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미래에 도착한 남자, 일론 머스크가 제시하는 미래의 프레임
애슐리 반스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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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가의 전기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계발의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가치관과 불굴의 의지,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수많은 다른 실패자들과의 1%의 차이가 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실패로 이루어진 무자비하고 두터운 발판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의 성취에 주로 가치를 부여하는 전기류는 사람들의 돈을 끌어모으는 초인적인 힘의 배후를 지탱하는 돈과 명예, 성취에 대한 간사스러운 욕망을 쉽게 간과한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는 때로 비즈니스 세계의 순간적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해야 하고, 때로 정의를 외면하고 잔인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비전보다는 찬스에 능한 기질이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일론 머스크는 성공한 기업가, 특히 우리나라의 성공한 기업가의 대표적 유형에 친숙한 국내 독자들이 가지는 성공한 기업가로서의 선입견을 일축시키는 지속가능한 녹색 산업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는 미래지향적인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피고용자의 입장에서볼 때 고급인력의 생산력을 거의 한계에까지 쥐어짜면서 조금이라도 성과가 성에 차지 않으면 가차없이 해고해버리는 악독 보스이기도 하다. 거의 십년간을 위태위태하게 조롱과 찬사와 멸시와 방해를 받아온 그가, 가까스로 가시적인 아웃풋을 발표한 2012년을 전후한 성공가도를 기점으로 그는 이제 스티브 잡스 이후 미국의 과학 기술 산업을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리더이며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상상력을 실현 가능하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2013 <포춘>에서 선정한 비즈니스 분야 톱 인물 1위, 이에 앞선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 100대 인사의 커버스토리에 선정된 인물, 그런 비지니스적인 성공담이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그는 지구가 자원을 모두 써버려서 언젠가는 우주의 어느 위성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화성에 식민지를 세우고 싶어했다. 태양광을 이용한 녹색 에너지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중동의 화석 에너지 쟁탈전쟁을 종식시키고 가솔린 자동차를 대체하고 싶어했다. 시대를 앞서는 천재적 감각과 엔지니어적인 능력으로 닷컴시대에 벌어들인 돈으로 그는 직접 그러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처음에 그가 엄청난 가치를 받고 팔아넘긴 두 가지 사업은 모두 소프트웨어적인 것이었다. ZIP2는 구글맵과 생활검색서비스를 결합한 형태의 서비스였고, 페이팔(과 x.com)은 최초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이었다. 1999년 Zip2가 컴팩에 3억 7백만 달러, 2002년 페이팔이 이베이에 15억 달러로로 매각되었을 때,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였던 그는 한마디로 부대로 아이를 나아 그 아이들이 대를 잇고 또 이어 대대로 놀고 먹고 살아도 중동의 왕자들처럼 호화롭게 살 수 있을만큼 떼부자가 되어있었다. 그것을 자신의 꿈을 위해 고스란히 재투자했다. 사람들은 2년이면 충분히 거지가 될 수 있을만한 곳에 그가 투자를 했다고 숙덕거렸다.


닷컴 열풍으로 zip2와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고안했지만, 자금란에 주식을 공유한 그는 실리콘밸리의 치고 빠지는 생태에 만족하지 못했고, 다음 번 프로젝트는 대충 포장해 재팔아먹는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대신,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이전부터 우주개발과 친환경에너지 산업에 관심이 있었던 그가 동시에 자신의 열정과 돈과 기술을 모두 던진 곳은 로켓 발사 회사인 스페이스엑스와 전기자동차 테슬러, 그리고 태양광에너지 설치회사에서 후에 태양광 전지 생산까지 맡게 되는 솔라시티 이렇게 세 가지다. 


SpaceX는 탑재물을 우주로 수송하는 업체로, 민간기업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기술적, 정치적, 범국가적 난관을 헤치고 이제껏 러시아와 중국에 의지했던 미국의 우주산업을 독립적으로 기술적, 경제적 경쟁력을 갖춘 주요 산업으로 발돋음할 수 있게 하는 회사다.  군수산업의 관료적 관습과 체계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저가격으로 우주 산업에 도전한 머스크의 행보는 한 마디로 미친짓이었다. '우주산업체를 경영하려면 자본주의의 근본을 해치는 정치, 상호이익추구, 보호무역주의 등의 혼란한 상황과 맞서야' 했으므로, 스페이스 엑스는 여러번 매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이제는 재사용가능 로켓을 시험중인 단계에 있다. 


