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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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2015)을 한 달음에 읽었다.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이나 그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읽어볼만하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이면의 도시>도 인포그래픽 형태로 정리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좀더 심도 있게 이 주제를 다루자면, 벤야민의 책들도 참고해야 하고 푸코의 책들도 참고해야겠지만 그러기엔 일단 역량이 안 된다. 독일 철학 전문가이자 벤야민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수잔 벅-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벤야민의 논의를 정리한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정도는 한 번 마음 굳게 먹고 도전해볼만하다. 그램 질로크의 책은 노명우가 번역한 책인데, 그가 쓴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 등과 함께 비교적 가벼운 마음 가짐으로 읽을 수 있다.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 안 풍경>도 함께 봄직하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도시공학, 지리학(지리정치학) 전공자인 임동근 교수의 대담집이다. 2013년에 팟캐스트로 방송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박사논문에 실린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 정리한 것이라는데, 논문은 아직 단행본으로 출간이 안 되어있다. 출간이 기다려진다. (지도와 표가 더 많이, 알아볼 수 있는 해상도로 실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정치, 행정이라고 부르는,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실감을 못하는 영역을 일상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게 이 책의 큰 장점. 가령 이 책에서는 물 문제나 똥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서울이 거대 도시가 되면서(즉 메트로폴리스화 되면서) 중요하게 처리해야 했던 문제들이다. 이 책은 물 확보를 둘러싼 갈등, 전기세를 둘러싼 갈등, 대형 주거 공간인 아파트 관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행정적 결정들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왜 선거를 잘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ㅋ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저 선거만 잘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아파트에 대해 서술한 대목. 지금이야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이자 내 집 마련 플랜의 로망이자 최종 목적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파트에 대한 판타지가 상승한 것은 70년대 후반-80년대인데, 이때 정부에서 조장한 중산층 이데올로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80년대에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전두환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아파트 붐은 없었고, 대신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시기는 '하숙의 시대'이기도 해서 서울로 몰려온 지방 인구 중 상당수가 하숙을 하거나 하숙하는 친구 집에서 안면몰수하고 얹혀 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런 서술을 읽으면 아 옛날엔 정말 그랬었지... 하고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

 

아파트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처음에 아파트가 건설되었을 때, 그러니까 60년대 초에는 서민들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서 지어졌다고 한다. '시민아파트'라는 개념이었는데, 나중에 주택공사가 이런 개념을 잇는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실은 '주공'은 서민보다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더 많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SH나 LH도 마찬가지라고.

 

'서민'들을 수용하려고 아파트를 지어 제공하려는 발상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시기 아파트는 그냥 골조만 세워놓고 거기 들어가서 살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벽지도 거주민이 직접 발라야 했고, 관리사무소 같은 것도 없어서 생활을 하다 새기는 문제는 모두 직접 해결해야 했다고. 건물만 지어놓고 팔아서 회사와 정부가 각자 이윤 나눠먹고 손 터는 이른바 '먹튀'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파트를 지어놓은 후에 관리까지 해준다는 개념은 삼성이 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삼성은 건설 자체보다는 관리, 마케팅, 브랜딩에 초점을 두었고, 나중에는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 '래미안'을 만들어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하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고, 초창기의 서민 아파트에서는 그냥 지어져 있는대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생활 문제가 발생했는데, '장독'을 둘러싼 문제나 '물 공급'을 둘러싼 문제가 큰 문제였다고 한다. 이때는 장을 사다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장독'을 둘 공간이 집집마다 꼭 있어야 했는데, 아파트에는 단독주택처럼 마당도 없고, 대문 위에 만들어진 장독 전용 공간도 없어서 문제가 많았다고. 또 하나는 당시 서민들은 아이들을 길에서 길렀는데, '길'이 '아파트 복도'로 바뀐 셈이 되면서, 아이들이 추락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파트 이후로 등장한 주거 공간인 다세대, 다가구 주택(a.k.a 빌라), 90년대 등장한 오피스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는 '누진전기세'를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서울 인구의 50% 이상이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 살고 있는데, (아파트 연구는 많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오피스텔은 생산직과 사무직이 분리되고 본사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는데, 공급 과잉이 되어서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급하게 용도 변경한 경우라고 한다. 사생활 노출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어서 유흥업 종사자, (밤샘 작업 많이 하는) 공대생들이 많이 살았다고. 그리고 이때 오피스텔의 매입 주체는 주로 사채없자나 폭력조직이었다고 한다.

