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멘 호수.백마의 기사.프시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4
테오도어 슈토름 지음, 배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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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테오도어 슈토름의 <임멘 호수>

 

 

  ‘테오도어 슈토름이란 작가와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다양한 작품을 추천받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책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세상의 모든 작품을 만날 수 없기에 다양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한편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그것이 마음속에 살포시 다가와 울림을 주고 가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임멘 호수>처럼.

 

 노인이 된 라인하르트가 날이 저물어가는 저녁, 안락의자에 앉아 액자 속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부른다. “엘리자베트!” 그녀의 이름은 그가 청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자 통로이다. 그 이름의 부름은 시작부터 정신이 번뜩 나고 뒤에 펼쳐질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흔한 문학작품의 주제인 사랑과 이별, 그로인한 상처와 그리움이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지만, 가슴에 남는 애련함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노인이 된 한 남자의 고백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헤어짐은 잡을 수 없는 시간과 청춘에 대한 시가 된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을 쫓아가다보면 함께 숲속을 헤매기도 하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사라져가는 청춘이 마냥 아쉬워 지기도 한다.

 

 

 나무딸기 덤불과 가시나무가 사방 천지에 엉켜 있었다. 공기 중에는 짧은 풀과 번갈아가며 들판의 빈자리를 뒤덮고 있는 에리카 꽃의 강렬한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여긴 너무 외로워.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엘리자베트가 말했다.                                19

 

 

 딸기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간 어린 연인은 함께 시냇물을 건너고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지만 원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그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라인하르트는 연인의 머리위에 내려앉은 정오의 햇살을 기억하고 그녀를 위한 시를 지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숲속이 고요해지자 엘리자베트는 외로워했다사랑하는 청춘 남녀에게 주어지는 시험이란 서로가 떨어져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진 연인이라면 시간의 무게만큼 많이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에 오래된 노트가 있어. 거기에 온갖 노래와 시를 써넣곤 했지.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야. 책갈피에 에리카 꽃 하나가 꽂혀 있어. 하지만 시든 거지. 그걸 누가 나한테 줬는지 알아.” …… 엘리자베트, 저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이 있었어. 그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그가 말했다.                                                                                                                 52

 

 

 그는 이제 다시 노래와 시를 쓰지 않는다. 시와 노래를 썼던 노트와 시든 에리카 꽃은 두 사람의 지나가버린 청춘처럼 빛이 바랬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간절해질 수도 있다. 한 여자를 위해 노래와 시를 썼던 젊은 청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시로 떠난 애인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게 된 한 여자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갔을까.

 

 

 사랑이나 연인 대신 다른 말들을 대신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 , 하늘, 바람, 구름, 추억, , 등등 말이다. 나부터 바쁘게 살아가면서 이렇게 좋은 것들을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 없다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상의 우리들에게 누군가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이 있었어. 그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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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히스토리를 한눈에 보게 되었습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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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19주년이 되었다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좋은 책들이 많이 출판ㆍ 유통되고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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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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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림이 만날 때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6호선 봉화산역에서 한강진역까지, 7호선 상봉역에서 숭실대입구역까지 그리고 광화문의 많은 카페와 병원대기실에서까지 이 책을 읽었다. 형광펜을 들고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앞좌석을 바라보았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였다. 친구가 늦게 도착해도 화나지 않았고, 성대 폴립이 생겨 대형병원에 가서 진료시간을 기다릴 때도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떨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그림과 연결시킨 독서 감상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강도로 압력을 가해올 때, 그 버거운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그림이 되어 마음속 풍경으로 간직된다. 5.p

 