테슬라는 이미 한 번 충전으로 300km 이상을 가는 고급 전기자동차를 양산하고 미국 전역과 유럽전역의 고속도로에 충전망을 설치한, 전기자동차회사다. 벤처투자자들에게는 망한다는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녹색사업에 투자하여, 수도 없는 난관을 극복하고, 그동안 장난감 차에 불과했던 전기자동차를 고급자동차로 탈바꿈시켰다. 테슬라 자동차는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일으킨 혁신과 비슷하다. 환경보호론자로서의 가치를 드려낼 수 있는 그의 차는 고급취향의 자동차광들을 만족시키면서 미래 정신과 지위를 나타낸다. 2012년 테슬러의 모델 S는 출시된 지 몇 달 만에 <모터트랜드> 선정 올해 최고의 차로 선정되었고, <컨슈머 리포트>에서 사상 최고점인 100점 만점 99점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곤두박질하는 상태에서 2008년 사상 최악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겪었던 상황에서 수십년동안 전기 자동차에 쏟아졌던 비난을 받으며 수없이 많은 파산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가까스러 만들어낸 성취다. 자동차를 딜러를 통해 판매하지 않고 고급 쇼핑 센터의 전문 매장에서 판매한다. 주요 고속도로에는 태양광으로 작동되는 테슬라의 무료충전소가 설치되어 20분 가량이면 수백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을만큼  충전할 수 있고, 이미 충전된 뱃터리팩을 90초만에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흔히 20세기의 기술 시대를 이끈 가장 빛나는 인물로 서로 상반되는 스티브잡스와 빌게이트를 들 수 있는데, 머스크는 이 '둘을 합쳐 개량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스티브 잡스의 소비자 감성을 지녔고, 빌 게이츠의 훌륭한 인재 발굴 능력을 겸비했다. 그들과 비교하는 이러한 평가는 너무 안일한 견해다. 그의 성취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미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그만큼 인간적인 면모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양면성이 존재한다. 기대 기업이 세계 각국의 하청업체로부터 물건을 이리 저리 조립하고 포장하여 군림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과감히 깨고, 그 기업 스스로 핵심 기술 뿐만 아니라 사소한 부품까지도 모두 개발, 양산하고자 하는 머스크의 야망은 일반인들에게 경험없고 야심만 가득한 미숙한 결정으로 보였다. 


우주 탐사를 열망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던 시기에 화성 탐사 계획을 조사중이던 그는 우주 산업 분야의 인재들을 골라 화성 탐사에 2천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을 발표한다. 처음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러시아에서 사서 로켓발사 하기로 했던 머스크는 가격이 맞지 않자, 몇개월동안 책을 읽고 공부하여 소형 위성과 연구 탑재물만 전문적으로 우주에 운반하는 시장을 겨냥해 아담한 크기의 로켓을 만들면 기존 로켓 발사 기업보다 싼 가격에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그것은 미친짓이었다. 머스크 식의 밀어부치기가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의 거듭된 실패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투자는 한 때 실리콘벨리에서 그를 주시하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주관련기업은 정부투자를 바탕으로 매우 관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고, 그는 그걸 깰 작정이었다. 기존 항공 우주 기업들은 경쟁하지 않았고, 지원을 받았으며, 필요 이상의 최대 성능을 지닌 비싼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관례도 깰 작정이었다. 


실제로 창업에서 첫 로켓의 발사까지 15개월의 일정을 세워 이 발사가 끝나자 바로 화성 여생을 시작하기로 했던 계획은 훗날, 거듭된 발사 실패와, 여러번의 파산 위기를 거쳐 머스크가 빈 털털이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로켓 발사에 1차, 2차, 3차 모두 실패로 이어지고 4차 발사에 성공하기 까지 무려 5년이 넘게 걸린 기간동안의 일들은 흥미진진한 소설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흥미롭다. 어찌보면 순진하고 미친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그의 캐릭터가 읽는 재미를 한몫한다. 전기 자동차에 대한 도전 역시 마찬가지다.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자금난에 아슬아슬한 얼음 위를 걸으면서 내일 로 도래하는 직원들 월급을 걱정했던 날들을 이겨내고, 이제 테슬라 자동차는 미래 자동차의 롤 모델이 되었다. 


