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을 마시자 마음속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길고 육중한 프레디의 시신 밑에 폴로 코트가 구겨져 있었지만, 시신을 내려다보던 톰은 코트를 똑바로 펴 줄 기운도 마음도 없었다. 톰은 짜증이 났다. 그의 죽음이 얼마나 슬프고, 서툴고, 어리석고, 위험하고, 불필요한가! 그리고 프레디에게는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부당한가! 물론 프레디를 싫어할 수도 있었다. 디키는 분명 그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었고,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한 명을 성적인 일탈이라는 이유로 조롱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친구였다. 톰은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났다. 성은 무엇이고, 일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프레디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고 씁쓸하게 말했다.
프레디 마일즈, 넌 너 자신의 더러운 생각에 희생된 거야.”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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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 대목에서 우리는 리플리가 프레디를 죽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사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1999)에서는 각각 맷 데이먼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역할을 맡았다. 영화와 소설은 디테일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짜증이 났다"는 표현이다. 리플리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데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게 아니라, 그게 불필요하고 서투른 살인이었다는 생각에 '짜증'을 낸다. 물론 프레디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이후 곧바로 합리화할 빌미를 찾아낸다. “친구를 조롱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친구니, 죽을 만도 하지”라는 논리다.


이어서 리플리가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는 것, 나아가 그것을 쪼개서 그 본질적 의미를 따져보는 건 무척 의미심장하다. 성이란 무엇이며, 일탈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알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따질만한 문제도 아니다. 프레디가 디키를 놀린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과연 죽을만한 이유가 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문제다.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도 프레디가 쓴 게 아니고, 리플리가 방금 생각 중에 떠올린 표현에 불과하다. 그래서 톰은 웃는다. 자신의 생각이 일견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실은 웃기는 자기합리화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성은 무엇이고, 일탈은 무엇인가?”하는, 눈앞의 상황과 어긋나는 이 '한가한 생각'은 ‘자신이 지금 사람을 죽였다’는 사태를 회피하고 호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생각이다. 이렇게 '한가한 생각'을 떠올림으로써 그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사람을 죽여놓고 그 시체 앞에서 이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리플리라는 인물의 핵심이자 그가 지닌 재능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그는 연기의 달인답게 한 마디 멋진 대사를 날림으로써 자기정당화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마도 자기 확신에 찬 단호한 어조로 말했을 것이다.) “프레디 마일즈, 넌 너 자신의 더러운 생각에 희생된 거야.”


자신이 저지른 범죄 앞에서 한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정신분열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 이게 단지 리플리라는 예외적 개인의 재능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성적인 일탈'이라는 개념적 표현을 떠올리고, 그러한 '더러운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남을 비난, 혐오, 경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자신의 행동은 합리화하여 차분함과 평온을 되찾는 리플리의 이 자기합리화 프로세스는 뭔가 굉장히 익숙해서 공감이 되는 한편 섬뜩한데, 어쩌면 이것은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정치인이나 재벌 3세지만) 이 사회에서 정신분열을 겪지 않고 정상과 상식의 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사고 과정이 아닐까? 



20150905
#막독15기 #상남자들 / 네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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