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시대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얼마 전이 말이다. 거칠다는 것은 소통은 적고, 욕망은 대세고, 가혹한 만행은 일반적인 그런 시대다. 이런 시대에 희생된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양산되는 법이다. 그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지도, 그리고 위로 받지도 못한다. 바로 그런 시대 속에서의 엉망진창의 일 처리들이 자행되고 거행된다. 그런 일들을 자행하는 인간들이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다. 위로는 임금이 그렇고 아래로는 노비도 그랬다. 임진란이 터진 조선에서 말이다. 한 번 무너진 방어막은 신뢰를 무너뜨렸고, 신분의 가치도 땅에 떨어뜨렸다. 왕이든 사대부든 국가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기에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의 가치는 취소되는 것이며, 비난한다고 뭐라 할 상황도 못 된다.
조선이란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대동계는 조선 정부의 당쟁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일을 하려고 만든 조직이다. 그러나 대동계도 인간이 만들었으며,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 인간의 욕망이 침투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영화 속의 fiction이겠지만 대동계의 우두머리였던 ‘정여립’의 죽음에 이은 대동계의 이익집단화와 반역은 어쩌면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정상에 서고 싶은 욕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이 침략한 상황에서도 왕권탈취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대동계의 우울한 진군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은 대동계의 동지로써 평등 세상을 꿈꾸며 이 땅의 민초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꿈은 곧 기득권층의 약화를 의미하기에 조선 조정은 그들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대동계를 해체시키려고만 할 뿐이다. 이런 대립구도는 결국 한 쪽은 정의, 다른 한 쪽은 악당이란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며, 결국 조선 타도라는 목표를 만든다. 그 속에서 싹튼 개인적 야욕 역시 이런 목표에 기름을 붙는다. 하지만 그런 야욕에 반대하는 이들은 같은 동료들 속에서도 반대파를 만들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희생시키고 희생당하면서, 원수와 복수를 양산하게 된다. 욕망에 의해 붕괴되는 대동계 속에서의 이분법이 다시 양산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은 곧 동지와 적을 만들며, 그들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즉 서로를 찾고, 또한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버림받는 자들도 생기며, 버림받은 자들이 다시 쫓는 웃지 못할 관계도 만들어진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대로 관계는 관계인지라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여인과, 그런 여인을 버려야지만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몽학의 행동은 상대를 위한 배려가 피치 못할 사연을 만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이몽학의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 그를 막아 서려는 봉사 검객 황정학의 행동 역시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피치 못할 짓이다. 거기에 자신을 서자의 신분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인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이몽학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몽학을 쫓는다. 이몽학의 야심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들의 분노,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또 다른 비극들. 이 모든 것들은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행한 인간사이다.
그들의 마지막은 처량했다. 한두 가지를 이룰 수 있었지만 더욱 큰 것을 잃어버려야 할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욕망의 화신이 된 이몽학이 도착한 한양엔 아무것도 없었고, 그를 찾았던 이들도 이룬 것을 그리 크지 못했다. 모든 것들은 왜구에 의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된 것이다. 야욕의 끝은 모두의 피해를 양산하고 만 것이다.

폭력적인 야망을 피도록 조장한 조선사회의 비극의 끝이 적나라하게 형상화된 한양 도성에서의 비극은 곧 오늘의 우리를 보는 듯 하다. 임진왜란에서 최고의 영웅 중 하나였던 유성룡이 동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영화는 진실에 한층 다가서는 듯 하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의 로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기득권층은 기득권층일 뿐, 결코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인간들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 기득권층의 작태로 인해 빚어진 비뚤어진 욕망의 양산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도 보여준다. 이것은 기득권만의 문제라기보다 인간 본연의 약점에 기인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사회는 얼마나 갖췄는지, 그리고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런 통제가 가능해야 만 사회의 인간다움과 우아함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