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하정우, 현 영화배우 중 최고라 한다면 좀 과찬일까?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라고 하는 영화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든 그는 뛰어난 영화배우다. 다들 그렇게 안다. 그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성은 물론 예술적인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많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영화에 그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 확실히 감독들이 좋아하는 배우인 것은 분명하고, 역시나 좋은 배우임이 입증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한다.
하정우는 영화의 단역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다 점차 주연으로 성장한, 단계를 밟고 올라간 배우다. 얼굴이 아이돌 수준이 아니어서인 것만 같다. 그래도 단역에서 조연으로 그리고 현재엔 거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있다. 어쩌면 한국영화의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발전은 무척 눈 여겨 볼 만한 성장이다. 특히 그의 초기작이면서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그의 성장과 아울러 한국영화계의 큰 자취를 남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감독이었던 ‘윤종빈’은 주목 받았고, 하정우는 뛰어났고 그가 타고난 연기자임을 확인시킨 출세작이다. 이후 ‘추격자’로 그는 최고의 스타가 된다.
이렇게 생각되는 배우,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들은 좀 오랜 기간 동안 영화계에 종사해서인지 다양한 분야에 출연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의 매력 중 가장 큰 것은 매년 그의 이력에 포함될 영화들은 분명 화제작이나 문제작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그의 영화이력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데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게 나누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 중 하나의 주제로 한 번 골라본다면 아주 좋은 구성이 될 것만 같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끄는 주제는 바로 사회 Loser들을 대변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영화배우들도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주연했던 Loser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가 ‘프라하의 연인’과 같은 로맨틱 사랑 영화에 나오기도 했고 ‘구미호 가족’에선 즐거운 공포물에도 출연했지만 아마도 난 Loser의 영화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가 출연한 Loser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금도 상영되고 있는 ‘황해,’이고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가대표,’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다.
황해(2010)
한국 사회의 Loser로 변한 중국 동포들, 그들의 삶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다. 황해란 영화는 그렇게 사는 어느 중국인의 불행한 운명을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가상이 덧붙여서 제작된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중국 연변의 동포로 나온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불법으로 황해를 건너는 장면, 그리고 부산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 그리고 동물 뼈를 흉기로 사용하는 장면들은, 초현실주의적으로 보일 만큼 잔인하고 또한 기괴했다.
하정우가 분한 ‘구남’은 모든 것이 빼앗긴 조선족으로 괴로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한, 사회적 Loser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자를 죽이라는 청부를 맡게 되고, 이후 버림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리고 중국 연변으로부터도 버림받는 그가 갈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황폐화된 구남을 연기한 하정우는 무척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갈 곳 없는 자의 마지막 로망은 허무하기조차 한데, 하정우의 조선족 연기는 나홍진 감독이 왜 그를 ‘추격자’ 이후 다시 작업하고 싶었는지 이해시킬 것이다.
국가대표 (2009)
하정우의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영화다.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허울 뒤에 있는 스키점프 선수들이란 Loser들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도전 등을 멋지게 형상화했고, 이 영화는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거둔다. 무엇보다 천만 관객을 넘었다면 대중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 2009년도의 또 다른 천만 관객을 이끈 ‘해운대’와의 치열한 경쟁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정우가 연기한 것은 전(前)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지만, 자신의 친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와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맡게 되는 입양인 Bob이다. 문제는 한국의 스키점프 상태인데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전부 다 해봐야 4명이고 이들의 선발과정은 영화 속에선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스키점프는 동계올림픽을 꿈꾸는 한국동계스포츠의 열망으로 인해 급조된 팀이라 다른 종목에서 실패한 선수들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군대를 가면 안 되는 Loser들을 선수로 선발한다. 그나마 하정우의 Bob이 가장 elite일 뿐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들을 악용한 한국사회의 추악한 면이 발단이 되긴 했지만 영화 속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유야 어떻든 최선을 다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낸다. 그 속에서 하정우는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했고,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 중, 나가노 올림픽에서 무시 받으며 입국한 그들 중 Bob의 눈물 어린 고뇌에 찬 연기는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던 장면을 가장 감동적으로 바꾼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대중적으로도 경합했던 ‘해운대’와는 수상에서도 많은 경쟁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하정우는 백상예술대상(2010), 30회 청룡영화상(2009), 46회 대종상영화제(2009)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스티 보이즈 (2007)
하정우의 사회 Loser 연기 중 가장 이색적이 될 것 같은 영화다. 또한 그와 함께 출연한 또 다른 연기천재인 윤계상과 뛰어난 하모니를 하정우는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하정우의 연기 파트너 복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김윤식과의 만남 역시 그런 복의 연장선인 것 같다. 종종 한국 며느리의 표본으로 상징되는 동네인 청담동, 그곳은 한국에서 가장 잘 사는 부촌이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한국의 Loser가 살지 않는 곳은 아닌가 보다. 청담동에 있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호스트들은 비싼 여성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회적 Loser들이다. 이런 곳에서 하정우는 호스트로 열연을 하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인생의 건설적인 현재와 미래엔 무관심한 채, 오늘의 즐거움만을 쫓는 호스트 바의 리더 재현으로 분한다. 대충 즐겁게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기존의 생활과의 결별 과정에서 인생의 쓴맛이 다가 온다. 이런 과정에서 하정우는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영역에서의 개성을 맘껏 발휘한다.