제책 등)에 대해서는 <매거진 B>10호에서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 자체가 디자인, 만듦새의 측면에서 꽤 훌륭한 잡지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기능, 가격의 측면에서 '균형잡힌(balanced) 브랜드(brand)'를 매월 하나씩 다루는 월간지입니다.  

 

 

 

 

 

 

 

 

 

 

 

 

 

 

 

 

<매거진 B>가 소개하는 펭귄북스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5년 영국에서 시작한 펭귄은 가격을 낮추고 휴대성을 높인 문고판 발행, 시대적 요구를 놓치지 않는 기획, 그리고 북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립 등 현대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을 줄곧 제시해왔습니다. 펭귄은 값싼 책을 만들더라도 최고의 작가를 섭외하며 결코 내용까지 가벼운 책이 되지 않도록 노력 했습니다. 이는 '책은 읽는 것'이라는 단순한 신념을 지닌 창업자 앨런 레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펭귄하면 유명한 오리지날 디자인, 펭귄 로고와 수평 3단 그리드 표지디자인이 떠오릅니다. 책 표지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벼운 페이퍼백, 문고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페이퍼백이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출판사가 펭귄입니다. 20세기 들어서 독서 인구가 늘고 또 여행 인구가 늘면서, '부담 없이 싼 가격에 구입해서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 즉 접근성과 휴대성이 높은 책에 대한 수요가 생겼는데 그러한 흐름에 영리하게 편승했다 하겠습니다.

 

(* 펭귄하면 또 떠오르는 건 <채털리 부인의 연인>입니다. D. H. 로렌스의 이 작품은 로렌스의 모국인 영국에서 '외설물'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출판 금지였는데(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출간), 로렌스 사후 30년을 맞아 펭귄출판사에서 20만부를 찍습니다. 이에 검찰이 출판사를 기소하고 법정 공방 끝에 출판사가 승소합니다. 그리고 찍어 낸 20만부는 하루 만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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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세계문학은 페이퍼백보다는 ('고전'으로서의 그 위상에 걸맞게) 장중한 하드커버가 제맛이라고 여기는 독자들도 상당수 있을 듯합니다. 8-90년대에 나온 세계문학 전집들은 하드커버인 경우가 많았죠. 책 외판원이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세일즈(방문판매)를 하던 시절이었죠. 웬만한 집 책장에는 계몽사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이 꽂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세계문학 전집은 인터넷 주문이나 홈쇼핑(!)을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페이퍼백(혹은 반양장)이네요.

 

세계문학 전집을 일관되게 하드커버로 내고 있는 출판사는 을유문화사와 열린책들 정도가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는 모든 작품을 양장과 반양장, 두 가지 종류로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장과 반양장의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양장과 문고본, 이렇게 두 종류로 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전집은 만듦새가 꽤 좋은 편입니다. 표지 디자인도 괜찮고, 본문 편집에도 일관성이 있습니다. 분량이 많은 책도 웬만해선 분책을 하지 않고 한 권으로 낸다는 것도 이 출판사의 특징입니다. 들고 다니기 무겁다는 단점이 있으나 1권만 갖고 다니면서 책을 다 읽어버린 경우, 2권을 읽다가 앞의 내용을 확인할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유용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각주가 아니라 미주를 달고 있고, 이 미주가 일련번호로 표기되지 않고 별 갯수로 표기되어 있어서 다소 불편한 면이 있습니다. 뭔가 있을 것 같아 애써 찾아봤는데 별 내용이 없으면 독서 흐름이 끊기고 맥이 빠진달까요.

 

각주와 미주, 이것도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텐데요, 저는 각주를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빨리 눈만 움직여 확인을 할 수 있으니까요. 미주를 선호하는 분들은, 각주가 독서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가 달아놓은 '원주'가 아니라 역자가 달아둔 '역주'의 경우에는, 뭐랄까요 '원문'에 일종의 '이물질'이 '끼어든' 것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시대적, 장소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어떤 단어나 표현의 숨겨진 뜻, 그러한 표현을 쓴 저자의 의도를 알려주는 '역주'가 고맙게 여겨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할 수만은 없을 듯.  

 

열린책들 W 세계문학 시리즈는 싼 가격, 그리고 나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역력한--열린책들 디자인팀의 노동강도가 짐작되는--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하드커버이고 판형은 을유문화사 판형과 비슷합니다(어째서 하드커버들이 반양장본보다 더 판형이 작은 건지는 모를 일이네요). 한 가지 불만은 본문에 여백이 별로 없고 줄간격도 좁아 너무 빽빽해서 가독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읽었던 줄을 다시 읽고 있는 경우가 많이 발생...).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미스터 노(Mr. Know) 시리즈를 낸 적이 있는데, W 세계문학 시리즈는 제책과 디자인 레이아웃만 바꾸고 본문 편집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합니다. 미스터 노 시리즈는 가격이 싸고 가벼워서 부담없이 사서 읽기 좋았죠. (펭귄 북스의 원래 컨셉을 따라한 듯?) 하지만 이제는 모두 절판이 되어 '레어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스터 노 시리즈에 대해서도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가벼운 데다 판형도 작아서 책상 위에 두고 읽을 경우 책이 쉽게 닫혀버리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독서대에도 잘 고정이 되지 않아 읽을 때 반드시 손으로 잡고 읽어야 했죠... 덧붙여 종이가 다소 두껍고 마찰력이 적어서 (손에 땀이라도 쥐지 않으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불만이었습니다... (거 참, 불만도 되게 많네요. 하지만 펭귄클래식은 정말 종이가 손에 닿는 느낌부터가 다르다는...)