미래 기술 혁명을 이끌 가장 빛나는 별. 현대의 기술적 진보의 부재 현상을 목격한 그가, 제조업에서 발을 빼고 고임금 정보 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닷컴의 몰락 시대를 겪으면서 설계한 미국의 미래는 이런 것이었으리라. 이제 SpaceX와 테슬라, 솔라시티 모두 모든 부품을 미국 내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면서도 국제적 가격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미래 산업을 직접 가이드해줄 모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갖춘 업체와 정부 선정 업체들의 방해공작들에 대해서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테슬라 자동차가 전기자동차의 양산 뿐만 아니라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기 에너지로 무료 충전 가능한 충전소를 전역에 설치했다는 글을 읽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봤다. 우리나라 테슬라 1호는 얼리아답타인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차가 좋아도, 충전소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화성에 가고 싶어 시작한 일들이지만, 실제로 그의 시대에 스페이스 엑스에서 발사한 우주 탐사선을 타고 화성에 가게 되는 사람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스페이스엑스의 활약은 눈부시다. 애플광은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삼성에서도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휴대폰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테슬라를 타는 얼리아답타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매연없이 소음없이 미끄러지듯 3초만에 100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테슬라와 경쟁하는 전기 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도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최초의 혁신은 인류의 모든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발화지점이고, 화석 원료에 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련된 환경적 우려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일론 머스크는 분명 흥미로운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기득권 속에서 꼼짝 달싹할 것 같지 않은 미래를 바꾸는 그 최초의 발화를 일구어낸 그의 업적은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하루 16시간이 넘는 노동과 해고 정신적 노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결결단력,  만족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까지 엔지니어들을 묶어서 일하게 하는 파워, 그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미래 사회에 대한 꿈과 야망을 잃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힘은 뭉쿨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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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6-05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화가 납니다. ㅎ, ㅅ(초성만 언급) 정치권 로비에 열올리지 말고 이런 거나 빨리 좀 하지...
최근 국내에 해양식물로 연료대체하는 기술 개발했다고 발표하던데 어느 세월에 상용화하겠나 싶고...

CREBBP 2015-06-05 07:40   좋아요 1 | URL
자동차산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부에서 보호를 받는 동안 우리는 저런 차들이 세계 각국을 굴러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수용으로는 수출용보다 훨씬 비싸고 성능도 떨어지는 현대 기아 차들을 애국자들처럼 몰고 다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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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대단하지 않은 거라도 마지막이라는 말이 붙으면 대단해진다. 대단한 작가의 마지막은 더 대단할 듯하다. 2012년, 절필을 선언한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띠지 노란색 표지만큼이나 강렬하다.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들을 골고루읽자주의지만 필립로스만큼은 예외다. 이 책도 놓칠 수는 없다. 











<척하는 삶>과 <생존자>, <만조의 바다위에서> 등을 카트에 두고 이제껏 읽지 못했는데,  1995년 첫장편인 영원한 이방인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출간되었다고 한다. 현 미국 문단의 선두에 선 대표적인 한국계 미국 작가이자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 이창래의 첫작품을 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로 만나보는 것도 의의있을 듯. 












 지난 달 여든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양철북>의 노벨상 수상작가  권터 그라스의 2002년 작품.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었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다. "945년 1월, 독일 피란민 9000여 명을 태우고 항해 중이던 구스틀로프호는 러시아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한다. 선장 넷을 비롯해 1000명 남짓만이 살아남은 이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었다. 독일 문단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귄터 그라스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다루어 온 작가다.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은 신나치주의 확산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사건이었다. 귄터 그라스는 정치적 함의나 해석에서 살짝 비켜서서 '게걸음'과 같은 방식으로, 옆으로 걸으면서 느릿느릿하게,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이 사건의 모든 면을 살펴보며 나아간다. (출판사 소개글>"





 살인자 마저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미야베 미유키의 2013년 작품으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표지와 제목의 미묘한 매력에 이끌려 선택!












