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 Jeon Woo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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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지닌 옛날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리는 욕구는 왜 일어날까? 과거의 인기작들의 힘을 빌려 대히트를 하려는 경제적 욕구가 가장 많겠지만 그래도 조금 부족한 지적일 것 같다. 과거와 현재는 어쩌면 비슷하다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때나 이때나 인간이 살았으며 또한 그때의 문제나 이때의 문제나 모든 문제는 인간이 결국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세상은 불신과 비판, 그리고 사회적 정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우치란 정의를 수호하는 캐릭터가 있으니 결론이야 정의의 승리겠고, 다양한 액션들이 판을 치면서 영화의 극적 재미를 올릴 것은 분명하다. 이상하게도 거의 모든 영화가 히트를 쳤던 강동원의 대히트 작품이고 보면 이 영화가 상승세인 강동원의 정점에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영화에선 우리가 아는 착한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의에 편에 서있는 캐릭터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매우 물질적이었고, 각자의 이권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전우치의 애인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는 여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임수정이 연기했던 서인경이란 캐릭터는 잘난 배우 옆에서 어렵게 살고 있으면서 전형적인 속물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여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전우치는 과연 완벽한 정의의 수호신일까? 그냥 적이 있어 싸우는 그런 캐릭터일지 모른다. 그의 성격에 정의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어쩌면 장난기 가득한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무게감은 도리어 악당으로 나온 김윤석의 화담이었다. 아마도 화담 서경덕 선생을 염두에 둔 캐릭터인 것 같은데 한국 성리학 최고의 거목 중 한 명이 악당으로 둔갑하는 상황이다. 아마도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곳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근본적인 성찰과 고민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영화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그렇게 우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여성에 대해 강요하는 세태는 지금의 시점에서 판단했을 때 결코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전우치라는 이야기의 속성 상 탐관오리에 대한 처벌을 담고 있는 것은 태생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역시나 탐관오리가 나온다. 사회적 의미를 담으려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영화의 악당은 곧 사회의 기득권층이고 화담 역시 그런 부류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화담이 아닌 것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깨끗하게 하자는 철학이다. 그래서 어려운 공부는 물론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수양을 중심으로 여긴다. 그 중 화담 서경덕이란 역사상의 위대한 학자는 당시 최고의 기녀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거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영화 속 화담은 도리어 욕구를 충족시키려고만 한 악당인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다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결국 다 그렇고 그런 것일까?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의 진위가 무엇이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대목이다. 일종의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이를 욕구에 물든 인물로 설정한다는 것은 분명 신선한 시도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담고 있다. 특히 화담이 패하는 부분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도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구제되고 용서받는 것이 아닌, 처단이 되는 대상이며, 결국 그런 자들도 인간일 뿐이라는 자성 아니면 비판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강동원의 활력이 유감없이 발휘됐고, 또 히트도 쳐서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되도록 이끈 영화가 전우치다. 거기에 전통의 매력을 오늘로 가져온 작품이기도 하다. 다 좋다. 하지만 아쉽다면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문제라 어떤 비판을 할 수 있는 대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조금 희망적인 흐름을 다음 작품에서 가졌으면 한다. 요새 세상은 험악하다 보니 이런 영화가 더욱 공감이 가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좀 더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는 영화가 보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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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스틸 - Real St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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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시대가 아니라 2025년에 벌어질 이야기를 영화로 담고 있지만 바로 오늘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나 이때나 다를 것은 사실 별로 없을 것이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로마 시대와 오늘의 이탈리아 시대의 삶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시대가 미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더라도 오늘과 차이가 날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 참 영리하다. 과거의 영화인 ‘챔프’나 ‘주먹이 운다’처럼 인간이 권투선수로 나와 피가 낭자해진 모습을 보여줘야 할 개연성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 같은 로봇들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잔혹한 장면은 더 많이 나올 법하다. K1과 같은 무서운 액션을 선보이니까 말이다. 로봇도 자기 주인의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생존해야 하니까. 그래도 피가 없는 결투고 생존을 위한 피비린내는 더욱 없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지만 피보단 위험이 덜해 보인다. 하지만 액션은 화려하다. 로봇의 격투는 인간이 나온 그 어떤 액션처럼 볼만 했다. 특히 사각의 링 위에서 벌어지는 장면 하나하나는 인간의 권투의 모습처럼 잘 만들어졌고 오락성도 풍부했다. 그것은 마치 진짜 인간의 싸움과도 같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잔인하기만 한 복서를 비꼬기 위한 영화인지 모른다. 아니면 저 먼 시대인 로마시대의 검투사 경기를 비꼬는 것도 같다. 그 누구나 소중한 육체를 밑천으로 삶을 부지해야 할 인간들을 최악으로 내몰아 관전하는 즐거움을 찾는 인간들의 추악한 단면을 고발하려 했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그러나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의 기초한 영화이고 인간의 감정과 정서, 그리고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현대인들의 고뇌와 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나 현대 사회에서 갈라지고 쪼개지기만 한 가족에 대한 문제를 액션과 함께 다루고 있다.
