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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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본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갖고 있는 책이 2011년에 인쇄된 것이니까 아마 7~8년 전에 읽었을 것이다. 그 당시 형광펜으로 그었던 문장이 아닌 다른 문장에도 새로운 하이라이트가 그려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여전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도 못 하고 뱅뱅 돌고만 있는 느낌이다. 푸시맨 승일을 비롯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박민규의 <<카스테라>>속 단편들은 모두 마른 눈물 같은 이야기다. 흐르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물 혹은 눈물조차 흘릴 시간이 없는 눈물.

 

 

  모두 웃기고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안쓰럽다. 또 처절하면서도 엉뚱하고 환상적이라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글들이 내일 아침이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저절로 의심이 가기도 한다. 슬퍼도 슬프지 않고 쓸데없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에 기대지 않는데 따뜻하고 잔잔하다. 소설이 점점 작아져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존재들에게 말을 걸어준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가버린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승일은 아버지의 작고 초라한 민모습을 보게 된 날, 더 이상 집안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산수를 해 나가지만 마이너스 된 인생은 좀처럼 플러스 되는 삶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문열의 <<하늘길>>에 보면 지지리 가난한 청년이 그의 아버지에게 묻는다.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면 복을 받을까요?”, “글쎄다. 내가 살아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고 죽자 청년은 답을 찾기 위해 옥황상제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대한민국에는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승일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푸시맨과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동물 같은 전철을 타고 매일 일터로 가야하는 사람들. 그들은 너무나 열심히 부지런히 산다.

 

 

저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라 말이야. 알겠니? 알겠니? 알겠지.에서 다시 열차가 들어왔으므로, 나는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파아, 하아, 의정부 행이었던 두 번째 열차는, 아마도 두 배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전 인류가 아닌가. (25.p)

 

 

  그 화물 속에 미처 오르지 못한 또 다른 짐짝 같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차를 기다린다. 다시 튕겨져 나오면 안 되니까. 담담하지면서 물기 없는 마른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을 더 사로잡는다. 날마다 목을 죄는 현실의 괴물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매일 묻지만 매일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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