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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지금도 몇 줄의 문장을 SNS에 올릴 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예전에 몇 번 좋은 의도를 갖고 올린 글이 나의 생각과 다르게 왜곡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이 기분 나쁘게 마무리된 경험 때문이다. 누군가 함부로 평가를 하면서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또 다른 지적과 비난이 꼬리를 물면서 글을 남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가 세게 맞설 수 있거나 끝까지 당당하게 붙들고 갈 힘이 없다면 차라리 표현하지 않는 것이 속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이미지나 모티브들을 흘려버리곤 했다. 그때 몇 문장으로 던져진 공격과 무시는 내 마음에 상처와 분노, 자신감 상실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심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공격받을 수도 있지, 그냥 말도 안 되는 공격성 글이라면 무시하면 되지, 지적을 하면 화를 내기 전에 고칠 것은 고칠 수도 있었는데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피하고 외면하는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SNS 안에서 단 한 개의 문장이 불씨를 키우고 그것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도를 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 안에서 극단을 향해 가는 갈등이 벌어지지만 문제를 해결하거나 책임질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힘이 공격을 가하는데 상대는 허상 같고 존재마저 분명치 않다. 결국 상처입고 죽어가는 사람은 먼저 공격당하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에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그 대상이 돌고 돌아 불특정다수인 누군가에게 돌아가게 되며, 나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산속이나 무인도에 들어가서 사는 자연인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2차, 3차 피해자가 되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소설가 P씨는 일 년에 평균 한 권꼴로 6년 째 소설만 발표했다. 뛰어난 문체나 섬세한 문장, 개성 있는 구조를 갖춘 작품은 아니지만 첫 작품이 케이블TV의 드라마, 두 번째 작품은 영화, 또 다른 작품이 웹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소위 수익이 유지되는 작가로 굳어졌고, 작가의 책이 꾸준히 제작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소설가 P씨의 작품들은 악평과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의 평가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작가를 대중은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자신들의 지식과 편협한 사고를 비평으로 둔갑시켜 소설가의 작품들을 죽여 나간다.
……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면도날들을 저마다 혀 밑에 숨기거나 손 끝에 꽂고 있어서, 종합 순위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 농구 이야기 역시 서사의 포가 떠지는 걸 피해갈 수 없었다. (36.P)
말은(혹은 글) 무섭고 날카롭다. 심장을 찌르는 강도가 매우 높다. 그 말과 문장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사회의 힘의 추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논술주간 이강희는 “끝에 단어 3개만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라고 말했다. 같은 의미라도 서술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말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외면과 지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에 눌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나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서는 매일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요구되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와 싸우면서 평정심을 갖는 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설가 P씨도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을 예감한다.
서점 매대에서 책이 내려가고 얼마 뒤 그의 계정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보여준 이야기의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거나 그걸 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출판사 계정에 문의를 넣지 않았고, 출판사가 P씨의 근황을 꿸 만큼 그에게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나, 어쩐지 P씨는 소설가로서 소설가의 삶을 종료하고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에 조용히 스며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봐도 부족한 말들의 숲을 어설피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며, 어디서도 그의 발자국을 다시 발견하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이. (38.p)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부터 부주의하게 누군가의 가슴에 말과 문장으로 비수를 꽂았을지 모른다. 어설픈 지식과 생각을 멋지게 뽐내면서 다른 이들의 말의 세계를 황폐하게 했을 수도 있다. 쉽게 놀린 손가락과 입술이 돌아 돌아서 내게 온다고 생각하니 등에 땀이 난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도 내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며 계속 읽고 쓸 뿐이다. 다만 다른 이의 작품을 읽고 평해야 하는 글이라면 그 글을 쓴 사람이 고민했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할 것이다. 창작에 임하게 될 때는 온전한 ‘나’와 글쓴이로서의 ‘나’에 대한 평가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사랑할 것이다. 수고했다고. 또 쓰면 된다고 말이다. 글은 글이고, 나는 나일뿐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 모든 이들은 작가이고, 독자이자 비평가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