  아마도 미국영화에서 가족의 가치를 담지 않은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지 의심할 만큼 미국영화는 가족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듯하다. 문제는 왜 그리 가족주의에 집착할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한국보다 미리 당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마카로니 웨스턴 이전에 등장했던 사회적 가치의 우위 위주에서 어느 순간 개인의 가치 숭상으로 변한 개인주의 사회로 들어선 미국은 타인의 대한 갈증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자신과 DNA를 공유한 이들과 작별하는 것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그들에 대한 진한 애정과 향수가 그들 피부 속 깊은 곳에서 숨쉬고 있고, 어쩌면 그것을 들추고 고백해야만 행복으로 향하는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즉 가족만이라도 함께 했으면 바람이 강하지만 현실이 그리 녹녹하지 못해 쉽게 이루지 못할 꿈이 되고 있단 점이다.
  도시 생활에서 가족은 개인적인 신상기록부에나 있을 뿐 쉽게 만나지 못하는 타인처럼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아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냥 모른 체하고 살았으면 하는 귀찮은 존재조차 되고 말았다. 영화는 바로 이런 배경으로 시작된단 점이다. 과거 어느 영화에 나왔던 장면인 것 같았다. 그만큼 한국영화를 포함해서 많은 영화들이 다뤘고 일종의 진부한 설정이 됐다. 그리고 결론도 뻔할 것이다. 서로 진한 부자관계의 애틋함을 느끼고 서로가 가족임을 확인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칠 것이고 이것들을 영화가 1시간 30분 남짓 보여줄 내용들이다. 그런데 왜 이리 진부하게 그 내용이 반복되는지를 곰곰이 생각한다면 서글픔이 들게 분명하다. 그런 설정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재미 속에 도사린 아픔을 느낀다고 할까? 영화는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신데렐라 스토리까지 가세하면서 꿈을 꿀 수 있는 환상까지 더해 주었다. 즉 Fantasy물이 된 것이다. 이것은 어떤 공상과학 S/F와 같은 것이 아닌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공상을 꾸게 하는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왔을 때의 느낌은 자신을 돌아보는 자조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 영화다.
  영화 평론가들의 극찬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떤 평론가들은 악평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평가보다 더욱 아쉽게 한 것은 영화 자체가 비극적인 결론을 보여주지 않고 멋진 경기로 마무리했지만 그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단 점이며, 결국 DNA를 공유한 어느 부자가 이후 멀리 떨어져 살며, 서로를 상당기간 모른 체 하며 살 수밖에 없단 점이다. 이런 사태는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인간의 임무라고 한다면 이 영화, 정말 비극이다. 경기의 달콤함을 잠시이며, 그들의 다음 단계는 장기적으로 쓰라릴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만나겠지만 말이다.
  즐거운 영화를 보고 쓰라릴 미래를 추론하는 것은 그리 달가운 관람은 아니다. 아니 희극을 보고 비극을 추론하는 것처럼 참 재미없는 관람이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를 기본 설정으로 하면서 앞으로 깨질 가족을 영화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결과를 당연히 추론하도록 할 것이며,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현대인들의 상황과 고독을 느낄 수 있었다. 극단적이지만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화는 부자지간의 뜨거운 가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고 한 때나마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의 멋진 재기전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들은 분명 많다. 다만 그런 영화가 아직도 미국영화의 대세이며 한국 역시 그런 대세에 감동을 받는 것을 보면 뭔가 아쉬운 사회적 현실이 있기 때문이리라. 가능하면 이런 아쉬운 추론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무엇보다 영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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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자점 코안도르 - Patisserie Coin de 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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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이미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래도 대세는 아닌 영화 같은 모습이었고, 그 흔한 엄청난 광고도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영화 포스터를 본 것이 두 달 전쯤으로 기억나는데 엄청난 흥행몰이를 한다 하더라도 두 달 넘게 하는 영화는 한국영화관에선 흔하지 않다. 거기에 한국에선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은 일본영화다 보니 각종 악재는 다 갖고 있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오래도 한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다.
  뭔가 있다. 이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 전이었지만 그냥 흔한 영화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안보고 버티다 마침내 우연한 기회를 맞이해서 보게 됐다. 케이크와 관련된 영화이니 케이크 구경하는 기분으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역시나 오래 하는 영화의 가치는 분명 있는 모양이다. 케이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영화는 특유의 건강함이 있다. 캔디라는 만화를 만든 곳이어서인지 꺾이지 않고 항상 건강한 여자 주인공이 있다. 당연히 그녀가 갖고 있는 세계관으로 모든 것들이 진행된다. 뭔가 사고가 터지고 어설픈 능력의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 사람은 그 계통의 대가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영화의 모든 갈등과 고민이 해결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주인공이고, 영화에서처럼 그녀의 확신이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상징된다.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도 하지 않겠느냐고 동참하라는 분위기다. 
 