 

카프카 <소송>의 표지디자인, 판형 등을 출판사별로 비교해봐도 재밌습니다. 카프카 전집은 '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 '솔 판본'은 하드커버에다 판형도 커서 묵직합니다. 그런가 하면 펭귄클래식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을 표지에 집어 넣었습니다... 표지 그림만 놓고 봤을 땐, 을유문화사가 가장 나은 듯하네요. 열린책들은 디자인팀에서 따로 제작한 표지를 썼습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과는 어울리지 않아...!). 표지에 사진이나 그림을 넣을 때는 해당 사진과 그림의 작가에게 (저작권이 살아 있는 경우) 저작권료를 따로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비용 절감이 되려나 싶습니다(하지만 디자인팀은 잦은 야근을 하겠죠).

 

 

 

 

 

 

 

 

 

 

 

 

 

 

 

 

 

 

 

 

 

 

 

 

 

 

 

 

 

 

 

 

 

그나저나 <마담 보바리>는 워낙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민음사)이 '정본'처럼 통용되고 있었는데, 새로운 디자인에 끌려서라도 펭귄클래식 번역본을 선택할 독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그 중의 한 명이 되었네요.

 

 

 

 

 

 

 

 

 

 

 

 

 

 

 

 

 

 

솔직히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표지는 마음에 드는 게 거의 없습니다. 좀 지나치게 세로로 긴 '타워' 판형--마치 아이폰 5를 연상시키는--도 개인적으론 불만입니다. 판형이 세로로 길다보니 책을 펴서 본문을 읽을 때도 위 아래 여백이 지나치게 넓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스터 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책이 잘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불만입니다. 책이란 게 내용이 중요하지 외양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번역 퀼리티 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게 책의 만듦새이기도 합니다.

 

표지 디자인, 판형, 여백, 글씨체, 줄간격 등 본문 편집, 종이, 제본 상태, (손에 잡았을 때의 그립감을 결정짓는) 볼륨감, 표지의 질감 등등. 사실 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가다 그런 책을 만났을 땐 무척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보다는 반양장이나 페이퍼백을 선호하는 편이고, 작은 판형의 문고본도 좋아합니다. 세계문학 문고본으로는 책세상 문고, 문지 스펙트럼 문고가 있습니다. 이런 문고본들은 여행 갈 때나 예비군 훈련 갈 때 아주 유용합니다. 실은 유용하고 말고를 떠나 문고본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이랄까 하는 게 있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도 문고본이 있으면 따로 사둡니다.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선호하는 것은 펭귄클래식입니다. 심플한 표지 디자인이나 펼쳐놓고 읽기에 적당한 판형도 맘에 들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는 표지나 본문 종이가 손에 닿을 때의 촉감도 좋습니다. '책이 손에 딱 잡히는' 느낌이 든달까요. 표지나 본문 종이가 너무 매끈거려서(빤딱거린다, 고도 하죠) 손끝에서부터 거부감이 드는 책들도 있거든요. 뭐 너무 민감하게 굴고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작품들은 <뿔(웅진)>에서 나왔는데, 펭귄클래식코리아와 같은 계열(웅진씽크빅)이어서 그런지 만듦새가 펭귄클래식과 비슷합니다. 표지만 봐서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책을 만져보면 비슷한 그 느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앨리스 먼로가 단편 작가여서 생각 났는데, 최근에 현대문학에서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세계문학 단편선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도 예쁘지만 '하드보일드 스쿨의 교장' 대실 해밋의 단편선이 들어있다는 점이 또 한 번 눈길을 끕니다. 데미언 러니언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라 깜짝 놀라기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기둥 줄거리가 된 단편을 쓴 작가라고 합니다. 출간 예정인 작가로는 모파상, 오 헨리 등 이미 일반에 널리 알려진 단편 작가들도 있지만, H. P. 러브크래프트, 허버트 조지 웰즈 등 이른바 '본격문학'판에서는 소외되었던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단편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역시나 체홉인데요, 최근에 시공사에서 체홉 단편선이 새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현대문학 시리즈로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체홉 단편선도 어느 덧 이렇게나 많은 종이 출간됐네요. 아래의 책들은 수록된 작품들이 저마다 다릅니다. 표제작도 다들 다르죠. 나름 '대표' 단편선으로 기획해서 내놓은 것일 텐데, 각 출판사마다 '대표'가 다릅니다. 해서 체홉의 작품 세계를 일별하려는 독자라면 일일이 목차를 확인해가며 책을 구매하고 또 읽어야 한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체홉 정도의 작가라면 단편 '선집'이 아닌 '전집'이 나올 때도 됐는데 말입니다.

 

 

 

 

 

 

 

 

 

 

 

 

 

 

 

 

 

 

 

 

 

 

 

 

 

 

 

 

 

 

 

 

 

2000년대 후반들어 본격화된 세계문학 출판 붐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여러 출판사들이 세계문학 쪽에 공을 들이고 있는 덕에 디자인과 만듦새 측면에서 훌륭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건, 일단 독자로서는 큰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고생하는 편집자, 디자이너분들의 입장은 또 따로 들어봐야 할 듯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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