  글머리에 쓰여 있는 작가의 말이 나에게 와 닿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한 권의 책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준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혹은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 뿐만은 아니라 또 있었다는 사실이 흥분하고 욱했던 감정을 가라앉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책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림에 대한 작가의 고백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소개한 책과 그림 중 내가 읽은 책이나 좋아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 독자로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그 책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할 때는 마치 그녀와 책에 대하여 수다를 떠는 것 같았고,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 다시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모습, 상황, 정서 등도 함께 떠올랐다. 여름밤 큰마음 먹고 산 <토지>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 문학에서 최서희라는 가장 멋진 여성 캐릭터를 발견했던 기쁨도 떠올랐고, 시간을 쪼개어 대학원 과제를 제출했던 <변신>을 통해 고된 일과 속에서 쉬고 싶었던 은행원 카프카를 떠올렸던 일도 생각났다. 작가가 밝힌 대로 <제인 에어>의 마지막 부분이 그렇게 끝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림과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을 연결시키고, 한 편의 글로 엮어낸 작가의 안목과 필력이 뛰어나서 놀랐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림을 감상할 때 나는 어떤 작품을 떠올릴까. 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본다빈치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전에 다녀왔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재현한 전시회에서 몽마르트 가든을 보았을 때 저절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환상적인 숲속 어딘가에서 요정들이 나올 것 같고, 청춘남녀들이 잠들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학과 그림은 우리의 상상의 세계를 풍성하게 해준다. 그것은 영혼이 피폐해질 때 가장 귀한 치료약이 되어 준다. 마치 프레드릭이 친구들에게 컴컴하고 지루한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따뜻한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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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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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에 판타지가 찾아올 때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바닷가의 방>

 

 

  이 소설은 호퍼의 그림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호퍼의 그림을 보고 한 편의 단편을 써 낸 작가의 힘은 대단하다. 예술은 서로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받으면서 발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예술 안에 아름다움과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호퍼는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입고 있는 화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그림 중 호텔방에서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있는 <혼자 있지 않은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여자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가장 편한 복장으로 독서의 빠져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때론 내 모습 같기도 하다. 나도 이 그림을 보며, 소설을 쓰고 싶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퍼가 <바닷가의 방>을 보고 소설을 썼던 것처럼.

 

 

- 통상적인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일들은 항상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묻히는 것뿐이라고 칼레타는 말했다. …… 어머니 덕분에 카먼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설명할 수 없어서 더 진실하고 강력한 것임을 이해했다. 커갈수록 어머니의 순환 논리와 상상의 나래에 익숙해져갔다. 114.p

 

 

  텅 빈 방안에 햇빛이 가득 찼다. 한 쪽은 뻥 뚫린 채로 푸르른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햇빛과 바다와 방안에서 우리의 상상은 나래를 펴고, 판타지는 시작된다. 우리가 판타지를 잃어버리고 물리법칙에 어긋난 삶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언제 부터인가 보이는 것만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구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환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만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칼레타의 말처럼 설명할 수 없어서 더 진실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간다.

 

 

- “ …… 난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람이 좋아. 진정한 자아를 배신하지 않는 사람. 파비우스가 이곳에 온 뒤 처음 몇 달 동안, 난 그가 먼저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가 결코 그러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 문득 그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점을 존중했어. 네가 그에 대해 캐물으려 하면, 카먼, 그 사람은 뒤로 물러날 거야. 사라져버릴 거야.” 121.p

 

 

 

 카먼은 파비우스가 해산물 가득한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는 지상에서의 삶을 포기한 후 일 년 동안 해양생물로 살아가는 미스터리한 것이었다. 우리는 날마다 죽고 또다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누구나 마음에 자기만의 비밀과 신비한 것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다만 자신이 무언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끝이지만 끝이 아니고,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 우리 곁에 혹은 어딘가에서 무엇이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현실의 모순과 탁월한 이론, 혹은 사이비 교주나 유혹 등에 쉽게 매혹당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는 자기만의 또 다른 세계가 마음속에 있으니까. 파비우스와 그 전 사람들이 바다로 돌아가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옆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힘차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힘이 될 것이다. 호퍼와 니컬러스 크리스토퍼가의 <바닷가의 방>과 또 다른 그림과 소설들이 보여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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