 

   일본영화는 최근의 안 좋은 경제상황에서인지 언제나 교훈적이고 계몽적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류에 포함된다. 일본영화 특유의 성격이 되다 보니 영화 보면서 결말을 앞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진행시키는 스토리와 그 과정을 주시한다면 그래도 일본영화의 무시 못할 장점들이 보이다. 무엇보다 일본영화에서의 캐릭터들이 동화 같은 주인공 빼곤 매우 현실적이고 도시적이다.
  그들은 외롭다. 주인공 역시 그렇게 외롭다. 그리고 버림 받든 뭐하든 고독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치원 때 약속했던 하나마나 한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났던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도쿄까지 온 나츠메 (아오이 유우)는 사실 유아기적 사고를 갖고 있는 여자 주인공이다. 요새 결코 있을 수 없는 이런 캐릭터를 중심으로 일본영화 특유의 구성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다르지 않다. 이런 어린이 같은 주인공은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변화의 대상은 케익의 대가이면서 가족의 불행으로 인해 더 이상 직접 케이크를 만들기를 거부한 토무라 선생(에구치 요스케)이다. 바로 나츠메가 변화시켜야 할 영화 상의 문젯거리며 결국 그녀는 성공한다.  

 

 

  토무라는 어쩌면 도시 속에 살면서 가슴 한편에 아픔을 간직하고 살고 있는 도시인의 전형일 것이다. 무엇보다 방황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언제나 그는 만지작거릴 뿐 케이크 만드는데 주저한다. 아니 자신의 과거 속에만 남겼을 뿐, 그는 그냥 케이크와 관련된 일을 할 뿐, 케이크를 만드는 일로부터 조금 떨어져 생활할 뿐이다. 정작 자신이 하고 싶고, 그것을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만 것이다. 이런 조건은 어쩌면 도시인들에겐 흔한 상황일 것이다. 일에 치여서, 혹은 서툰 관계 형성으로 인해 언제나 자기가 원하지 않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그곳에서 억지로 사는 인간들이 도시에선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가장 즐거운 세상으로 이끈 이는 결국 용기와 정열이 있는 동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다. 어쩌면 이건 슬픈 현실을 고발하는 캐릭터인지 모르겠다. 현실에선 없으니 이렇게라도 만들어서 작은 위안을 찾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츠메 주위엔 언제나 뭔가 문제가 있는 이들로 넘친다. ‘코안도르’란 작은 양과자점에선 결혼과 일 둘 중 일을 선택한 양과자점 주인이 있고, 그곳에서 나츠메를 괴롭히는 또 다른 직원도 있다. 그리고 코안도르에서 언제나 분위기를 잡고 코안도르의 작품들을 즐기며 시식하는 전직 여자 연극배우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다지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세계에서만 있을 뿐 밖의 세계와는 업무와 일로 걸칠 뿐이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 나츠메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모두라고 할 수 없지만 그전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전보다 조금 더 웃고 인간적인 모습을 갖게 됐다. 

