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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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해주고 상처를 치유하며,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지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많은 장벽들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큰다. 사랑은 힘이 세다. 산부인과 의사나 전문적 지식이 출중한 학자보다 출산과 육아에 무지하고 경험이 없던 엄마가 아이를 더 잘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이 빠진 인생은 삭막하고 건조하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을 통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답했나 보다.

 

 

사랑은 사람을 치유한다. 치유하고 해방시킨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사랑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하고 혈액이 우리 몸속 혈관을 타고 질서정연하게 흐르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 <프롤로그>중에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준 사람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랑을 몸과 마음에 축적한 사람은 망가지지 않는다. 아니 망가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거나 힘들어도 삶을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나또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딸만 넷이었지만 부모님은 아들타령을 하거나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존재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받은 사랑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는 우리 네 자매에게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자매는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싸다준 도시락을 평생 잊지 못 한다.

 

 

  큰언니를 제외한 우리는 세 살, 두 살 터울이기 때문에 2~3년 간격으로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세 딸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 3~5개의 도시락을 싸서 4교시가 끝날 때 쯤 되는 시간에 맞춰 경비실에 갖다 놓았다. 당시 고등학교 등교 시간이 710분이었고, 야간 자율학습은 밤 10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나는 짜증을 내거나 잠에 취해 아침밥을 먹고 그대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나자마자 경비실에 가서 경비아저씨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놓고 간 도시락을 찾아와 맛있게 먹었다. 도시락 가방을 열면 편지가 아닌 천 원짜리 지폐 2장도 함께 들어 있었다. 급식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6년 동안 김이 올라오고 있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신적인 허기에 시달린다는 말을 깊이 이해하지 못 한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힘들어도 견뎌나간다. 물리적 어려움을 겪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져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금방 좋아질 거라고 낙관하는 편이다.

 

 

이사하던 날, 어머니는 자신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와 점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해방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내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으로 간주됐을 사회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나를 삶으로 해방시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인생의 옷자락을 붙들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살고 있다. “이봐, 내가 옆에 있어.” (103.p)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지난 삶을 솔직하면서도 당당하게 고백한다. 백인이 마을에 하나뿐인 포장도로를 걸어갈 때면 어느 흑인이라도 옆으로 비켜 도랑으로 가야 할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또 일곱 살 때는 성폭력을 당했으며, 다시 엄마에게 돌아갔을 때 그녀를 엄마가 아닌 레이디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했던 것까지. 그뿐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호기심으로 성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여 미혼모가 되었던 것과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시달려 죽을 뻔 했던 일도 서술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림자 취급을 받았던 것과 자신의 정체성을 영영 잃어버릴까봐 백인 남편과 이혼한 이야기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마다 이봐, 내가 옆에 있어.”, “역시 내 딸이네. 하라는 대로 하면 쓰나. 너 스스로 결정해야지.”라고 말해 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 비비언 백스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단단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의 삶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거나 흔들려도 뽑히지 않는다. 그러나 마야 안젤루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나의 엄마를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랑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이다. 바로 받은 사랑에 대한 책임이다. 받은 사랑을 나만 갖고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을 베푼 사람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거짓 사랑을 받은 것이나. 진짜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향해 흐르게 되어 있다. 마야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그렇게 했고, 미약하지만 나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힘까지 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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