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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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림이 만날 때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6호선 봉화산역에서 한강진역까지, 7호선 상봉역에서 숭실대입구역까지 그리고 광화문의 많은 카페와 병원대기실에서까지 이 책을 읽었다. 형광펜을 들고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앞좌석을 바라보았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였다. 친구가 늦게 도착해도 화나지 않았고, 성대 폴립이 생겨 대형병원에 가서 진료시간을 기다릴 때도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떨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그림과 연결시킨 독서 감상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강도로 압력을 가해올 때, 그 버거운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그림이 되어 마음속 풍경으로 간직된다. 5.p

 

  글머리에 쓰여 있는 작가의 말이 나에게 와 닿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한 권의 책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준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혹은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 뿐만은 아니라 또 있었다는 사실이 흥분하고 욱했던 감정을 가라앉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책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림에 대한 작가의 고백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소개한 책과 그림 중 내가 읽은 책이나 좋아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 독자로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그 책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할 때는 마치 그녀와 책에 대하여 수다를 떠는 것 같았고,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 다시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모습, 상황, 정서 등도 함께 떠올랐다. 여름밤 큰마음 먹고 산 <토지>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 문학에서 최서희라는 가장 멋진 여성 캐릭터를 발견했던 기쁨도 떠올랐고, 시간을 쪼개어 대학원 과제를 제출했던 <변신>을 통해 고된 일과 속에서 쉬고 싶었던 은행원 카프카를 떠올렸던 일도 생각났다. 작가가 밝힌 대로 <제인 에어>의 마지막 부분이 그렇게 끝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림과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을 연결시키고, 한 편의 글로 엮어낸 작가의 안목과 필력이 뛰어나서 놀랐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림을 감상할 때 나는 어떤 작품을 떠올릴까. 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본다빈치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전에 다녀왔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재현한 전시회에서 몽마르트 가든을 보았을 때 저절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환상적인 숲속 어딘가에서 요정들이 나올 것 같고, 청춘남녀들이 잠들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학과 그림은 우리의 상상의 세계를 풍성하게 해준다. 그것은 영혼이 피폐해질 때 가장 귀한 치료약이 되어 준다. 마치 프레드릭이 친구들에게 컴컴하고 지루한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따뜻한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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