 

 

  그래도 이 영화, 페미니즘이다. 주인공 나츠메는 코안도르의 주인이 이야기했던 일과 사랑에서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항상 갖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일을 선택한다. 무척 재미있는 스토리 라인이다. 모든 이들을 자신의 인간적 매력으로 모두 이끌면서도 그녀는 독립을 위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업과 사랑이 이분법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사랑의 힘을 이끌었던 그녀의 선택이 일이란 것을 보면 독특하단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영화는 통속적인 구성으로 극을 이끌면서도 결국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것이 아닌 바로 매우 현실적인 직업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말미엔 마치 꿈을 꾸다 막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문을 나서면 바로 현실이다. 영화는 확실히 Fantasy란 것을 다시금 느끼는 대목이다. 또한 정서의 힘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현실도 만만한 것이 아님을 느끼기에 이 영화의 말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확실히 이 영화 오래 갈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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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위의 나비 - Rest On Your Sh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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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언제나 다루는 소재다. 문학이든 영화든 말이다. 이것만큼 대중적인 것이 과연 또 있을까? 또한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기다리는 내용은 역시나 흔하다. 인류에게 사랑은 가장 비합리적이면서 극단적인 이타주의의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설사 세상은 사랑을 실제로는 그렇게 다루지 않다 하더라도 문학과 영화에서 사랑을 위한 희생은 너무 당연하게 다룬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문학과 영화는 너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과연 인간들 중에 그럴 수 있을까 하고. 그래서인지 마치 사랑에 대한 실험을 담은 영화도 나오게 됐는지 모른다. 즉 과연 넌 사랑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사랑이 불신을 받고 있는 세상이다. 경제적 동인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그 결과가 계속 높아져가고 있는 이혼율이고 미혼율일 것이다. 같이 있어도 혼자라는 생각이 앞서는 지금의 우리에게 어쩌면 함께 사는 이를 실험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날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없어지더라도 날 계속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을까? 어쩌면 유치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나만을 그리워해 줄 수 있는 이와 함께 산다는 것이 우리들의 행복을 만드는 가장 큰 샘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나에겐 매우 반가운 이들이었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카페 주인을 잘 소화해 냈고, 또한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영화의 주인공, 계륜미가 가장 많은 화면을 차지하게 됐고 ‘쌍식기’에서 매력적인 ‘코코’역을 맡았던 강일연의 모습은 과거와 다른 색다른 매력을 줬다. 하지만 상당 부분 목소리만 출연한 것만 같아 아쉬웠다. 오랜 만에 본 양영기 역시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지만 비중이 좀 작아진 것 같아 아쉽다. 계륜미는 그러나 다른 여자 배우들보다 화면은 많이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 뿐이었고, 주인공으로서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전에 중국 드라마, ‘금분세가’에서 강한 인상을 줬던 남자 주인공 진곤은 너무 반가웠다. 잘 생긴 외모이면서도 이전의 다소 건방져 보였던 그의 모습은 이번에 순수한 청년으로 나타났다. 이제 그도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좋긴 좋았다.
  한 남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이 영화 내용은 매우 진부하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여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동화같다. 그런데 살짝 독특함이 나타난다. 여자 주인공이 나비로 변해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맴돈다는 것이다. 봄은 물론이고 겨울까지 말이다.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아이디어의 과부하로 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형상화다. 다소 억지스런 환타지로 간 이 영화는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인 고민에 답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연인으로서의 매력을 서로 확인하기 보단 부재라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결코 서로를 잊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세상을 살면서 느낀다. 그런 뻔한 진리를 이 영화는 매우 과감하게 어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팬의 바람대로 그들은 다시 서로 만나게 된다.
  욕망이 무리일 경우,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경우, 그것을 회피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가 Cool한 태도다. 억지로라도 대범한 척 해야 그나마 더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Cool한 척이라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온 캐릭터 중 그 누구도 Cool하지 못했다. 다만 포기할 뿐이다.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포기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기본전제였다. 부재하지만 사랑하기에 다른 이를 사귈 수 없다는 이야기는 분명 환타지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을 깨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배려와 사랑이 깔려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랑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포기 과정에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 표현했다. 아마도 현실 속의 환타지 중 하나가 이런 솔직함이리라. 그런 솔직함이 비극의 시작을 의미하더라도 그런 솔직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만드는 첩경이다. 그런 솔직함이 이 영화의 재미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자그만 기쁨, 그것 역시 이 영화가 갖는 매력이다. 분명 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언젠가 우리 가슴 속에 사라져버린 사랑과 배려의 미학이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확인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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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 The 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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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소재로도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된장, 한국 사람들이라면 그 이미지가 거의 고정됐다 해도 결코 틀리지 않는다. 평소에 한국인이 즐겨 먹긴 하지만 그다지 우아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매우 향토적이라 지금의 청소년 층에 인기가 기성세대만큼은 못 되는 그런 음식재료다. 된장찌개, 서민을 대표하긴 하는데 점차 사라지는 우리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다소 억측이겠지만 그래도 만드는 정성만큼 평가 받는 것은 아닌, 그런 음식재료로 보인다. 이제 피자가 대세인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영화 제목인 ‘된장’은 좀 괴팍한 영화다.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상상과 사실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판 마술적 사실주의 영화라고 할까? 희대의 살인마를 잡은 된장찌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런 기막힌 발상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호기심은 관객만을 홀린 것은 아니다. 영화 속의 인물인 최유진(류승룡)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구성한다.  

