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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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픈 상처와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간다.
가끔 울고 아파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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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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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저 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힐 달 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저,저, 하는 사이 중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가득 담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나보낸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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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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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본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갖고 있는 책이 2011년에 인쇄된 것이니까 아마 7~8년 전에 읽었을 것이다. 그 당시 형광펜으로 그었던 문장이 아닌 다른 문장에도 새로운 하이라이트가 그려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여전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도 못 하고 뱅뱅 돌고만 있는 느낌이다. 푸시맨 승일을 비롯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박민규의 <<카스테라>>속 단편들은 모두 마른 눈물 같은 이야기다. 흐르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물 혹은 눈물조차 흘릴 시간이 없는 눈물.

 

 

  모두 웃기고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안쓰럽다. 또 처절하면서도 엉뚱하고 환상적이라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글들이 내일 아침이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저절로 의심이 가기도 한다. 슬퍼도 슬프지 않고 쓸데없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에 기대지 않는데 따뜻하고 잔잔하다. 소설이 점점 작아져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존재들에게 말을 걸어준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가버린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승일은 아버지의 작고 초라한 민모습을 보게 된 날, 더 이상 집안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산수를 해 나가지만 마이너스 된 인생은 좀처럼 플러스 되는 삶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문열의 <<하늘길>>에 보면 지지리 가난한 청년이 그의 아버지에게 묻는다.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면 복을 받을까요?”, “글쎄다. 내가 살아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고 죽자 청년은 답을 찾기 위해 옥황상제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대한민국에는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승일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푸시맨과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동물 같은 전철을 타고 매일 일터로 가야하는 사람들. 그들은 너무나 열심히 부지런히 산다.

 

 

저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라 말이야. 알겠니? 알겠니? 알겠지.에서 다시 열차가 들어왔으므로, 나는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파아, 하아, 의정부 행이었던 두 번째 열차는, 아마도 두 배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전 인류가 아닌가. (25.p)

 

 

  그 화물 속에 미처 오르지 못한 또 다른 짐짝 같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차를 기다린다. 다시 튕겨져 나오면 안 되니까. 담담하지면서 물기 없는 마른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을 더 사로잡는다. 날마다 목을 죄는 현실의 괴물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매일 묻지만 매일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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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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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몇 줄의 문장을 SNS에 올릴 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예전에 몇 번 좋은 의도를 갖고 올린 글이 나의 생각과 다르게 왜곡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이 기분 나쁘게 마무리된 경험 때문이다. 누군가 함부로 평가를 하면서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또 다른 지적과 비난이 꼬리를 물면서 글을 남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가 세게 맞설 수 있거나 끝까지 당당하게 붙들고 갈 힘이 없다면 차라리 표현하지 않는 것이 속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이미지나 모티브들을 흘려버리곤 했다. 그때 몇 문장으로 던져진 공격과 무시는 내 마음에 상처와 분노, 자신감 상실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심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공격받을 수도 있지, 그냥 말도 안 되는 공격성 글이라면 무시하면 되지, 지적을 하면 화를 내기 전에 고칠 것은 고칠 수도 있었는데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피하고 외면하는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SNS 안에서 단 한 개의 문장이 불씨를 키우고 그것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도를 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 안에서 극단을 향해 가는 갈등이 벌어지지만 문제를 해결하거나 책임질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힘이 공격을 가하는데 상대는 허상 같고 존재마저 분명치 않다. 결국 상처입고 죽어가는 사람은 먼저 공격당하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에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그 대상이 돌고 돌아 불특정다수인 누군가에게 돌아가게 되며, 나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산속이나 무인도에 들어가서 사는 자연인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2, 3차 피해자가 되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소설가 P씨는 일 년에 평균 한 권꼴로 6년 째 소설만 발표했다. 뛰어난 문체나 섬세한 문장, 개성 있는 구조를 갖춘 작품은 아니지만 첫 작품이 케이블TV의 드라마, 두 번째 작품은 영화, 또 다른 작품이 웹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소위 수익이 유지되는 작가로 굳어졌고, 작가의 책이 꾸준히 제작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소설가 P씨의 작품들은 악평과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의 평가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작가를 대중은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자신들의 지식과 편협한 사고를 비평으로 둔갑시켜 소설가의 작품들을 죽여 나간다.

 

 

……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면도날들을 저마다 혀 밑에 숨기거나 손 끝에 꽂고 있어서, 종합 순위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 농구 이야기 역시 서사의 포가 떠지는 걸 피해갈 수 없었다. (36.P)

 

 

  말은(혹은 글) 무섭고 날카롭다. 심장을 찌르는 강도가 매우 높다. 그 말과 문장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사회의 힘의 추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논술주간 이강희는 끝에 단어 3개만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라고 말했다. 같은 의미라도 서술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말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외면과 지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에 눌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나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서는 매일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요구되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와 싸우면서 평정심을 갖는 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설가 P씨도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을 예감한다.

