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삶과 죽음이 함께 흐르는 공간이 있다. 아니. 엄격히 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항상 삶과 함께 한다. 즉, 우리가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대하는 죽음은 죽음 이후의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 세계가 아니라, 죽음이 곧 닥칠 공간과 시간에 대해 말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죽음을 말할 때, 그의 삶을 말한다.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곁으로 온다. 죽음의 공간 속에서 삶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삶의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회상하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가졌던 생각들 행동들을 되짚으며, 삶을 되돌아보기도 또 앞으로 상실과 더불어 죽음 후에 남게 될 사람들이 살게 될 삶을 생각한다. 죽음이 슬픈 건 그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삶이 남긴 편린들이 남겨진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건 남겨진 사람들의 아득한 삶 때문이고, 죽음이 슬픈 건 죽어 썩어질 몸 때문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던 사람의 삶이 기막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에서 만든 다큐들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만큼 잘 만든다. 드라마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성만큼 다큐들을 정성껏 만들었다면, 그렇게 찍고 또 찍고 완벽하게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스탭들이 1초1초 각 프레임에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면, 어느 곳에서건 감동을 자아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다큐에는 감정이 다소 많이 실려있다. 그것은 의도된 감정이다. 누군가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컥하는 순간이 올 것 같으면, 그 미묘한 콧날 찡끗, 눈물 핑 도는 표정을 기가막히게 포착해서 클로즈업을 감행한다. 울아들과 나는 스스로의 말이 저도 모르게 자아내는 감회가 가슴 깊이 묻혀 있던 한방울 눈물을 펌프질하는 순간을 기막히게 포착해 선명하기 짝이 없는 대형 HD 화면 가득 담아내는 카메라 감독이 잔인하다는 데 있어서는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본다. 잔인한 사람들이야. 못됐어. 그냥 두면 안울고 참고 넘어갔을텐데 콕콕 찔러 눈물을 내야 하는 거냐구!!!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보내드리고 나서, 나는 나의 현재의 삶, 나의 과거의 삶, 아버지의 과거의 삶, 아버지가 관계맺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지, 아버지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분이지만 살아 계셨을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추억들을 돌이키고 더욱 애틋한 마음을 품는 까닭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내 삶이 아버지의 삶 속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까닭이 그분의 아낌없는 사랑이었는데 그걸 이제껏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맞다. 우리에게 죽음은 삶이다. 삶은 삶인데, 현재에는 실체로서 안을 수 없는 상실을 대신해 끊임없이 삶 속으로,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삶이다. 


첫장, 둘째장은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도 TV로 보았다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을 것이다. 책이었어도 다를 건 없었다. 읽다가 참을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넘겼다. 그런데, 사실 너무나도 소소한 것들조차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 끝에 도달한 사람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끝이라는 것의 의미조차도 무의미해지는 시간들을 남기고, 그들은 가족들과 이별의 준비를 한다. 이별파티라고 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로 써서 주고 받는다. 그리고 실컷 운다. 그런 걸 어찌 TV로 보고 있을 수 있나. 글조차도 너무 힘들다. 


마리아의작은자매회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십자가에 못박힌 에수님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했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고통 속에 계신 분과 함께 하는 수도회(p179)’다. 한국에 들어온지 5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회원이 50명도 되지 않는, ‘인생의 가장 내밀한 그 순간, 가장 큰 슬픔의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과 하께 하는 작고 겸손한 수도회(p179)’다. 그리고 갈바리의원은 카톨릭 종교단체이기도 하면서 마리아의작은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치유보다는 삶의 마지막을 편안히 해주는 데 목적이 있는 병원이다. 통증이 잘 조절되므로,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마지막 한 줌 남은 숨까지 모두 합쳐 남은 투병에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 더 할 시간을 갖는다. 그러니까 생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면 냉정한 선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 조금은 덜 아프게, 조금은 더 많이 준비하면서..


한국 카톨릭 매스컴상(방송부문)과 휴스턴 국제영화제 종교프로그램 대상을 수상한 KBS 다큐 블루베일의 시간을 문자화한 책이다. 작가 윤이경은 다큐 제작 뿐만 아니라, 소설가로 등단하고 김유정문학상까지 받은 문학가이기에, 잔잔한 필치의 문장 역시 돋보인다. 이곳에서 평생 봉사하는 수녀님들을 인터뷰한 여섯번째 이야기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수녀님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가 일상속에서 놓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삶의 일부이며, 언젠가는 누구라도 거치는 길임을 생각할 때, 가끔은 그 죽음에 대해 너무나도 강박적인 두려움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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