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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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의 입장에 서본 사람은 그 과정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혹평을 할 수가 없다. 아마추어 소설가의 소설 속에도 마음에 남아서 맴도는 문장이 있기에 나는 독서를 할 때는 형광펜이나 플래그 등을 준비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문장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2021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꽤 많은 색깔의 플래그가 붙여졌다. 반은 작품 속 문장이었고, 나머지는 작가노트에 적힌 작가의 고백이었다.

- 어쩌면 어떤 찰나들은 너무도 결정적인 동시에 사소해서, 눈치 채지도 못한 사이 내 안쪽 어딘가에 박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다는 것. 우리는 이런 우리가 되었다는 것. 혹은 되어버렸다는 것. 내가 그 찰나들을 붙잡아 기록해둔다면. 나의 소설쓰기가 그런 작업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33.p

문학상 수상작품을 읽을 때는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말을 눈여겨본다. 문진영 작가의 고백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았다. 얼마나 많은 경험들이 내 마음속에 숨어있을까. 나도 찰나의 선택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혀 지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나의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쓰고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개의 방>을 읽으면서 중학교 1학년 때, 은미처럼 늦잠을 자다가 1교시가 지나고 등교를 해서 반 전체를 즐겁게 해주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호텔지배인이 되어 있는 멋진 내 친구는 지금도 잠이 많아 출근할 때 늘 힘들어 한다. 작품 속 한 문장만으로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소환해낼 수 있다니.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종로와 북아현동, 광화문과 신촌 거리 곳곳에는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의 골목들과 카페, 상점 거리 곳곳이 앞에서 보는 듯 눈에 선하다. <두 개의 방>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많이 웃었다. 소설이 있음직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 위에 나의 이야기를 덧씌울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수상작보다 내게 더 와 닿은 작품은 정용준의 <미스터 심플>과 손흥규의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함께 고민하던 연인이 곧이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고, 어학연수를 떠난 부인과 아들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외면당한 뒤, 주어진 시간을 혼자 통과해야 하는 사람은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소설은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답은 없지만, 각자만의 해답이 있는 것처럼.

-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상처받은 이의 얼굴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할 일을 할 것이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지낼 것이다. 215.p <정용준/미스터 심플 중>

그래서 자기의 일상을 지키고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두 사람이 보였다.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의 아버지는 가족의 안위와 생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 시절 가장들은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삼촌보다 오로지 먹고 사는 것과 가족의 생계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시간 속에 남겨져 있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참 좋았다. 그런 형에게도 집나간 이복동생을 찾아 헤매는 순수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전부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윤대녕의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는 읽는 동안 내내 반가웠다. 대화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의 대화가 맞나 하고 의아해했지만, 젊은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써 문장을 다듬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 외 <완전한 사과/ 안보윤>도 기억에 남는다. 타인에게 해를 입힌 나의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나의 가족이라 해서 무조건 잘못을 덮어줄 수 없다는 것. 그뿐 아니라 가족은 보이지 않는 뿌리로 깊이 이어져 있기에 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다함께 공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공감한다. <완전한 사과>를 비롯하여 단편집<<소년7의 고백>>에서 보여주는 안보윤 작가의 세상을 향한 시선과 치열함에 독자로서 존경심을 느낀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을 읽으며 제목이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다가왔다.

- 우리는 이루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낯설고 우스꽝스러워서 곧잘 웃는다. …… 너희는 냄새로 시간의 변화를 알아채는 종족이니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들리지 않는 귀로도 불편한 다리로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어. 갈 수 있다. 나는 웃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를 주시하면서 기억하면서 길을 간다. 나는 길을 간다. 예정된 상실을 조금씩 미루면서. 나는 길을 간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과 함께. 196.p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중>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에서는 가난한 두 젊은 남녀의 일상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추위와 오래된 집이 두 사람의 현실같았다. '두 사람의 지금 현재의 삶'이 여기 얼음통 속에서 꽁꽁 얼어버렸고, 얼마 안 있으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 지난겨울 그토록 춥지만 않았어도 한 시절의 고비를 극복하고자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사랑이 줄줄 새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텐데. 273.p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다양한 경험, 인생 등을 문장 속에 녹이며 계속 쓰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마주한 시간을 통과하며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쓰는 동안 외롭거나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쓰기를 포기할 수 없어 밤새도록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작가들을 응원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든 사람들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기에. 다음해에도 기꺼이 읽어줄 마음을 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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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1-03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인덱스 많이 붙이셨네요.^^
문학상 수상작들은 장편이 적지만 여러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hope&joy님, 좋은 밤 되세요.^^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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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무탈하시길 빌며, 작별하지 않으며

감사를 담아, " 2021년 가을에 한강

책을 펼치니 강물이 흘러가는 글씨체로 무탈하시길,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글씨가 써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란 참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을 알면서도'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때때로 작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명을 받은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주로 책을 읽었던 늦은 밤에서 자정을 넘기고 잠자리에 들면 나도 모르고 등이 시리고 떨려오곤 했다. 그만큼 한강 작가의 문장을 차분하면서도 한기가 서늘한 무언가를 남긴다.

처음 1부를 읽을 때는 끈적끈적한 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땀과 더운 공기 속에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지만, 그 차가움은 곧 더위 속으로 끌려가고 또다시 땀범벅 속으로 끌고 간다. 주인공이 그 속에서 숨이 막히고 힘들 때마다 그것을 읽는 독자도 힘들고 숨이 막혔다.