"오늘날 고유명사가 된 '로봇'(robot)이라는 말을 만들어 세상에 처음으로 제시한 작품이 바로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발표한 이 희곡이다. 수많은 SF 작품들의 오리지널 모델인 '로봇'에 대해 당신이 상상할 수는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작품 속에 녹여져 있다.(출판사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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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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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함께 흐르는 공간이 있다. 아니. 엄격히 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항상 삶과 함께 한다. 즉, 우리가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대하는 죽음은 죽음 이후의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 세계가 아니라, 죽음이 곧 닥칠 공간과 시간에 대해 말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죽음을 말할 때, 그의 삶을 말한다.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곁으로 온다. 죽음의 공간 속에서 삶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삶의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회상하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가졌던 생각들 행동들을 되짚으며, 삶을 되돌아보기도 또 앞으로 상실과 더불어 죽음 후에 남게 될 사람들이 살게 될 삶을 생각한다. 죽음이 슬픈 건 그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삶이 남긴 편린들이 남겨진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건 남겨진 사람들의 아득한 삶 때문이고, 죽음이 슬픈 건 죽어 썩어질 몸 때문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던 사람의 삶이 기막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에서 만든 다큐들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만큼 잘 만든다. 드라마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성만큼 다큐들을 정성껏 만들었다면, 그렇게 찍고 또 찍고 완벽하게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스탭들이 1초1초 각 프레임에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면, 어느 곳에서건 감동을 자아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다큐에는 감정이 다소 많이 실려있다. 그것은 의도된 감정이다. 누군가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컥하는 순간이 올 것 같으면, 그 미묘한 콧날 찡끗, 눈물 핑 도는 표정을 기가막히게 포착해서 클로즈업을 감행한다. 울아들과 나는 스스로의 말이 저도 모르게 자아내는 감회가 가슴 깊이 묻혀 있던 한방울 눈물을 펌프질하는 순간을 기막히게 포착해 선명하기 짝이 없는 대형 HD 화면 가득 담아내는 카메라 감독이 잔인하다는 데 있어서는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본다. 잔인한 사람들이야. 못됐어. 그냥 두면 안울고 참고 넘어갔을텐데 콕콕 찔러 눈물을 내야 하는 거냐구!!!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보내드리고 나서, 나는 나의 현재의 삶, 나의 과거의 삶, 아버지의 과거의 삶, 아버지가 관계맺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지, 아버지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분이지만 살아 계셨을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추억들을 돌이키고 더욱 애틋한 마음을 품는 까닭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내 삶이 아버지의 삶 속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까닭이 그분의 아낌없는 사랑이었는데 그걸 이제껏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맞다. 우리에게 죽음은 삶이다. 삶은 삶인데, 현재에는 실체로서 안을 수 없는 상실을 대신해 끊임없이 삶 속으로,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삶이다. 


첫장, 둘째장은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도 TV로 보았다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을 것이다. 책이었어도 다를 건 없었다. 읽다가 참을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넘겼다. 그런데, 사실 너무나도 소소한 것들조차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 끝에 도달한 사람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끝이라는 것의 의미조차도 무의미해지는 시간들을 남기고, 그들은 가족들과 이별의 준비를 한다. 이별파티라고 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로 써서 주고 받는다. 그리고 실컷 운다. 그런 걸 어찌 TV로 보고 있을 수 있나. 글조차도 너무 힘들다. 


마리아의작은자매회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십자가에 못박힌 에수님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했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고통 속에 계신 분과 함께 하는 수도회(p179)’다. 한국에 들어온지 5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회원이 50명도 되지 않는, ‘인생의 가장 내밀한 그 순간, 가장 큰 슬픔의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과 하께 하는 작고 겸손한 수도회(p179)’다. 그리고 갈바리의원은 카톨릭 종교단체이기도 하면서 마리아의작은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치유보다는 삶의 마지막을 편안히 해주는 데 목적이 있는 병원이다. 통증이 잘 조절되므로,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마지막 한 줌 남은 숨까지 모두 합쳐 남은 투병에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 더 할 시간을 갖는다. 그러니까 생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면 냉정한 선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 조금은 덜 아프게, 조금은 더 많이 준비하면서..