 

 


  다소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최유진은 방송국 PD다. 그의 캐릭터 특성은 영화의 모든 재미를 이끈다. 치밀하고 냉철하면서도 끈질기지만 그의 표정 하나하나는 매우 코믹하다. 아마도 영화 제작자들은 모든 쟝르의 특성을 한 영화에 집어넣으려고 했나 보다. 다소 과한 욕심이지 않았나 싶지만 대중성과 실험성, 그리고 작품성 등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는 선택이다 싶었다. 또한 정보를 좇아 그 이력을 밝히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이끄는 그의 직업이고 보면, 힘들더라도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정보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찾는 이는 멋진 된장찌개를 만든 어느 여자였다. 어떤 특별한 약을 탄 듯, 많은 이들을 홀리는 음식의 주인공이 어떤 이인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끌었다. 뻔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기이한 상황 등을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이끄는 것은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
  영화는 어쩌면 복잡하면서 많은 공이 드는 된장 만들기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도 같았다. 된장 만드는 것에 이렇게 많은 재료를 쓰는 지도 몰랐고, 복잡한 자연 현상이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필요한 지도 몰랐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된장 제작과정은 어쩌면 된장 만들기 교본으로 쓰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마치 식객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요리사의 능력은 물론 요리과정을 꿰뚫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영화 식객과 매우 유사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달랐다. 바로 사랑이었다.  

 

 


  좀 생뚱하기는 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마지막 내용은 잘 나가던 기차가 갑작스레 탈선한 느낌도 들었다. 많은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억지로 로맨스를 집어 넣으려다 안타까운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만들었다는 진부한 설정은 좋은 평가는 아닐지라도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뻔한 자극제일 수도 있고, 영화를 진행시키는 복잡한 설정을 하나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도 같다. 솔직히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고객이 여성이고 보면 여성들을 자극하는 묘한 멜로도 필요할 듯싶어 집어넣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떻든 감동을 주려고 한 것 같고, 관객으로서도 어떤 감동을 받은 이도 있을 것이다. 뻔한 결말에 대해 진부하다고 평할 수 있지만 대중성도 무시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그 뻔한 진부함이 도리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인 것도 사실이다.  

 

 


  죽은 자의 환생 등을 보면 천년유혼도 생각이 났다. 확실히 마지막은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영화를 보는 마지막은 좀 편했다. 묘한 인상으로 관객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만 어느 순간 느끼는 괴이한 공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공포물을 싫어하는 이가 본다면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부한 종결이 좋아 보이는지 모른다. 창의성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편안함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신선함과 진부함이 뒤섞인 것이리라. 그래서 진부함이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묘한 매력을 크게 잠식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실험성은 실험성일 뿐, 그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긴 힘들 것이다. 예술성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겠고 대중성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그래도 끊임없는 두 가지의 도전을 나름대로 섞어서 보는 이들에게 묘한 재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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