욕실을 나와 젖은 옷을 벗고, 아직 버리지 않은 옷 더미 속에서 쓸 만한 걸 찾아 입었다. 만원권 지페 두 장을 여러 번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현관을 나섰다. 가까운 전철연 뒤편의 죽집까지 걸어가 가장 부드러워 보이는 잣죽을 시켰다.. 지나치게 뜨거운 그걸 천천히 먹는 동안,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15.p

그러다 또다시 친구 인선의 병문안을 가고, 그곳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친구의 고통과 3분마다 날카로운 주사바늘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찔러야 하는 것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크고 작은 고통이 두 사람 곳곳에 배어 있다. 사람들의 삶을 비집고 자리잡는다.

다시 2부는 제주도의 눈과 바람, 어둠속 공포와 밀려오는 두통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며 지금 경하와 인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경하가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집까지 찾아가는 여정 마저도 독자를 힘들게 한다. 마치 캄캄한 어둠과 추위를 견디며 낯선 제주도 산속을 헤매는 듯한 두려움이 계속 가시질 않았다.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172.p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 죽이려고 하는 자와 끝까지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가.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정당성있는 폭력이었다고 주장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왜 죽어야 했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애도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와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몰랐다고 외면하고 그래서 앞으로 잘 처리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왜 인선의 엄마는 오빠를 잃어야했을까. 그 작은 체구로 어떤 진실을 찾아내려고 애썼는지 같이 들여다 봐야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낸 시간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일지라도 그것은 나와 내 가족, 친구,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에게 돌아온다. 경하가 잡지사 일을 하다가 인선을 만나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손을 다친 인선이 이웃의 할머니 모자의 우연한 방문으로 서울 병원까지 오게 되고, 오전에 서울에서 씨름하던 주인공이 인선의 새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 제주도 숲속을 헤매기까지 우린 모두 알 수 없는 존재와 시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살아가지만 영원히 잊을 수도 작별할 수도 없는 이유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위로를 받는다.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되면 저절로 놓아지겠지. 날아갈 때가 되면 훨훨 날아가겠지. 그때까지 작가와 독자는 아프게 쓰고, 읽으며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다. 한강의 소설은 거기까지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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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작 축하드려요!

hope&joy 2021-11-05 16:39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hope&joy 2021-11-05 18:5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

초딩 2021-11-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ope&joy 2021-11-07 12:51   좋아요 0 | URL
네ᆢ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도세요.
 
알라딘 커피 선물 세트 - 10g, 24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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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물용으로 참 좋아요.
커피 구성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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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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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작가의 《날마다 만우절》
그냥 스치고 지나갈 풍경같은 존재들에게 서사를 주고 마음을 담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소설.
우리 곁을 떠나간 그리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준 단편들!

그 중 내 마음에 가장 기억되는 단편은 역시 <날마다 만우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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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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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 나도 모르게 인간 내면에 잠재하는 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방송에 출연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2년 동안 집에서 소설 집필에만 몰두했던 시간들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작가의 노력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소설은 주관적 장르이기에 정신의학적 지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과 악을 오가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문제적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밤은 1부까지 읽고 자야지.’라고 했던 다짐이 첫 장을 읽는 동안 불면 속으로 사라졌다. 몇 년 만에 밤을 새어 날이 밝아올 때까지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났을 때의 질문과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선과 악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는지,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고 갈라지는지. 그런 면에서 인간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제목처럼 행복하기를 꿈꾸며 각자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간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완전한이란 단어를 붙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 자체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떨어져 나가고 희생되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떠올리며, ‘완전이란 단어가 불행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금지되었던 선악과에 손을 댄 후로 인간은 계속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도전하고 좌절한다. 바로 그 때가 악한 본성이 우리 안에서 신이 될 수 있다고 꿈틀대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신으로 삼고, 그 속에 매몰되어 타인을 죽음까지 끌고 가는 악력이 무서웠다.

 

-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112~113.p

 

 

  행복에 대하여 묻는 남편의 질문에 모든 사건을 끌고 나가는 유나의 대답이 소름끼친다. 완전한 행복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 자신은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그녀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며 살아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스트이면서 사이코패스인 유나가 밉지 않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은 그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본인 또한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그녀 안의 광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괴롭히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유나와 그들은 불행해졌다.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유나 안에 잠재된 악한 본성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장 친밀하고 약한 여섯 살 먹은 딸 지유이다.

 

 

-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해준 적도 없었다. 지유는 가차 없이 벌을 받아야 했다. 고아가 되는 벌이었다. 31.p

 

 

  엄마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어린 딸을 조정하고 움직일 수 있었을 테니까.

 

 

  만약에 유나가 아닌 언니 재인이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부모와 떨어진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가 엄격하게 다루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정을 더해 키웠다면 유나의 성격은 달라졌을까. 왠지 잘 모르겠지만 상황에 대한 경중이 다를 뿐 유나의 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고, 감정의 찌꺼기가 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 만 같았다. 그것은 유나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유나가 완전한 행복을 위해 가차 없이 뺄셈을 하는 동안 어린 지유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지유의 영혼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어느 새 텅 빈 채 사라지고 말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린 영혼을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옆에서 격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오롯이 그 길을 살아내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딸 지유는 타인이 자신을 향해 베푼 사랑과 따뜻한 선의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을 무릅쓰면서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악한 본성에 비해 선한 본성이 절대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는 우리에게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함과 동시에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동안 자의든 타의든 우리 모두는 각자 세상의 중심이자 특별한 존재라고 주문을 걸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무시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괴로워하거나 분노했다. 그 에너지가 어느 쪽을 향해 나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이쯤에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 자신, 현재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존재이나 언젠가 한 줌 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너무 완전해 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편하게 내 주위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나 자신과 세상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악한 본성만큼 우리 내면에 자리한 선한 본성도 힘이 세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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