한국 카톨릭 매스컴상(방송부문)과 휴스턴 국제영화제 종교프로그램 대상을 수상한 KBS 다큐 블루베일의 시간을 문자화한 책이다. 작가 윤이경은 다큐 제작 뿐만 아니라, 소설가로 등단하고 김유정문학상까지 받은 문학가이기에, 잔잔한 필치의 문장 역시 돋보인다. 이곳에서 평생 봉사하는 수녀님들을 인터뷰한 여섯번째 이야기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수녀님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가 일상속에서 놓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삶의 일부이며, 언젠가는 누구라도 거치는 길임을 생각할 때, 가끔은 그 죽음에 대해 너무나도 강박적인 두려움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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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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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와 유부남을 태운 2인승 비행기에서 경착륙을 하자, 여자는 응급대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집이 어디인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불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이 여자는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기억상실증을 흉내냈지만, 잘 해내지 못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의 두번째 모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여왕을 거꾸로 사는 것으로 상상했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거꾸로 사는 것의 이점은 기억이 양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기억이 뒤로만 작용한다면 그건 형편없는 기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 속에서 여왕이 옳다고 말한다. ‘기억은 앞으로 또 뒤로,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선행기억은 앞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이고, 역행기억은 뒤로 작용하며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도 잃는다(p112)’. 비행기 추락 후, 기억 상실증을 연기하는 그녀는 자기 이름은 몰라도, 나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자기 인식이 가능했고, 그로 인해 로퍼 박사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 말이 산통을 깨고 만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나오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은 의학적인 설명이 더 필요한 듯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심폐소생술에 의해 간신히 뇌손상을 입은채 살아난 한 환자는 중뇌 측두엽에 혈류가 낮아 생긴 역행 및 선행 기억상실로 영구적인 기억상실인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맞닥뜨렸다. 그에게 시간은 영원히 1960년이었고, 30초 이상 기억을 간직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작화증을 함께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들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기억의 간극을 메워서 보상한다. 


넘어져서 실려온 한 환자는 진탕성 기억상실을 보였다. 환자의 의식은 상실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 해의 기억 대부분과 과거 30년의 기억 중 일부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살아온 과거를 정확하게 이야기했으나 최근 그녀의 가족이 죽은 사실과 대부분의 1년전의 기억을 잃었다. 그녀 역시 30초 이상 의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름을 가르쳐 주면 매번 똑같이 대답할 뿐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운전 중 원형 로터리에 빠지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해 영원히 그곳을 돌다가 경찰이 주목한 후에야 그곳을 빠져나온다. 