 

 

서점 매대에서 책이 내려가고 얼마 뒤 그의 계정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보여준 이야기의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거나 그걸 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출판사 계정에 문의를 넣지 않았고, 출판사가 P씨의 근황을 꿸 만큼 그에게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나, 어쩐지 P씨는 소설가로서 소설가의 삶을 종료하고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에 조용히 스며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봐도 부족한 말들의 숲을 어설피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며, 어디서도 그의 발자국을 다시 발견하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이. (38.p)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부터 부주의하게 누군가의 가슴에 말과 문장으로 비수를 꽂았을지 모른다. 어설픈 지식과 생각을 멋지게 뽐내면서 다른 이들의 말의 세계를 황폐하게 했을 수도 있다. 쉽게 놀린 손가락과 입술이 돌아 돌아서 내게 온다고 생각하니 등에 땀이 난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도 내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며 계속 읽고 쓸 뿐이다. 다만 다른 이의 작품을 읽고 평해야 하는 글이라면 그 글을 쓴 사람이 고민했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할 것이다. 창작에 임하게 될 때는 온전한 와 글쓴이로서의 에 대한 평가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사랑할 것이다. 수고했다고. 또 쓰면 된다고 말이다. 글은 글이고, 나는 나일뿐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 모든 이들은 작가이고, 독자이자 비평가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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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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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해주고 상처를 치유하며,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지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많은 장벽들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큰다. 사랑은 힘이 세다. 산부인과 의사나 전문적 지식이 출중한 학자보다 출산과 육아에 무지하고 경험이 없던 엄마가 아이를 더 잘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이 빠진 인생은 삭막하고 건조하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을 통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답했나 보다.

 

 

사랑은 사람을 치유한다. 치유하고 해방시킨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사랑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하고 혈액이 우리 몸속 혈관을 타고 질서정연하게 흐르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 <프롤로그>중에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준 사람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랑을 몸과 마음에 축적한 사람은 망가지지 않는다. 아니 망가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거나 힘들어도 삶을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나또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딸만 넷이었지만 부모님은 아들타령을 하거나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존재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받은 사랑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는 우리 네 자매에게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자매는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싸다준 도시락을 평생 잊지 못 한다.

 

 

  큰언니를 제외한 우리는 세 살, 두 살 터울이기 때문에 2~3년 간격으로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세 딸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 3~5개의 도시락을 싸서 4교시가 끝날 때 쯤 되는 시간에 맞춰 경비실에 갖다 놓았다. 당시 고등학교 등교 시간이 710분이었고, 야간 자율학습은 밤 10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나는 짜증을 내거나 잠에 취해 아침밥을 먹고 그대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나자마자 경비실에 가서 경비아저씨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놓고 간 도시락을 찾아와 맛있게 먹었다. 도시락 가방을 열면 편지가 아닌 천 원짜리 지폐 2장도 함께 들어 있었다. 급식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6년 동안 김이 올라오고 있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신적인 허기에 시달린다는 말을 깊이 이해하지 못 한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힘들어도 견뎌나간다. 물리적 어려움을 겪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져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금방 좋아질 거라고 낙관하는 편이다.

 

 

이사하던 날, 어머니는 자신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와 점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해방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내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으로 간주됐을 사회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나를 삶으로 해방시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인생의 옷자락을 붙들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살고 있다. “이봐, 내가 옆에 있어.” (103.p)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지난 삶을 솔직하면서도 당당하게 고백한다. 백인이 마을에 하나뿐인 포장도로를 걸어갈 때면 어느 흑인이라도 옆으로 비켜 도랑으로 가야 할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또 일곱 살 때는 성폭력을 당했으며, 다시 엄마에게 돌아갔을 때 그녀를 엄마가 아닌 레이디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했던 것까지. 그뿐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호기심으로 성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여 미혼모가 되었던 것과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시달려 죽을 뻔 했던 일도 서술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림자 취급을 받았던 것과 자신의 정체성을 영영 잃어버릴까봐 백인 남편과 이혼한 이야기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마다 이봐, 내가 옆에 있어.”, “역시 내 딸이네. 하라는 대로 하면 쓰나. 너 스스로 결정해야지.”라고 말해 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 비비언 백스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단단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의 삶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거나 흔들려도 뽑히지 않는다. 그러나 마야 안젤루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나의 엄마를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랑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이다. 바로 받은 사랑에 대한 책임이다. 받은 사랑을 나만 갖고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을 베푼 사람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거짓 사랑을 받은 것이나. 진짜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향해 흐르게 되어 있다. 마야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그렇게 했고, 미약하지만 나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힘까지 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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