 

임대료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임금이 하락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임대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집 값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바우처(=직접 지원)의 형태로 정부의 임대료 지원이 있을 거란 이야기. 이건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고. 그 조만간이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세계적 흐름은 그렇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대기업이 (이미 공급 과잉이 된 아파트 시장을 버리고) 임대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재벌 3세들은 이미 임대업에 활발히 진출해 있는 듯하고(그래서 기존 상인들과 큰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지하철 등에서 볼 수 있는 '직방' 같은 앱을 보더라도, 후자는 슬슬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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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는데, 워낙 많아서 다 할 수는 없고, 내가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는 주거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 그건 내가 사는 공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단순하게 말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맛있는 것을 해서 나눠먹을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삭막한 동네가 아니라 (애매한 표현이지만) 살기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집에 혼자 처박혀서도 잘 놀 것 같은 캐릭터지만, 나에게는 어울림의 공간이 필요하다. 뭐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나한테는 그런 욕망이 좀더 강하게 있는 것 같다. 그런 공간을 지금 갖고 있지 못하고, 앞으로 갖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하여튼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내가 고층 아파트를 싫어한다는 것. 주거 형태로서도 싫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도 싫다. 땅에서 멀어지고, 하늘을 시야에서 가리기 때문이다. 되게 낭만적인 표현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런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땅과 하늘이 배제되기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인 불편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다.

 

70년대 중반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호 주거 유형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5%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파트를 밀어붙인 이유는 주택 문제를 일거에 해소한다는 명분을 쉽게 갖다 붙일 수 있었고, 급속하게 대규모 단지 조성이 가능해서였다고. 즉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부와 회사가 깔끔하게 먹튀를 할 수 있는 게 아파트였다고.

 

인식도 안 좋고, 잘 안 팔리지도 않는 아파트를 시민들에게 팔아먹기 위한 방법으로 청약 통장, 분양 제도를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선분양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것인데, 이것의 작동방식을 보면 참 이상하지만 동시에 매우 섬세한 방식이라고 한다.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파트가 적합한 주거 형태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이게 별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내가 이런류의 책에 관심을 갖는 마지막 이유. 내겐 내가 지금 어떤 환경, 어떤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를 거시적, 총체적 시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발현되는 자신의 욕망과 로망, (또 그것이 충족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불만과 절망감, 이런 것들과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감당하는 건 무척 버거운 일이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못 본 체 외면 또는 체념하고 넘어가거나 절제의 미를 발휘하여 지긋이 억누르는 수가 있겠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욕망, 로망, 불만, 절망감 같은 것들이 어떤 환경, 어떤 흐름 속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거시적 시점에서 한번 조망해보게 되는 셈인데, 그 조망 행위 자체가 어떤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물론 없다. 크게 보면 잘난 척이고 자기 만족일 뿐이다. (모든 지식 추구 행위에는 그런 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사실을 외면하고 사실 앞에서 체념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로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면이 있다. 그 역시 물론 일시적으로만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각과 태도를 가져보는 것과 그래보지 못한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게 바로 (돈 한 푼 안 생기지만) 책을 읽는 이유일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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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을 때 의식주 생활의 측면에서 의외의 재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앞으로 한국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주거 공간과 사는 동네를(그리고 그것이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인간 관계, 행동 결정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을) 눈여겨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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