이 책을 쓴 앨런 로퍼 교수는 현재는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며 보스톤에 위치한 브리검 여성병원의 신경의학부 최고 임상의이다. 영화배우 마이클 J 폭스의 알츠하이머 치료를 담당한 의사이기도 한 그가 낸 책은, 임상 기록에 가까운 책이다. 물론 그의 전공이 신경의학인 관계로 두뇌와 관련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는 <두뇌와의 대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현장의 올리버 색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제목에서 올리버 색스와 비슷한 톤의 목소리를 기대했다면 기대와는 다르다. 미국 드라마 ER이나 닥터 하우스(House M.D)에 더 가깝다. 병원은 항상 응급 환자들로 시끌 벅적하고 시간을 다투는 처치와 순간적이고도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 생명까지도 좌우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룬다. 모든 병원의 의사가 한가하게 한 개인의 모든 사적인 영역을 조사하고 탐구하여 위대한 통찰에 이를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수의 환자를 미국의 의료제도 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하여 가장 최적의 치료를 이루는 것이 대부분 임상의의 목표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앨런 로퍼 교수가 평생을 통해 보아온 환자들 최근의 환자 혹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환자들에 신경의학에 관련된 많은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즉, 환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특정 질병을 가진 많은 환자들 중의 하나로서, 질병 자체와 그 치료에 관련된 병원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신경과의 수많은 질병들을 만난다. 그것은 뇌가 하는 일, ‘언어와 감각과 감정, 걷는 것과 넘어지는 것, 약함과 떨림, 신체 동작의 조화, 기억력과 정신능력, 발달지연, 불안과 고통, 스트레스, 심지어는 죽음(p15)’과도 연결되는 수많은 이상 증상들이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과 그와 수반되는 모든 신체적 활동이 뇌와 연결된 신경들이 작용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가 다루는 임상의 범위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속한 브리검 여성병원에 실려오는 환자들에 대해 의사들은 환자들의 증상 몇가지 인터뷰들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질병의 원인을 추리하고 빠른 판단으로 어떤 처치를 내릴지, 또 어떤 추가 검사를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정 과정에는 물론 필연적으로 실수가 뒤따른다. 의사들은 그러한 실수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갑자기 다리에서 시작된 마비가 몇 일만에 온몸으로 퍼지는 경험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코너웨이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갈랑바레증후군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그에 따른 처치를 하고 있었지만, 열이 있고 백혈구가 높다는 사실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MRI 사진의 위쪽에 위치한 지름 3밀리미터의 작은 점들을 주목하지 못한 채 진짜 질병인 척수경막외농양의 진단을 놓쳤고, 그는 몇일 만에 죽었다. 어차피 알았어도 살지 못한 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변명처럼 들렸다. 이런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인 이상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 즉 공개적으로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알지만,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p313)


레지던트들이 병원에서 의료 행위를 하면서 가장 마지막에 익히는 기술은 많은 면에서 중요하고 또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환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실행력이다. 전국 최고의 손 수술 전문의가 새벽 2시에 와서 환자의 손을 접합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가 시력을 잃기 전에 시신경에서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면 전화를 걸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p316).


신경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것들을 생동감있게 전해주는 이 책은, 간호학이나 의학 혹은 병원이나 요양 시설 등의 의료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도서라고 보여진다. House MD가 질병을 추적할 때 수많은 가능성에서 하나의 질병으로 마치 범인을 추적하듯 추적해나가는 것처럼, 실제 의료진들은 병원에 도착한 수많은 환자들의 증상을 바탕으로 몇가지 질문과 몇 가지 검사만으로 빠르게 어떤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어떤 처치가 필요한지를 결정한다. 이 결정과정 중에서 잘못된 진술, 잘못된 판단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기도 하고, 환자에게 영원한 장애를 갖게 하기도 한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인 개인에게 의사는 목숨을 맡긴 신이다. 때로 잔인하기도 한 의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이 책은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결정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가를 잘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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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서정오 지음, 이우정 그림 / 현암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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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몇달 전 읽은 그림 이야기와 천일야화가 함께 생각나서, 이렇게 우리 옛 이야기를 수집하고 책을 내신 분에 대해 다소 감동했고, 수집 과정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얼마 전 글쓰기 강연회에서 글쓰기 관련된 유튜브 강연이 있었다. 이 책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교육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라고 언급하면서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의 '안전교육'이라는 폭력이 아이들을 어떻게 희생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수집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는 않았지만, 강의의 주제가 책의 내용과 통하는 데가 있어서 긴 내용을 모두 보았다. 


