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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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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