서정오님이 옛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옛이야기는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전승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옛이야기를 출판할 때에는 어떤 이유나 의도를 가지고 편집되어서 거기에 '우리 옛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면 기나긴 민중의 역사를 왜곡할 수가 있다. 옛이야기는 작가 마음대로 고치지 말아야 하며, 그 모습 그대로 전해져야 하느냐. 작가가 옛이야기를 고칠 때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까닭이 있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것을 역사의식이라고 이야기했고, 서정오님 스스로는 강의에서 민중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예로 교과서에 실린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이야기가 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1963년 처음 교과서에 실렸지만 그 이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단골 소재로 계속 실렸고,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그것은 국민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저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63년에 처음 실린 그 이야기의 출처는 1980년에 출판된 저서로 되어 있고, 그 이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때 출판된 여러권의 중요한 한국전래동화집에서는 이 이야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문헌을 뒤진 결과 '소가 된 게으름뱅이' 대신 '소가 된 사람 이야기'가 많은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 옛 이야기 속에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일반 머슴이 여우가 둔갑한 노인이 준 떡을 먹고 소가 된다. 소가 된 사람은 무 또는 배추를 먹이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는 그것을 먹고 다시 사람이 되어 노인을 찾아간다. 노인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 떡을 자기가 먹어보고, 본인이 소가 되고, 머슴은 그 소를 장에 팔아 잘먹고 잘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의문은 왜, 어떻게 1963년 처음 교과서에 실리기 전의 우리 구전 문학과 전래 문학의 문헌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렸느냐는 거다. 우리가 가진 증거로는 주인공이 소가 되는 과정은 요물한테 홀려서 즉 남의 술수에 넘어가 소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게으름을 피우면 소가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이야기다. 남을 부리는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에게 게으름피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지런히 일하라, 게으름피지 말아라 라고 말했을 때 그 저의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로 나와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 옛 이야기는 부지런해라, 게으름피우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게으름뱅이가 벌을 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게으름뱅이가 그 게으름뱅이 그 상태 그대로 복받아 잘사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어린애가 아니다. 부지런하게 살지, 게으르게 살지는 자신이 쌓아온 가치관에 따라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공교육을 통해 억지로 배워야 하는 가치가 아니다. 지배 세력의 이익을 위한 메시지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그치고 윽발지른다면 문학이 문학이 아니다. 값진 교훈일수록 그것을 이야기 뒤에 숨겨놓지, 값싸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10이면 10 똑같은 교훈을 받는다면, 그것은 옛사람들에 의해 오래도록 전달되어 온 스토리가 아니라, 즉, 교과서 상에서 교훈을 강제하는 메시지는 어떤 의도에 의해 한사람의 작가에 의해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다시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독자인 우리들은 교과서에 쓰여진 옛이야기를 읽을 때, 그것들을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문학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해석을 동시에 내릴 수 있도록 메시지가 내용 뒤에 숨겨져 있어야 하고, 놀이로서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 방구쟁이, 게으름뱅이, 느림보, 바보 등의 주인공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즐기고 스스로 결정하는 이야기, 그것이다. 서정오님이 연구한 우리나라 글의 바보들의 특징은 바보로서 삶을 즐기고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바보라는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나가야 하는 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나라 이야기들 속에서 발견되는 바보들, 모자라는 사람들, 삶의 가치를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는 우리 이야기들이다. 이상이 서정오님의 강의에서 하신 말씀을 요약한 내용이다. 비록 이야기 수집에 관련된 일화는 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 옛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의 변형에 관련된 우려 같은 더욱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개정판으로, 오래 전에 60여가지의 이야기를 주제로 나왔고,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으로 번역되어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림이 수집한 270가지의 동화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재미면에서는 더 이야기가 풍부하고, 더욱 서민적이고 민중적이다. 아주아주 가난한 사람들, 부모를 일찍 여읜 형제 자매들,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다. 임금이나 왕자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신데렐라와 숲속 공주처럼, 떠돌이 왕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하거나, 계모에게 오랫동안 구박을 받는 이야기들보다는, 모험과 기적, 인연과 응보, 우연한 행운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몹시도 가난하지만, 생각 없이 남 혹은 정승, 짐승 혹은 도깨비 등을 도와 자신은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되었으나, 후에 보답으로 큰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늙도록 잘살았다로 끝맺는다. 호랑이와 같은 동물이, 사람처럼 말도 하고, 행동도 하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복을 주는가 하면, 너무 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한 총각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깨비며 호랑이들이 은혜를 베풀기도 한다. 


1편, 2편으로 두 편에 걸쳐 구성되어 있고, 우리 옛이야기라 어린이가 있으면 한 편 한편 읽어주면 100일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으나, 어른이 우리의 민속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는것도 무척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속 이야기를 동화가 아닌 자료, 혹은 성인용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을 읽고 싶었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이 책이 존재하고 있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그림이 어떤 경위로 그들의 구전 민담을 수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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